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 서 - 고대 중국의 예악.역법.치수.경제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大作 <史記>에서 이 <書>가 차지하는 위상, 성격은 무엇일까요? 어지간히 <史記>를 즐겨 읽고 재미있어하는 이들도, <書>만큼은 지루해하거나 아주 건너뛰기가 일쑤입니다. 비단 <사기> 안에서의 문제인 건 아니고, 역사 일반에서 제도사가 받는 대접이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제도사를 재미있게 소화할 수 있는 독자는 내공이 상당히 깊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역자 신동준 선생님도 이 권(<書>)을 제도사, 문명사로 파악합니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우리 평범한 독자들 눈엔 아마 그 범주에 쉽게 포섭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유는 역사 애호가들이 여태 접해 온 제도사란 대개 비교 제도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통시적 관점에서 제도의 변천, 공시적 관점에서 지역적 편차를 주된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 <書>는 우리 미숙한 독자들에게 어딘가 위화감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그나마 <평준서>가 서사 위주의 편제이기 때문에 "역사서" 비슷한 느낌이 나고, 秦 이후 태사공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거부들의 활약 실황과 규제법규의 변천을 논급하기 때문에 "제도사"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그 앞의 다른 책들은 역사서라기보다, 군주가 제도를 운용해야 할 당위성을 실컷 논변하는 철학 강의 같은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書>는, <사기> 전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프레임과 개별 범주를 통째로 제공하는, 나머지 각권에 모세혈관처럼 침투하여, 실제 이뤄진 사적과 인물들의 동선에 역동성과 철학적 해석 기반을 제공하는 원천입니다. 다른 권에서 모호하게만 다가왔던 각종 개념과 범주가, 이 <書>를 꼼꼼히 독해한 후에야 통합적 의미로 독자의 정신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제도 속에서 인물은 일시의 卒이나 광대가 아닌, 시대를 초월한 영속성을 지니고, 반대로 인물이 그 안에서 구체적 의의와 형상화를 남긴 제도라야 후대의 귀감이 될 전범으로 승계될 수 있습니다.

신동준, 김원중 두 분의 역본을 함께 대조하는 재미를 누릴 독자들은, 특히 이 <書>를 읽으며 각 8권의 해제에서 두 역자의 견해가 정면 대립하 는 대목들을 자주 만나게 되겠습니다. 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큰 재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데요. 특히 신동준 선생님이 "...일각에서 이런 주장을 제기하나.." 같은 투로 토픽을 꺼내면 거의 예외 없이, 김원중 교수님은 해당 대목에서 반대 입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書>의 각종 대목이 후대의 가필, 위작이냐, 아니면 다른 권에서와 마찬가지로 태사공 자신의 편집 원용이냐를 다투는 문제에서, 신동준 선생님은 그 원전성을 비교적 옹호하시는 편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학계의 논의 현황을 볼 때 쉽게 판가름하기 어렵습니다.

<禮書>
p16에서 관중이오의 처신을 비판하며 "삼귀"를 거론하는 대목이 있는데, <열전>의 해당 대목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여기서 의견이 갈린다는 걸 익히 압니다. 신동준 선생님은 "삼할의 商稅"를, 김원중 선생님은 "세 명의 처첩"을 뜻한다고 각각 새깁니다. 이 부분은 <열전> 1권 서평에서도 제가 써 두었습니다. p17에서 위 영공의 남색 악습을 비판하는 대목도 여전히 반복됩니다(정말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단 여기서는 "위령공"이 아닌 "위 영공"으로 표기하십니다.

<樂書>
이 책은 "예서"와 짝을 이루는 책이라는 데 대해 학자에 따라 견해 차이가 없는 편이죠. 다만 저는 동양사상의 아득한 원류에서 이 두 개념, 즉 예와 악이 그처럼이나 밀접한 쌍대(duality) 관계를 이루는지 이 고전을 읽고 처음 실감했습니다.

