-
-
위당 정인보 평전 - 조선의 얼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6년 9월
평점 :
위대한 인물이라면 자신의 분야 하나에서 남다른 업적을 쌓아 뒤에 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매우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경우를 대개들 떠올립니다. 독립 운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며, 하나의 쾌거나 지속적인 조직 활동으로 이족의 압제 하에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던져 준 이들을 그런 이유로 반 세기가 넘도록 영웅, 선열로 떠받드는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조선 반도에 당시 살았던 삼천만 생령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었겠고, 오늘날의 우리는 의무감과 애국심, 자긍이 얼마나 깎였겠습니까?
위당 정인보 선생은 그러나 이 책(평전)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듯, 어떤 범주에 넣고 우리가 내내 기려야 할지 판단이 다소 어려운, 다방면에 걸쳐 위업을 이루고 겨레의 정신을 일깨운, 거대한 생을 산 포괄적 스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인보 선생의 함자를 들으면 대뜸 떠오르는 게 무엇입니까?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평전 작가(우리가 이미 다른 여러 저작, 명작을 접했기에 잘 알죠)인 김삼웅 선생도 책 중에서 언급하듯, 나이 든 세대에게는 그 배운 국어 교과서에 실린 여러 명작 시조로 잘 알려진 문학가이기도 하고, 저희 세대 같은 경우는 국사(근현대사)의 강점기 파트에서 "얼 사상"을 설파한 사상가, 민족 운동가로 널리 인식되었죠. 그의 업적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언론인, 역사학자, 유학자로서의 양명학풍 계승자로서, 비단 "민족 운동의 거목"으로서의 뚜렷한 위상을 떠나서라도 후학들에게 잔뜩 연구할 과제를 던져 준(물론 후진의 발걸음을 크게 가볍게 해 준 연구 업적도 지대하게 남긴), 현재 진행형의 실천적, 이론적 목표이자 지향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도 여러 편이 인용되었지만, 그는 일단 조선 최고라 할 만한 학풍의 명문가, (김 저자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문의 가문"에 태어나 그 시대 환경이 허락할 만한 최상의 교육을 받은 인재였습니다. 양명학이라 하면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선 다소 비주류 스탠스의, 조심스러운(반체제로 오인 받지 않기 위해) 학통 접근의 자세가 필요한 진영이긴 했으나, 여튼 핵심 집권층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면면한 평판과 진지한 기풍의 가문이었음은 부인 못 합니다(p16에 직근 가계가 잘 도시되었습니다). 이건승, 이건창 양씨 형제(이 이름들은 국사 교과서에서 작지 않은 비중으로 강조된 암기 사항입니다)가 어린 시절 정인보에게 끼친 영향 역시 책에 잘 설명되어 있고요. 그 모계 역시, 조선에서 학문과 입신 출세 면에서 공히 높은 평가를 받는 유서 깊은 가문이었죠.
단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의문이 들었는데, 그 모친에 대해 "참판을 지낸 달성 서씨 성건호의 딸"이란 소개가 있으나 일단 성건호란 이름을 가진 분이 "달성 서씨"가 될 수는 없고요. 제가 업무 중 작은 시간 날때마다 여러 다른 책을 뒤져 보았으나 어디서 이런 출처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번째로, 그 모친께서 "달성 서씨'인지, "대구 서씨"인지는 책 전체를 통틀어 모호한 부분입니다. 저자께서는 여러 차례 "달성 서씨"로 못을 박으시는 것 같으나(이 부분이 중요한 건 이후에도 계속 나오듯 위당이 그 모친에 대한 애틋한 정과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인간은 이처럼 기본적인 혈육에 대한 존중이 확고한데, 비천한 정신이 이를 이해 못 함은 당연함), 정작 위당이 직접 쓴 글(책 중 인용문들)에서는 명시적으로 "대구 서씨"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대구 안에 달성이라는 지명이 있으니(이것 역시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현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면 해당 종문 인사들이 엄청 화내십니다. 보통 잘 모르는 이들이 "대구 서씨"를 그저 "달성 서씨"에 포함시켜 범칭하는데, 전자와 후자가 분명히 분파되었고 특히 전자 측에서는 아예 선조 대부터 구별되는 계열이라 주장하는 분들도 있으니 신중해야 하죠. 대구 서씨는 특히 경남 고성 일대에 집성촌을 이뤄 살며, 현재까지도 그 자제들이 명문대 합격률이 높아 고장에서 명성이 자자하니 이게 다 오랜 가문 내력의 소산입니다.
