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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 교과서 - 기내식에 만족하지 않는 마니아를 위한 항공 메커니즘 해설 ㅣ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9
나카무라 간지 지음, 김정환 옮김, 김영남 감수 / 보누스 / 2016년 9월
평점 :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에 의해 발명된 지 근 백 년이 지났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만큼 인류의 뇌리, 가슴에서 오래 자리하고
성장해 온 꿈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는 두 가지 점에서 미스테리한 구석이 있습니다. 1) 대형 여객기,
초음속 전투기까지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그 비행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전문가들조차) 어딘가 좀 복잡해진다. 2) 아직도 그
"자가용"화가 요원하다. 1)에 대해서는 비행기가 특히, 자연과학보다 실용적 공학의 발전에 더 직접적으로 기댄 발명품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물론 거의 모든 기계, 시설, 발명품은 둘 이상의 과학 원리에 의해 운용되고, 과학자는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지 기계
만드는 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정말로,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숱한 시행 착오를 거듭하다 "어 이러니 되네?" 같은,
현장의 땀과 노고의 산물 그 성격이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고층 건물이 그 엄청난 하중을 견디고 지속되는 이유, 디젤 기관이
상상을 초월하는 질량을 쾌속으로 운반하는 이유 등은 반면 정말 몇 가지, 몇 가지 심원한 과학 원리(중고딩들도 다 배우는)로만
설명(설명만큼)은 가능합니다. 이론상으로도 쉽게 납득이 잘 안 되는 게 비행기의 운항 원리라는 뜻입니다.
이
책은 그런 걸 가르치는 내용은 아니고요. 만약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건 비행기의 조종간을 직접 잡을 일이 있다면, 그게 자동차를
모는 것과는 어디서 어떻게 다른가(대부분 자동차 운전 면허는 있겠으므로), 무슨 장치와 핸들이 무슨 기능을 각각 떠맡고 있는가,
혹시나 반드시 유념해야 할 기술적 원칙과 자연과학 원리(비행기 제작에 관련된 게 아닌, 운행과 조작에 필요한)가 있다면 무엇인가
등을, 시원시원한 그림과 함께 가르쳐 줍니다. 그걸 어디다가 써먹을까 싶어도,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인데요. 사람이 꿈을 품고
한번쯤은 이렇게 기능을 써먹을 날이 있겠거니 진지하게 계획을 가져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미래의 충실도 면에서 제법 큰
차이가 난다고 말이죠. 심지어 이런 기술은, 언젠가 내가 자가용 비행기를 가져야지 하다가 정말 굴리게 되는 그런 순간 말고,
여객기에 탑승했다가 불시착이라도 했을 때, 아 저번에 그 책 알차게 읽었으면 그나마 대처가 지금 쉬울 텐데, 같은 아쉬움으로 만날
가능성이 더 크죠. 그게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고요? 어차피 확률은 탁상 위의 계산 테마일 때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49%든 0.0001%이든). 닥치고 나면 비로소 100%의 절박함으로 당사자의 코 앞에 디밀어지는 거죠. 흠.
이
책은 비행사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 혹은 대체로 출발 전에 동료(주로 동료가 있을 법한 인력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입니다)들과 어떤 루틴을 거치는가 등에 대해서도 곰살궂은 설명을 베풀고 시작합니다. 그 후, 비행기에 탑승하여 무슨 장치를
어떻게 점검하고 어디에 눈금들을 둔 채 "띄워야" 하는지 차근차근 가르치네요. 사실 비행기 운전을 책으로 배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운전은 그게 경차 운전이라 해도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 뭘 만져 봐고(물론 현행법에 저촉 안 되게) 밟아 보고 도로를
달려 봐야 그게 몸에 배는 기술이지, 이론으로 만족하고 넘어갈 게 따로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런데 이 책을 넘기면서
느낀 건, 정말 매뉴얼 단계에서라도 무슨 개념을 잡고 시작해야 한다면, 실물로 계기반을 만지기 전에 이런 책, 이렇게 쉽게 가르쳐
주는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거죠. 비행기 모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따로 있어서 발품 팔고 찾아가는 게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자동차는 엔진 추력의
크기를 몰라도 비탈길을 모는 데 지장이 없지만(그렇죠? 그냥 몰기만 하면 됩니다) 비행기는 추력의 크기를 알아야 뜰 수가 있다."