역시 김원중 교수님은 <사기지의>를 원용해, 이 부분이 후대의 가필, 위작이라는 견해이신데요. 신동준 선생님 역시 <사기지의>의 학설을 소개하고 있으나, 사마천이 다른 편에서도 유지하는 저술 태도처럼, 5경 중 하나인 <예기>의 "악기"를 참고로 하여 인용했다고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이 책 말미에는 해당 텍스트가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역시 한문 원문과 신 선생님의 해석을 나란히 볼 수 있으므로 유익합니다.

김원중 교수님의 경우, 특별히 "노래와 연주 및 춤까지도 포함한다"고 설명하십니다. <세가> 등 여러 다른 권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노래"에서 오히려 핵심의 요소가 "가사"라고 생각되며, 오늘날 우리가 대체로 가사보다는 곡조를 더 중시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음란하다, 기운차다 등의 평가가 음률 자체보다는 가사의 내용을 두고 이르는 것 같았습니다.

p37 "삼후지장"에 대해 이 책에서는 딱히 설명이 없으나, 김원중 교수님 책에는 "대풍가"라고 후주 15번에서 해설하시며, 와 어조사 兮(혜)가 동의어라는 부언까지 있네요. 어조사 는 <시경>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법요소입니다.

p45 "삼"은 신동준 선생님 책에는 별 설명이 없으나, 김원중 교수님 책에는 하의 우왕, 은의 탕왕, 주의 문, 무왕을 가리킨다는 설명이 후주를 통해 나와 있습니다. 三아니며, 이 책에 실린 한문 원문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삼황 오제"가 입에 익은 독자들은 자칫하면 착각할 수 있습니다.

p69 "빈모가"라는 인물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는 데에 대해, 두 분 역자는 동일한 견해입니다.

p73 이하에 실린 내용은 <시경>의 편제와 동일하죠. <오태백 세가>의 계찰 관련 기사와 비교, 대조해도 밀도 있는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五音

상징

군주

신하

백성

일(事)

물건(物)

인체 장기

비장

심장

신장

둘째 행, "궁상각치우"를 인채의 기관에 비유한 대목은 <예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태사공 자신의 논평 중에 언급되기 때문이죠.


덕을 본받음

음란을 방비함

덕을 베풂

은혜에 보답함

윤리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정서

질서

조화

하늘

구별

동화

외모(밖→안)

마음(안)


무제가 총애한 이부인의 오빠 이연년에 대해서는 <열전> 2권 후반부에 따로 항목이 짧게나마 나옵니다.

<律書>
p87:1에 보면 행위의 주체가 "진시황 and 호해"로 명시됩니다. 원문을 보면 秦二世宿軍無用之地라 하여, 주어는 "호해"만을 삼는데요. 역자께서는 이 대목을 실제 역사의 기록과 대조하여 맞지 않다고 본 겁니다. 김원중 선생님 역본에도 이에 후주를 달아, 두 군주 부자의 소행으로 파악하는 게 옳다시는 태도입니다.

우리 현대 독자들이 파악하는 律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대개는 "법률"을 떠올리겠으며, <사기>의 내용과 편제를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한 분들이라면 이 권의 실 주제가 "군사"라는 점을 알고 "군율" 쪽으로 개념을 잡아나가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로소 텍스트의 맨얼굴을 접한 독자라면, 이 파트가 차라리 "병법"의 당위론적 측면, 혹은 군사의 운용과 이상적인 군주 통치술의 타협과 교차지점을 논한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이 권의 후반부는 차라리 천문 토픽, 곧 뒤에 나오는 <天官書>의 緖論에 가깝다는 점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합니다. 이는 아직도 제도사의 미려하고 정확한 분류가 행해지지 않거나, 인식이 미진한 흔적이 이 대가의 저술에도 여전히 잔존한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도 되고, 반대로 원칙이 무엇이었든 간에 태사공 자신의 세계관, 역사관, 제도관은 이러하다는 고집과 소신의 피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曆書>
p101에서, 사마천이 육십갑자 명명을 쓰지 않고 특이하게 "언봉섭제격"을 쓰는 점을 거론합니다. 역자 신동준 선생님은 이에 적극적 의의를 부여하여, "스승인 동중서의 <춘추번로>를 관통하는 키워드"라든가, 천입합일설, 천인감응설의 발로라고 해석하십니다. 이와는 달리 김원중 교수님은 p134에서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만 설명하시죠. 그러나 좀 뒤로 넘기면 p159에서 역시 천인합일설 언급이 나오기는 합니다.