일단 위당은 통렬히 겨레에게 민족혼을 일깨운 위인이라, 책 편제에 무관하게 독자로서는그의 얼 사상(책에서는 제10장)을 우선 짚고 싶네요. 저희 세대는 "박은식의 혼 사상, 정인보의 얼 사상"을 항상 짝으로 두고 필수 암기하게 교육 받았는데, 정신에 이렇게 키워드가 한번 형성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학습과 사색, 심화 탐구의 동기가 생기니 저런 주입식 교육도 결코 나무랄 건 아닙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무슨 정인보 선생의 그 심오한 체계를 한 학기에 걸쳐 가르칠 것도 아닌 이상 말입니다. 신채호의 낭가사상은 이 두 흐름과는 조금 성격과 좌표가 달라 한 단계에서 함께 논할 류는 좀 아니죠. 그는 이 얼 사상의 정초를 닦을 때 문일평, 안재홍 등과 협력했다고 책에 나옵니다만, 이분들은 문우(文友)이자 같은 기관에 몸 담고 언론 활동을 편 동지들이기도 하죠. 위당뿐 아니라 어느 민족운동가의 생애를 살필 때에도, 초심은 꿋꿋하고 재능도 탁월했으나 혹심한 탄압에 결국 훼절한 안타까운 사례가 많이 보이지만, 이분의 경우에도 그 훌륭한 분들이 하나하나 곁에서 멀어져 가는 과정이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삼웅 저자께서는 정인보 얼 사상의 핵심에 대해, 소장 연구자인 최지연 교수의 석사학위 논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첫째 그의 사관은 정신사관이다. (유물론적 조류와 거리를 두었다는 뜻이겠죠)
둘째 그는 실학파(조선 후기)와 1910년대~20년대의 민족주의 학파를 직접 계승한 입장이다. (이는 그가 멀게는 실학파와 양명학의 거두들, 가깝게는 신채호의 학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적자임을 강조하죠)
셋째 1910~20년대 민족주의 학파가 빠진 함정인 영웅중심 사관을 극복하고, 역사의 중심에 다중과 집단으로서의 민족이 놓여야 함을 강조했다.
넷째 "얼 사상"으로 타율성론을 타파하려든 확고한 반식민주의 입장이다. (당연하죠)
특히 셋째와 관련, 이 책에서 다양하게 인용(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된 그의 저술을 보면, 이런 경향성을 직접 비판한 대목이 실제로 보입니다. "외국의 영웅을 추숭하며 나옹이니 화옹이니 떠들지만..." 이때 나옹은 당시 표기로 나폴레옹, 화옹은 워싱턴을 가리키죠. 물론 이 언급은 충무공 이순신의 추숭을 강조하며 나온 것이니만큼 그 역시 영웅주의 사관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같은 역비판이 가능하지만, 충무공만이 갖는 역사 속에서의 특수 위상도 감안해야 공정한 접근이 가능하겠습니다.
고 천관우 전 동아일보 사장은 (이 책에도 인용되듯) 대략 1930년대의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죠. 1) 이병도 중심 실증주의 2) 백남운 등 마르크스주의 사관 3) 실학, "국학" 유파를 계승한 신 민족주의 사학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며,
이 중 위당이 3)에 속함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재 신채호와는 동료이자 십여 년의 나이 차를 둔 일종의 사제관계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재미있게도 위당은 자신만의 관점을 담은 "단재론"을 펴고 있어 우리 독자들이 시대상과 인물관을 동시에 찬찬히 살필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당은 단재의 천재성을 두고 극구 높이 받드는 평가인데, 그의 옛스러운 표현을 최대한 현대식으로 바꿔 요약한다면 1) 남이 못 보던 기이한 점을 문헌에서 잘 발견한다 2) 복잡한 논의 속에서 지엽말단을 제거하고 요점을 잘 파악한다 3) 숨겨져 있는 흐름을(때로는 의도적으로 위장된 속에서도) 그대로 통찰한다 등입니다. 이 책은 아마도 독자들이 가장 어려워할 만한 대목이, 당대의 명문장가로 손꼽힌 위당 자신의 인용문 속에, 너무도 고풍투의 표현과 어휘가 다수 포함, 활용되고 있다는 이유가 있겠죠. 그런데 위당의 재능 그 정수는 바로 이런 기발하고 적확한 표현력에 있으므로, 후학들의 눈 어두움, 배운 바 없음을 오히려 자책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정인보 선생은 특정 세대에게는 시조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분인데, 이 책에서는 우리 시대 연구자로 김인환 교수, 지난 시대 정인보 연구 권위자이자 본인이 시조 시인이기도 했던 고 이태극 교수 등의 글을 자주 원용하여 독자에게 좋은 관점을 제공합니다. 이태극 교수님은 바로 저희 세대가 배운 교과서에 작품이 자주 등장한 문인이기도 해서 특히 반가웠습니다. 옛 유가의 거학들이 자주 강조한 대로, 수신제가 이후에야 치국평천하인 법으로, 사람이 그 혈육과 존속에 대한 삼가고 받드는 마음이 없다면 그 천박한 입에서 나오는 온갖 미사여구와 명분이 다 허언에 불과할 뿐입니다. 특히 <자모사>(연시조)에 표현된 그의 간곡한 효심은, 어디서 위대한 정신이 민족과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타당하고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사람이 세상에 나와 제 활개를 폄에 있어 가정 교육의 바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