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미래의 대이동
최윤식.최현식 지음 / 김영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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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이 필요 없는 한국 미래학의 최강자 최윤식 박사님의 대담한 예측을 담은 새 책입니다. 그의 책은 언제나 최신 정보와 상황변화가 업데이트된 채 산출되는 예측을 담습니다만,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저서들에 뚜렷한 일관성이 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보통 미래를 내다보는 책들은 이 두 가지 미덕이 서로 trade-off 관계를 이루는 게 보통이어서 더욱 그렇죠.



1부에서는 "판의 이동"을 테마로 삼습니다. 최 박사님이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사정이었겠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지진안전지대라 여겨졌던 한반도에 실제로 강진이 발생하여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떠는 일이 불과 며칠 전에 있었기에, 이 "비유"가 매우 피부에 와 닿기까지 합니다. 고체 상태에서도 "대류"가 가능함이 20세기 전반에 밝혀졌고, 오랜 세월 동안 충격이 누적되어 임계선을 넘으면, "판"들은 마침내 가장 약한 부위에서 지진, 화산 폭발 등의 재앙을 유발합니다. 최 박사님은 저런 비유를 써 가며(이런 대목이 여기뿐 아니라 곳곳에서 좀 길다는 게 독자로선 조금 불만이긴 합니다만, 저자의 박식함과 인문- 자연 현상의 통섭적 파악을 도모하시는 그 방향성 쪽으로 좋게 이해하기로 하죠), 지구촌에서 그간 아슬아슬 균형을 유지했던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산업적 요인들이 드디어 누적된 모순의 폭발을 맞이하리라 예측합니다. 세상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때 흔히 "판이 바뀐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저자는 판구조론의 지구과학적 설명과 21세기 초반 문명의 대격변을 교묘히 연결시켜 독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셈이네요.



