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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 맑음 - 지치고 힘든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
마스노 슌묘 지음, 오승민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오랜 시간 수도에 정진하신 스님이라면 그 나오는 말씀이 참 예사 경지의 산물이 아니다 싶은 게 많습니다. 이 책도 참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 읽어 나가면 그렇지가 않고, 치열한 직장 생활을 해 보신 적도 없을 텐데(여러 대학에서 환경 디자인학 교수직을 맡고 계시긴 합니다) 어쩜 이렇게 월급쟁이들 마음을 잘 알고 다독이시는지 신통하다 싶었습니다. 꼭 직장인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상처 받은 이들 그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데 정말 능하신, 그저 노하우를 잘 아는 게 아니라 세상의 숨은 이치, 모순, 문제의 발원을 훤히 꿰뚫으신 달인의 토로이자 가르침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더군요.

마스노(枡野) 슌묘(俊明)라는 이 저자 스님의 함자는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 보는데요.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은 스님들에게 법명을 쓰게 하는 게 관행입니다만 이 저자께서는 그대로 속명을 쓰시는 듯합니다. 정원을 가꾸는 자세란 곧 내 마음의 잡풀을 제거하고 온갖 속세의 번뇌와 탐욕, 하잘것없는 집착을 뿌리채 정리하는 그 태도와 통합니다. 인간이란 결코 환경과 유리되어 살 수 없고, 인간을 낳고 품어 준 자연과 적대할 때 인간의 생존마저 위태로워지는 게 자명합니다. 스님께서는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보존하며 그 가장 소중한 고갱이를 돌보고 가꾸는 노력을 통해, 세상에 사람이 모여 사는 가장 깊은 원리를 깨닫고 이를 가장 쉬운 말로 어리석은 대중에게 설파하시는 스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말 회사원들과 많이 접촉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어 보셨는지, 유독 이 책에는 그들을 염두에 두고 설복하시는 말씀이 많습니다. 할당량을 반드시 납기에 맞춰 조달하는 건, 특히 대기업을 상대하는 많은 중소기업 사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과업일 것입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마냥 속이 편한 건 아닙니다. 독촉하면 갑질한다고 뒷말이 나올테며, 납기가 늦어지면 일단 깨지는 건 담당자 자신이기에 남의 회사 사정을 자애롭게 고려할 처지가 못 됩니다. 그런데 스님은, 비단 자신의 회사 입장에서만 살펴도 품질을 무시한 기계적 할당량 달성은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황폐화한 후 폐허의 앙상한 잔해처럼 다가올 "미션 완수"가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겁니다. 이게 현실에 맞지 않은 한가한 도리의 설법이라고 생각되시면 다음을 계속 읽어 보십시오.

이 파트 말고 책의 좀 뒤를 보면, 아무래도 스님이신 이상 장례식장에서 일정 역할을 맡아 주십사하는 촉탁이 많이 들어오는가 봅니다. 그것 관련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 유수의 대기업 이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광범위한 인맥을 쌓고 업계를 호령하던 분이기도 하고, 그 풍채도 권위 가득한 모습이라 언제나 주위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이 갑자기 타계하니, 유가족들이 많은 문상객들을 갑자기 맞을 걱정에 여러 채비가 많았고, 스님께도 각별히 당부하는 바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조문객을 받으려 하니, 첫 몇 시간에만 줄이 이어졌을 뿐 오후부터는 사람이 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융숭한 예식을 다 갖춘 상가에 정작 조문이 뜸하니, 유가족이 상심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스님 자신이 민망해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는 거죠. 반면 늙은 나이까지 말단에서 근무하다 생을 마감한 다른 어떤 분은, 비록 차림은 빈한해도 "생전에 이분께 은덕을 입은" 이러저런 많은 문상객들이 성의를 보여 그 가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누가 더 보람된 생을 살다 간 걸까요.

"불교식 사고방식에 양자택일은 없다." 저자의 아주 의미 깊은 말씀, 가르침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소위 "책상을 뺏기고"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지금까지 맡아 오던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발령나기도 합니다. 대체로 능력 없는 이들, 사고를 치던 이들, 무사안일로 나날을 때우던 잡된 직원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겠으나, 개중에는 억울하게 밀려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때 스님은 "이것 역시 나쁘지 않고, 당사자가 즐겁게 혹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한 운명"이라고 가르칩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따로 있다는 게 이분법 사고인데, 불교에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모든 게 동등하다는 태도입니다. 하긴, 나와 타물(他物)도 본디 분별이 없는 법인데, 자신이 처한 운명 역시 좋고 나쁜 고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관련 법사께서는 "대지황금(大地黃金)"이란 법어도 들려 주시는데, 자신이 밟고 선 누런 땅이 바로 복된 곳이라 생각하면, 황금덩이를 깔고 사는 이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읽고 나서 참 지당한 이치라며 수긍이 되었네요.

"유연심"을 가지면 "선입견"이 없어지는데, 이로서 무한한 가능성이 싹튼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흔히 "저건(혹은 저 사람은) 내 타입이 아니다."는 말을 즐겨 하죠. 혹은 내 가치관에 현저히 미달하는 질 낮은 아이템(혹은 사람)이라며 폄하하기도 일쑤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며 마주할 갖자기 선택의 순간에서, 당사자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무수한 가능성이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잠재한, 그리고 간과한 선택지 중, 나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을 만한 보석 같은 옵션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사물과 모든 인연은 (다시 말하지만) 나쁘고 좋은 품질의 차가 없고, 모든 형량과 분별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결과가 딴판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마음의 벽을 헐면 모든 이가 나의 이웃이요, 나의 형제고 부모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이가 회사 일이라 한들 척척 못 해낼 리 없고, 상관이나 오너가 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은덕을 조직에 베푸는 셈입니다.
임운자재. 참 불교의 가르침에는 좋은 구절이 많습니다. 사람이 애쓰고 버둥거려도 안 되는 일이, 그 나름의 운수와 정해진 바가 있어서 스스로 풀리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어르신들, 간부들이 종종 따끔하게 놓는 한 마디가, "요즘 젊은이들은 멘탈이 약해."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이미 기성 세대이시면서, "젊은이들은 너무 악착 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도 일깨우시네요. 때로는 모든 업무에 작은 틈을 주며 쉬어가는 게, 일의 여운을 주어 전체 과업이 잘 풀리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어제와 오늘이 한결같게 느껴지는 권태"야말로, 정신이 죽어가는 징후임을 지적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날은 그 어느 하루도 같은 시간이 아닌 축복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긴장과 강박은 다른 것이며, 성실과 집착 역시 다른 범주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이를 준별하는가. 마음이 바른 곳을 보면 가능하겠습니다. 그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먼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독기를 품고 때로는 절망한 듯한 그 얼굴들을 편견 없이 봐야겠습니다. 그 얼굴들에서 내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