<河渠書>
p259:1에 보면 關東 지역이 잠시 언급되는데, 김원중 교수님 번역(p299:9 )에는 "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맥상으로나 한문 원문에 비추어서나 명백한 오류입니다.

치수 관련 사업이 비단 농업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8서 중 하나를 이처럼 치수 관개 정책에 할애한 것만 보아도 당대의 관점 뿐 아니라 태삳공 자신의 가치 평가도 농업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지 짐작 가능합니다.

<平準書>
신동준 선생님은 특히 이 책을 두고 <화식열전>의 자매편이라며 두 책의 유기적 연관성을 강조합니다. 신 선생님은 관중이오의 사상을 두고 "商家" 로 독립적인 범주를 마련하여 의의를 부여하시는데, 이는 <관자> 완역본을 따로 내신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일입니다. "정치경제학"이란 용어는 종래 비주류 좌파 경제학을 지칭하는 걸로 이해되어 왔으나, 역자께서는 이 용어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여, 민생을 풍요롭게 하고 정치질서와 경제운용원리를 동양적 인의 사상에 의거 통합적으로 파악할 것을 오랜 지론으로 강조해 오셨죠.

태사공은 사사로이 동전(銅錢)을 주조하여 거만의 부를 얻어 마침내 모반까지 일으킨 오왕 劉濞(고제 유방의 서장자인 劉肥[齊 도혜왕]와는 다른 사람이고, 형의 아들, 곧 조카입니다)의 예를 거론하는데, 사실 동전 주조권을 받았다고 해서 다 세력을 쌓은 건 아니고, <등통열전>을 보면 그런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도 경영 능력의 결핍으로 신세를 망친 (우스운) 예가 나옵니다. 등통이 누구인지 벌써 잊은 분들은 <열전> 2권 "영행열전"으로 다시 돌아가 확인하십시오.

얼핏 보아 관자의 사고 체계인 "商家"의 골자는, 1) 한편으로 구태의연한 농본억상 정책을 지양하여, 사회 전체에 유통하는 부 총량의 증가를 지향, 만백성이 윤택하게 후생을 누릴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와 2) 정치인, 관료와 대상인 간의 불건전한 유착을 억제하고, 아무 규제 없는 자본 증식 만능의 원리를 철저히 배격하 여 신자유주의적 배금주의의 폐단(신동준 선생님의 표현입니다)을 발본색원하자는 도학적 스탠스가 서로 적지 않은 모순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래 이상적인 군자상, 경세가의 모범은, 어느 하나의 모토나 도그마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중용의 길을 걸으며 실제의 성과를 위해 융통성을 능수능란히 발휘하는 철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사공의 시대로부터 천여 년이 지나, 부국 강병을 위해 대대적 변법을 시도한 왕안석도, 그가 내세운 여섯 신법 중 핵심을 이루는 "평준법"이 바로 이 <書> 중 한 권의 제명에 일부의 기원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산이 넉넉하되, 그 고른 향유 역시 담보되어야 태평 성대가 찾아온다"는 이 분명한 인식은, 북송대로부터 다시 천 년 가까이 지난 오늘까지도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도모하자는 첨예한 정치 이슈의 중핵을 형성합니다. 왜 <書>를 현대에 다시 조감, 숙독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사기>의 독해를 그저 흥밋거리의 맛봄 수준에서 한 단계 위로 도약시킬 수 있는지, 태사공은 분명히 독자들을 납득시키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