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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없이 회의하라 - 가족, 직장, 친구, 나 자신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5가지 T.A.B.L.E
김동완 지음 / 레드베어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소통의 중요함이 부쩍 강조되는 요즘입니다. 특히 회사와 같은 2차 집단, 이익 사회 안에서는 설령 개개인의 역량이 강하더라도, 혹은 보유한 자원의 질이 우수하더라도, 이를 운용하거나 이에 참여하는 직원들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1+1=2의 효과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逆) 시너지 효과라고나 할까요. 논자에 따라선 아예 "회의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극단적인 주장도 나오지만, 그런 경우라 해도 이를 대체할 의사 소통 수단, 아래에서 위로 안건을 상신할 루트는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생산성 없이 진행되는 회의는 안 하느니만도 못하는 뜻 정도로 받아들여야겠죠.
이 책은 "소통의 기술 전문가"이자, 특히 현장에서는 "회사에서의 회의 혁신, 개선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달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김동완 선생의, 강연자, 모티베이터, 컨설턴트로서 그간 왕성한 활동의 결산이 담겼다 할 내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의 강연을 들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한 권의 분량 안에 과연 달인의 명성에 걸맞은 소중한 지혜가 담겼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직 생활을 안 해 본 독자라면 "그저 좋은 말씀이군." 정도로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같은 주장이라도 어떤 어휘를 쓰는지, 한 챕터 안에서 어떤 주장과 충고들이 한데 엮여 들어가는지에 따라 독자가 받는 느낌과 감화의 정도가 다르죠.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한 마디의 짧은 코드도 만 가지 의미로 와 닿는 거니까요.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여기서 주인이 그간 장사를 벌이는 방식을 보고 제2의 창의적인 개척로를 깨달은 하인이, 그간 모아 둔 밑천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인데, 제 생각에는 주인은 그 역시 윗대에서 보고 배운 방식만 고스란히 되풀이한 경영자 타입 같습니다. 일단 한 번 시련이 있었으니 그 상처로 재기가 어려웠겠고, 다음으로 사업의 기반이 허물어지니 다시 일으켜세울 지혜는 부족했던 거죠. 반면 하인은 하나를 보면 둘까지 헤아리는 "지혜"가 뛰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거대담론 하나로 디테일을 무시하는 나쁜 버릇을 들이면서 "지식이 아닌 지혜"라며 터무니없는 합리화를 일삼는 경우를 보는데, 그건 지식도 지혜도 아닌 가장 저차원의 고집, 착각에 불과하죠. 부족한 사람일수록 어디서도 안 통하는 자기만의 "소신"에 미련스레 매달릴 뿐입니다. 록펠러의 말로 인용된 건,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적응이 가능한 유연성"을 강조한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완 선생님이 제주도 분이라 들려줄 수 있는(혹은 원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책에는 많은데요. 그중 본인의 경험담으로 "수업 시간에만큼은 사투리를 쓰지 말고 표준어 사용"을 강조하신 어느 선생님을 회고하시는데, 이런 순간이 자신에게는 뭔가 새로운 시작점으로까지 여겨진다시는군요. 아마도 저런 선생님들의 노력이 모이고 모여, 제주도에는 오늘날처럼 확고한 "이중언어 구사 현상"이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이중언어"는 중동이라든지, 북유럽이라든지, 두루 통할 수 있는 "링구아 프랑카"와 "다이얼렉트"를 동시에 언중이 구사하는 걸 가리킵니다. 사소해 보이는 게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 조직도 사소한 부정적 분위기와 비능률적 요소, 오해와 곡해, 적의의 분위기가 모여 삽시간에 기둥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소해 보였던 우의와 이해가 모이고 모여, 전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그 회사만의 강점을 키우는 계기로 발전하기도 하죠.
우리가 오랜 동안 타성에 젖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쓰는 말도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재청 있습니까?"라고 사회자가 묻곤 하는데, 이 말은 본디 이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적 발언인데도 그저 좌중의 동의를 구하는 여음구처럼 오해되죠. 문제는, "재청 있냐"고 물으면 정말 재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두 군데에서는 나와 줘야 그게 건강하고 정상적인 조직이라는 거죠. 예의상, 분위기상, 어떤 대세가 형성되면 그저 묻어가려고만 들게 아니라, 때로는 튀더라도 건전한 상식에 부합하는 지적이 나오고, 그를 용인하는 합리적 조직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회의 전문가의 책 답게 과연 이런 명언도 실려 있는데요. "인생은, 삶은, 매 순간이 회의와 같다." 조직에서 회의를 잘하고, 자신의 업무를 잘 처리하며, 타 직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이루는 이는, 먼저 혼자 있는 시간에 "자기 자신과의 회의"를 능숙하게 해낸다는 지적입니다. 이때 유념해야 할 점은, 절대 감정과 충동에 따르지 말고, 잘 판단이 안 서거든 혹시 지금이 비이성적 흐름에 맡겨져 있는 상태나 아닐지 스스로를 항상 점검해야 핝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회사의 미팅에서도 분위기를 잘 조절하고,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전체의 흐름을 건설적으로 리딩하는 건 당연하죠.
달인은 사소한 순간에서도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창립 기념식에서 여흥을 돋우고자 윷놀이 대회가 열렸는데, 어떤 분은 "저는 지금까지 이런 데서 이겨 본 적이 없어요."라며 겸연쩍어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소장님은 "바로 그런, 아주 사소해 보이는 마인드셋이, 확률상으로도 벌어지기 힘든 연패를 가져왔다"며 부정적 태도의 해악을 지적하시네요. 게임은 아무리 플레이어의 수완이 좋거나 나빠도, 어느 정도는 운에 좌우되는데 한 사람이 그렇게나 매번 질 수는 없죠. 내가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전망과 실적은 큰 폭으로 변화하고 비우호적인 국면도 유리하게 전환될 수 있겠습니다.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도 조직에 그 효과가 전달되지 않는 건 사내 정치가 지나치게 과열되어 도통 화합과 팀웍이 안 이루어질 때입니다. 서양은 어차피 개인주의 패턴이라 조직 안에서 이합집산이 활성화되지 않는데(없다고는 말 못해도), 한국은 한번 회사 내 팩션(派黨)들이 형성되면 그 악폐와 부작용이 회사 전체를 병들게까지 합니다. 오너들이 때로 너무 제왕적으로 군림하는 것도, 어차피 민주적 리더십이 안 통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래서 김 소장님은 "건전하게 경쟁하라"는 주문을 합니다. 이는 주로 관리자들이 판국을 위에서 잘 내다보고 뭔가 과열이다 싶을 때 알아서 커팅하는 센스가 중요합니다. 개개인 차원에선 부처님 급이 아닌 이상 절제가 힘들고요.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몰려들지 않는다." 김영란법 시행 관련해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 원칙이 어떻게 수정, 변형되어 통할지도 귀추가 주목됩니다. 소장님은 이 말씀을, 1) 너무 완벽주의로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2) 조직 안에선 강점과 실적에 대한 자부심을 적정 수준에서만 드러내라 처럼 해석하시네요. 1)은 요즘 이런 타입들이 너무 늘어나서 기업 차원에서도 인적 자원의 손실 요소로 우려될 정도고, 2)는 한국 조직 문화의 특성상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어느 정도는 운명적인 처세 원칙의 일환으로 여겨집니다. 1)과 2)는 따지고 보면 개인 퍼스낼리티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 연결되는데, 결국 1)이 잘 해결된 사람은 대외적으로 2)가 자연스럽게 표출되기도 하더군요. 내면에 여유를 마련한 사람이 처신도 능숙한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