저는 이런 문장이, 독자에게 무엇, 아주 복잡한 그 무엇을 알려 주는데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추력"은 비행기가 나는 데 필요한 4대 힘 중 하나입니다. 이상하게 이런 건 상식이라고 생각했는지 이 책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라 제목 그대로 비행기를 모는 법을 가르쳐 주는 요령을 담았다"고 생각한 저자의 실용적인
태도일 수도 있죠. 자동차에서도 엔진이 중요합니다만 비행기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제트 엔진"을 달고 있음은 또 우리가 다들
아는 상식이죠. 자동차는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거의 모든 아날로그(혹은 디지털) 지침을 두고 주인과 소통하지만, 이 추력을 직접
지시하는 장치는 없다고 합니다. 이는, 오너 드라이버의 경우 그저 소비자일 뿐이지만, 비행기 조종사는 대부분이 엔지니어, 혹은 그
이상의 소양을 쌓은 이들이기 때문에 다른 장치를 보고 "추측(이 책의 표현입니다)"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장치들은
N1(팬 등의 회전도를 잼)계, EPR계(엔진의 압축도를 잼) 두 개라고 하는군요.
비행기 아니라 어느 엔진이라도 흡입, 압축, 폭발, 배기라는 4공정을 거치는 건 공통입니다. 중학교 때 기술가정 시간에 이걸 배우긴
했는데, 나중에 아무 쓸모도 없고 입시에도 도움 안 되는 이런 걸 뭐하러 가르치냐고 원망하며 지옥 같은 암기를 했습니다만, 그걸
이렇게 다시 마주치는군요. 지식이란 뭐라도 머리에 넣어 둬서 해로울 게 없습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탓해야 할 자기 머리가
아니라 지식을 엉뚱하게도 적대하기 마련이지만("저딴 건 필요없어!" "응, 너한테는.").
2장에서 조종 장치의 점검과 여러 계기반 세팅을 가르칩니다만, 추력 세팅이 그만큼이나 중요한지 (관제 당국으로부터 이륙 허가가
떨어지면) 다시 한 번 이를 살피고, 본격적으로 "이륙에 알맞은" 추력 게이지로 올려 놓을 것을 지시하네요. 이게 제트 엔진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소형 경량이지만(비행기에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겠습니까)" 회전수의 가속이 느린
편이라고 합니다(제일 빠른 건 오토바이 엔진이죠). 이 때문에 아이들(idle) 상태에서 바로 가속이 이뤄지면, 이상(異常)
연소를 일으킬 위협이 높다는 겁니다. 왜 영화 같은 데서 멀쩡한 비행기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고 엔진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까
했는데 말이죠. 다 그게 비행기 모는 걸 어깨너머로나 구경한 작가들의 나름 능력 발휘였다는 걸..
자동차의 선회는 그저 핸들(휠)만 꺾으면 됩니다만, 비행기의 경우 좀 더 복잡한 조작 메커니즘이 끼어듭니다. 이 저자는 참
적절하게도, "(심지어) 종이 비행기의 경우도 좌우 균형이 안 맞으면 날지 않는다"는 예시를 들며, 조종간과 사이드스틱의 조작을
통해 "양력"과 "항력"의 재배분으로 방향을 트는 그 원리를 잘 설명해 줍니다. "양력"은 양력이라지만 항력이 왜 나올까 했는데,
바로 이처럼 방향 선회에 필요한 힘의 원리로 기능합니다. 힘의 본성을 규명하는 건 자연과학자들의 몫이지만, 현실에서 성질이 다른
두 힘(혹은 네 힘)이 어떻게 얽히고 합력을 이루며 상호작용하는지 예리한 센스를 통해 알아내는 건 엔지니어들의 역량입니다.
언제나 비행기의 속도는 마하(음속의 배수)로 단위를 잡죠. 이 마하는 사실 "마하"가 아니라 철학자 "마흐"의 이름에서 딴
것인데(외래어 표기법 개정 전엔 "마하". "바하" 등), 이 사람의 철학적 업적은 아인슈타인의 연구에도 직접 영감을 줬습니다.
비행기의 속도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소리와의 상대 속도로서만 수치 측정이 쓸모가 있습니다. 음속의 몇 배(물론 1 미만일
수 있습니다)이냐가 조종사로선 유용하게 쓸 정보라서, 구태여 초속 340m/s니 뭐니 하고 환산을 안 하는 거죠. 이처럼 이
책은 기술적 지식으로서의 비행기 조종 뿐 아니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자연과학적 기초 지식이 이런 첨단 기술 속에서 어떻게 필수
부속으로 활용되는지 생각할 여지까지 독자에게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