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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분위기로서의 유쾌함과 소재로서의 범죄가 한 작품에 같이 다뤄지기는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그런 뜻에서 코지(cozy) 미스테리의 창작자들에게 고충이 크리라 짐작합니다. 독자도 끔찍한 상황들의 이해, 접수, 정리에 대한 부담을 덜고 순전히 지적 유희로서의 미스테리 해결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정말 편하겠죠. 배경과 인물, 사건 등이 모두 한국적인 것들로 바뀔 수 있다면 읽어가기에 더 고마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암울한 삼수생의 처지인데다 처음에 스스로 흘리는 암시와는 달리 용모도 그닥 매력적일 것 같지 않은(어느 어르신께 "애기엄마"란 말을 듣는다든가, 유창희한테 "아줌마"로 불린다든가 하는 걸로 보아), 강무순이라는 여성이 1인칭 화자 겸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이곳 시골(작품 중에는 구체적으로 "충남 운산군 산내면 두왕리"라 나오지만, 가상의 주소죠)에 살았는데, 삼수생이 되어 다시 돌아온 거죠. 여기서 몇 년 전 홀로되신 할머니 홍간난 여사와 여름을 함께 지내야 합니다.
평온하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마을은, 15년 전 피해 당사자는 물론 마을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긴 어떤 "범죄 사건"을 겪었는데, 공권력과 미디어가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고 전국적 시선을 끌었지만 아직도 진상이 오리무중입니다. 삼수생이 언제나 그렇듯 공부는 하기 싫고 엉뚱한 데서 존재감은 느껴 보고 싶고, 마침 우연히 마주친 저편 사는 "같은 양반댁"의 종손 유창희(중학생 꽃돌이로 묘사됩니다)를 만나 같은 관심사도 확인한 겸, 팔자에 없는 명탐정으로 변신합니다. 남 일에 코 디밀기가 얼마 안 남은 생에 큰 낙이신데다 연세에 비해 여전히 정력 넘치는 홍간난 여사도 이에 합류, 3인은 드디어 "한날 한시에 같이 실종된 네 여성들"의 행방을 찾아 나섭니다. 홍간난 여사의 회고로는 "...그땐 워낙 인신매매도 많았던 터라.. "라지만, 이 말이 타당하려면 소설의 배경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이라야 하겠습니다. 여튼 멀쩡히 잘 살던 네 명의 여성(처녀, 유아, 학생 등)들이 갑자기 없어졌다면, 이는 누군가 나서도 해결해야 할 불의, 범죄,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피해자 가족 중 하나인 목사님 부인은 사라진 딸 때문에 완전히 실성해 버린 상태라고 하니.
눈에 띄는 건 이런 시골 마을의 사정상, 이웃의 피해와 아픔은 일단은 곧 나 자신의 곤란으로 바로 공감대가 연결되었다는 점이죠. 홍간난 여사도 피해자들을 무지 동정할 뿐 아니라, 당장 제 살 길 걱정해야 할 이웃들도 마음씀이 다들 비슷합니다. 마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수생이 책은 안 보고 의분에 불타며 실종자를 찾아 나서는 마음과도 닮은(..은 아닌가요?) 목가적이고 더없이 평화로운 인상과는 달리, 이 마을의 삶은 윤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각 가정마다 비극적이고 불쾌한 사연들을 대개 하나 이상씩 품고 있습니다. "이런 안온한 고장에 왜 이런 범죄가...!"는 외부인의 물정 모르는 감상일 뿐이고, 언제 터져도 터질 고름과 상처가 범죄 사건으로 응집되어 나타났다는 게 더 정확한 진단 같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이런 시골을 보고 그런 삭막한 말을 할 수 있나?"
"오히려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릴세, 도시에는 여론도 있고 보는 눈도 있고 보다 세련되고 타당한 판단이 지배하는 곳이기나 하지. 하지만 시골은 닫힌 동네야. 편협한 여론이 한번 가치의 대세를 점하면 그게 곧 진리로 행세하겠으며, 드문드문 떨어져 사는 여건상 범죄를 은폐하기란 또 얼마나 편하겠나?"