미- 중의 충돌을 설명하시면서 남중국해 논란은 큰 언급을 안 하시는데요, 여튼 최 박사님은 이걸 말단적 동요 정도로 봐 넘기신 것 같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 시스템의 실패를 만천하에 노정하면서 중-러가 대대적인 패권 도전에 나섰고, 저자께서는 전작들에서 이 점을 크게 짚은 바 있습니다. 미국 역시 그런 양국의 속셈을 잘 알기에, 특히 중국이 "더 크기" 전에 확실히 승부를 걸 마음임을 다시 지적하십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그리 밝은 전망을 내세우지는 않으시는데, 특히 내부 모순 중 빈부 격차, 도농 간 간극의 확대 등을 거론합니다. 지니 계수가 태평 천국 운동 시절의 그것을 능가하며, 이른바 루이스 전환점의 이슈를 꺼내면서 낙후된 농촌이 마냥 현실을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합니다. 다만 중국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엄청난 인구와 장차 서유럽- 북미를 압도할 경제력 성장 추세로 보아 더 이상 미국의 세계 패권이 이어지기도 어렵다는 쪽입니다. 하나 유념할 건 아시아를 어느 범위까지 단일 주체로 파악할 것인가인데, 책 조금 뒤에서도 언급되지만 인도와 중국 사이의 잠재된 분쟁 요소(수자원 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 역시 08년 금융위기가 매우 뼈아프게 노출시킨, 쉽사리 부정하기 힘든 이 시대의 위기 국면입니다. 책에서도 언급되듯 예컨대 아일랜드 감자 기근 사태처럼 탐욕과 착취가 절제의 지혜를 압도해 버린 비극적 구간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 동안 자본주의는 자체 혁신의 미덕을 발휘할 줄도 알아서, 특히 냉전 기간 동안에는 두 이념의 사이 좋은 보조를 유지해 온 면도 있었죠. 그러나 푸틴의 냉소적인 평가처럼, "지난 수십 년 간 쌓아온 수익을 한순간에 모두 날린 월 가는 이제 더 이상 그 자부심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관점이 누구에게나 설득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중, 한국이 맞게 될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지만, 최 박사님은 언제나 변화의 홍수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낙관주의의 기조지요. 다만 한국에게는 여전히 희망적인 변수보다, 크나큰 시련을 부를 조짐이 더 크게 보인다는 쪽입니다. 특히 2부 첫 장의 제목을 "기회의 이동 중(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계속된다"고 잡으실 만큼이네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촉발점으로 삼아, 이른바 "다섯 개의 폭탄"이 연이어 터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 경우 한국경제는 끝을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사실 표현만 다를 뿐 가계 부채라는 시한 폭탄을 두고 조만간 정부(현 정부 말기 혹은 차기 정부 초기) 머리 위에 날벼락이 떨어질지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거의 일치해 왔습니다. 어떤 이는 부동산에 방점을 두고(이쪽이 수적으로 더 우세), 어떤 이는 주식 섹터를 더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죠. 최 박사님의 진단은 그러나 "예측을 통해 리스크 요인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대위기의 파장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입니다. 합리적 기대이론의 한 결론 중에서도 충분히 증명되었듯, 치밀한 예측과 그에 따른 대응은 언제나 파국을 피해가는 집단지혜를 안출합니다. 최 박사님의 위기 진단은 이런 가계 섹터(다른 전문가들도 하는 이야기니까)보다 기업 쪽을 향해 한 말씀 하시는 게 큰 울림을 빚는데요. 이 2부보다는 뒤쪽으로 가야 좀 "쎈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 책의 표지를 보시면 영어로 "Exodus of Opportunity"란 글자가 나옵니다. 기회의 엑소더스! 한때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기회가, 이제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와 다른 "준비된" 플레이어들에게로 방향을 틀었다는 거죠. 박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기회는 "산처럼" 많다는 겁니다. 하긴 불확실성의 증대가 기득권을 위협하고, 기민하게 사태를 관측한 이들에게 큰 이익을 안기는 패턴은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나 발생해 왔죠. 박사님은 앞서 "우리에게 특히 위태로운 변수, 상수"가 도사림을 지적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역시 총체적으로 "기회의 산"을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4차 산업혁명", "증강 현실" 등의 키워드를 단 여러 서적에서 거론하는 갖가지 첨단 산업의 부상을 최 박사님도 하나하나 짚으시는데, 그 중 저자께서 특히 주목하는 부문은 자율주행, 대체에너지 개발을 앞세운 자동차 산업인듯 보입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역시 최박사님 다운 대담함, 거침없음이 돋보인 대목이 "테슬라를 과연 현대차(아님 삼성이나 LG라도)가 샀어야 했는가?"에 대한 똑부러지는 해답이었습니다(많은 이들은 아마 이런 질문, 이슈, 아젠다가 있었는지를 모를 겁니다). 실제로 엘론 머스크가 아직 입지가 단단하지 않을 때 간을 보러 한국에도 왔었고, 최 박사님 생각은 "그때 그가 분명히 팔 생각이 있었으며"(이렇게 잘라 말하시는 그 확신이 진정 놀랍네요), 앞으로도 그는 점점 베팅액을 높일지언정 구매자를 물색하고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는 "머스크는 그렇게 비전 좋은 회사를 왜 키우지 않고 팔려 드는가? 팔 의향이 없든가, 아니면 자신의 평소 주장과는 달리(책도 많이 썼죠) 미래자동차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부족한 것 아닌가?"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어떤 영리하고 합리적인 행위자도, 항상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상황 봐 가며 가능성을 열어 두는 법이죠.



독자로서 최박사님의 진단과 예측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며, 예컨대 "가상국가vs 현실국가" 같은 프레이밍은 그 설명력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장벽이 2030년까지 해소되며, 그 즈음에 뇌 구조가 다 해독되리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기술적 난관이 한둘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제퍼디 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챔피언을 이긴 사건도 벌써 5년이나 지난 토픽이며, 그이후로 의미있는 진전이라면 몇 달 전 알파고의 대국이겠는데 이 역시 그 효과를 더 신중히 지켜 볼 필요가 있죠. 하지만 최 박사님의 책에서 가장 생산적으로 취할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는, 이런 격변하는 추세 속에서 개인들이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맞을지에 대한 자상하고 성의 있는 충고입니다. 학자들의 모든 예측이 다 실현되는 건 아니며, 일부는 정반대의 결과에 직면하기도 하죠. 그러나 미래의 유력한 예측들과 전망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방향으로 대비를 한 사람과, 마냥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선택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판이 송두리째 바뀌고 기존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지금, 역으로 엄청난 기회의 산이 우릴 향해 달려 오는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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