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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동양고전 입문 - 하룻밤에 읽고 배운 지혜를 만든 지식
이현성 지음 / 스타북스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예전에는 그저 과거시험에나 합격하여 입신 양명을 꾀한다거나, 사회에서 (힘있는) 어른들과 교유하려 들 때, 유교 텍스트에 대한 교양이 없으면 도무지 채널을 통과하거나 말을 트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전을 읽고 오의를 탐구하는 게 모든 젊은이들의 필수 과업이었습니다. 요즘은 사회화의 구조, 성년 편입의 경로가 너무도 달라져서, 그저 출판된(인쇄술이 이만큼이나 발전했는데도) 책의 꼴로 동양 고전을 접하기조차 만만치가 않습니다(그 책을 읽고 새기는 건 고사하고). 뿐만 아니라, 본디 진의를 궁구하기 어려운 게 고전이니만치, 설사 책을 구한다 해도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건 또 별개의 어려운 과제입니다. 1) 접하기도 쉽지 않고, 2) 내용도 어렵거니와 3) 깨친 바를 실제에 적용, 응용하기(이는 자계서의 기능이기도 하죠)란 더욱 난감합니다.

이 책은 동양 고전의 정수만 잘 뽑아 독자에게 전달할 뿐 아니라, 이 핵심의 가르침을 우리 독자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요긴히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저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쉽게 전달라는 내용입니다. 잘 모르는 독자가 읽어도 재미있고(머리 속에 일단 들어가기라도 하려면 일단 텍스트에의 접근 장벽이 낮아야 하죠. 숙성 과정은 그 다음이고), 동양 고전에 꽤나 밝은 이가 읽어도 "아 그런 뜻이었나" 혹은 "그렇게 새길 수도 있겠네" 같은 곱씹음의 마당을 제공합니다. 본디 우리 의식 구조의 심층을 꿰뚫은 성현들의 가르침 자체가 아주 알찼던 까닭도 있고, 이 저자께서 깊이 깨달으신 분이라 좋은 말씀을 잘 간추린 덕분도 있겠습니다.

제가 위에서 "유교 텍스트"를 언급했지만, 모두 3부 12장으로 이뤄진 이 책에는 노장 사상이 1/6을 차지합니다. 과거에는 이 두 입장이 서로 날카로운 대립상을 보였지만(성현, 교조들이 그랬다기보다 그 일부 후계자들의 그릇된 태도로 인해), 통 트게 핵심의 궁극을 엿보기라도 한 이들에게는 결국 "원융회통"의 차원에서 모든 가르침이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기 마련이죠. 궁색하게, 혹은 편협하게 칸막이를 나누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두루두루 연결되고 사람 사는 이치를 막힘 없이 짚고 나가시는 저자의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유가와 도가 외에는, 손자의 병가가 한 장을 차지하고, 그 외 과거 합격을 위한 필독서였던 십팔사략이 주제로서 또 한 장을 점합니다. 앞서 말했듯 답답하게 특정 주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른 장에서 논의되었던 주제가 다시 끌여들여져 하이퍼링크처럼 상호 언급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게 일품입니다.

<논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첫째 문장이 소략하고 번거로운 수식이 없다는 점, 둘째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이 대단히 소탈하며 말하는 본인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딱딱한 유교 경전이라고 하면 이상화한 현인, 성인의 엄격하고 절제된 모습만 강조할 것 같은데 그 반대이니 말입니다. 저자도 이 점을 누누이 지적합니다. 성현들도 이처럼 가식 없는 어투로 진리를 논하고 일상을 걱정했는데, 아무 잘난 바 없는 어린 후손들이 말과 글과 체면과 형식에 얽매어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거죠. 이처럼 참된 고전은 그 겉모습에서부터 어떤 긴한 이치를 깨우치고 들어갑니다.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다."
"군자는 항시 마음이 편안하고 너그럽다."
이는 공자가 책상 앞의 문건으로 허상의 지식 체계를 잔뜩 담은 이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많은 경험을 체득하고, 소인배든 군자든 날품팔이 하층민이든 왕실의 금지옥엽이든 병적인 거짓말쟁이이든 수완 좋은 사업가이든 간에, 폭 넓게 인간을 상대하여 깊은 지혜를 깨친 위인이라서 자연스레 내뱉을 수 있던 멋진 언명입니다.
저자는 특히 "군자"라는 말을 오늘날의 의미로 바꾸면 "지도자"와도 통한다고 했습니다. "지도자"란 꼭 연단에 올라 정견을 발표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직업 정치인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조직에서 아랫사람을 잘 이끌고 동료간의 협화를 도모하며, 정해진 기간 안에 소기의 성과를 잘 올리는 리더, 나아가 수신제가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잘 돌보고 통제하는 모든 사람이 다 "지도자, 리더"입니다. 꼭 공적 모임, 2차 집단, 이익 사회일 필요도 없습니다. 가정에서 아내 혹은 남편에게 존경, 사랑을 받고, 자녀를 잘 돌보는 부모 자신이 바로 "지도자"입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 역시 군주나 기업체 오너가 하는 일 못지 않게 어렵고 중대합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먼저 가정이 각각 바로서야 천하가 태평하다고 말씀하신 겁니다(어느 드라마 제목이 아니라도).
대략 30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그간 유교 도그마에 억눌리고 권위주의 체제의 잔해를 떨치려는 동기에서인지 노장 사상이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아니, 꼭 이렇게 현대사적 의의와 결부시킬 필요도 없을 지 모릅니다. 제가 어쩌다 실시간 시청률 순위를 보면, <자연에 산다> 등 현대인의 모두스 비벤디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산 속에 들어가 독특한 자신만의 터전을 일구는 분들을 다룬 다큐가 의외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그런 분이야 어떤 사회에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을 소재로 (적지 않은 제작비를 들여) 다큐를 제작하고,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률까지 높다는 사실에 더 놀라곤 합니다. 이는 이미 노장 사상의 정수가 우리 민중, 우리 국민의 정신 깊숙한 곳에 침투해 들었다는 작은 반증입니다.

조참은 한나라에서 명재상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의 행정 기법은 딱히 두드러진 게 없고, 선임자가 잘 다져 놓은 전철을 조심해 밟는 것이 첫째 원칙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그가 황로술에 정통한 어느 노인에게 하달받은 깨달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장 사상에 경도된 사마 천 등의 사가가 주로 제기하는 주장이기는 합니다. 각양 각색 기상천외의 취향과 개성을 지닌 수백만의 인민이 모여 사는 공동체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각박하게 통제하면, 달성하려는 목적이 주는 이점 이상의 악폐가 새로 생겨날 뿐이니, 상선약수, 모든 것은 그저 물 흐르듯 제 타고난 본성에 맞게 다뤄야 한다는 이치가, 사실 중원 본토나 여기 한국을 넘어, 인간 생리의 깊은 구석을 잘 갈파한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맹자는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상에 크게 의분을 느껴, 백성을 못살게 구는 위정자를 향해서는 역성 혁명에의 결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등, 집권자나 권세가의 입장에서는 크게 불온해 보일 수 있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제기한 인물입니다. 이런 정의롭고 민본주의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반면, 의외로 실용의 기법이라 할 "설득술(저자의 표현입니다)"의 흥미진진한 각론도 찾아 익힐 수 있다는 게 그만의 매력입니다. 아마도 정치상황은 더욱 복잡히 꼬이고, 유세가들의 주장에 더 이상 솔깃해하지 않는 군왕, 재상 들의 행태에 적응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출된 노하우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