셜록 홈즈의 이런 평가가 유별난 게 아니라, 일반인이 인정하기 불편할 뿐 그게 곧 진상을 꿰뚫은 말입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활기있는 장면이 펼쳐지는 건, 자신이 멀미에 약하다는 것도 잊고 사태의 진상을 밝힐 의지 하나로 두 젊은이(..)와 함께 장거리 버스편으로 유씨 댁 부부를 미행하는 홍간난 할머니를 묘사한 대목입니다. "전투력을 상실한 아군을 버려두고" 운운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강무순의 엄청난 수다에 담긴 표현들이 다 참신하고 웃기지는 않았으며, 솔직히 그 상당수는 짜증이 나기까지 했습니다만, "철학은 몰라도 시간은 칸트였다(정해진 순간 정확히 코를 골며 숙면에 빠지는 자기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 등 몇몇 마디는 꽤 재치있었지요. 강무순은 이과인지 문과인지 모르겠는데, 어떤 때는 멘델을 거론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행렬을 중1때 그만뒀다"는 걸로 봐서 공부하고는 연이 안 닿는 분 같습니다. 그만 둔 게 문제가 아니라 뭘 언제 공부했는지도 맵이 생성 안 된 걸로 봐서요.
진상은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강무순 유창희 홍간난 트리오에게 특별히 마플 급의 탐정력이 보유, 실현되어서라기보다, 진실이란 본디 그렇게 힘이 쎈 편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란, 대개는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기 마련이라, 인위의 세팅이 이를 가로막기란 오히려 그게 더 어렵겠죠. 진실이 (홍간난 여사 말마따나 박사님 전문가님 기자님 따위가 그렇게 많이 마을을 거쳐 가며 헤집어 놨음에도 안 밝혀진 진실이)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낸 건, 본디 진실이란 인간 사이의 진정어린, 1차적 소통에 근거를 두며, 그 소통이 본래의 힘을 발휘할 때 마치 썩은 장막이 제풀에 주저앉듯, 혹은 햇볕이 망또를 자발적으로 벗기듯, 사리를 제 자리로 갖다 둘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실은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본디 하나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에 불과했기에, 한꺼번이 아니라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어째서 그 재앙들이 한 날 한 시에 다가왔는가? 이는 우연이 아니라, 재앙이 다른 재앙을 알아보고 길동무를 삼는 이치와 같습니다. 결과는 또다른 원인이 되어 사고를 유발하고, 그래서 결과들은 처음부터 한 형제였던 양 어깨를 겯습니다. When it rains. it pours.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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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치 개구리 소년 실종처럼 최소 사고라고 생각했던 그 미제 사건은, 알고 보니 한 건만 단순 사고였을 뿐이었네요. 진상이
모두 밝혀지니 강무순 트리오는 정말로 명탐정으로 등극해 마땅한 듯 할당된 미션을 다 해결했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부담을 지울
이유는 없으나, 보는 우리는 과연 마음이 편안해도 될까요?
실종 사건은 그저 단순 사고에 불과했지만, 진짜 "범죄"는
모두의 눈에 띄지 않고 영원히 은폐되었습니다. 범죄자가 제 응보를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천만에. 그는 존재감도 없던 풍경에서
이제 끔찍한 사고의 희생자로 모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그는 오히려 사면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죽어가는 그
순간 이 가증스러운 범인은 무엇이 제 인생에서 남는 장사일지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었어요. 그의 기대대로 되었으니 이 피해자를
가장한 범죄자는 죽음과 승리를 맞바꾼 셈 아니겠습니까? 유령같이 살아 온 그에게 목숨이 큰 의미를 가진 듯 보이지도 않고 말이죠.
그녀, 모두의 선망이 된 그녀였지만 박제처럼 이상화하여 존재가 규정되어 버린 삶이었기에, 죽어도 죽은 게 아니었고
범죄자의 손에 끔찍한 꼴을 당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무정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은 못난이 모지리로 태어났다 해도,
한 순간이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다 죽어야 합니다. 광인, 변태성욕자의 손에 죽은 것보다, 19년을 모두의 허상에 맞춰 붕 뜬 듯
산 그 시간이 더 비극이라고 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유창희의 나이라든가 강무순의 무심한 듯 내뱉은 말
속에 들어 있던 진실처럼 "미모는 이 집안 내력일세" 어쩌구 하는 것, 기타 그 숱한 단서들에서 감을 어느 정도는 잡았을 겁니다.
腐녀자스러운 강무순의 수다가 (거듭 말하지만) 짜증스럽긴 하지만(BL깨나 좋아할 것 같죠? 쩝), 크리스티 여사의 <ABC
살인 사건>에서 "헤이스팅스가 몰랐던 사실"처럼, 어느 죽어가는 자의 "주마등'이 시점(視點)과 시간을 초월하여 독자에게
건네는 말 등이, 책을 끝까지 덮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무를 감추려면 숲에 숨기라는 기본 트릭까지 닮았네요, 그러고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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