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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힐러리 -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꿈과 열망의 롤모델 ㅣ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움직이는 서재) 8
캐런 블루멘탈 지음, 김미선 옮김 / 움직이는서재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을 이야기할 때, 특히 그들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이제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빼놓곤 논의가 아예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작년, 대략 4월까지 이분을 다룬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는데요. 이들 중 제법 볼륨이 두터운 진지한 분석서만도 두 권이었죠. 이런 책들을 읽고서 그간 오래 품어 왔던 저 자신만의 생각이 냉큼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 생각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죠.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새파란 정치신인이었던 일리노이 주 연방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내놓아야 했을 때, 누가 보기에도 그녀의 정치생명이 그것으로 끝인 듯 했을 겁니다. 경륜이 일천한 상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외에도,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들이 그녀에 대해 품은 감정적 장벽이 생각 외로 높다는 점이 새삼 모두에게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 앞에 어떤 방해나 애로가 놓였을 때, 이를 돌파하고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바꾸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오바마에의 패배가 그녀 경력의 끝이 되기는커녕,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 장관 4년을 지낸후 "역시 다음 대안은 힐러리밖에 없다."는 대세론이 확산되기까지 했죠. 퇴임 후 다음 대선을 노리라는 여론이 그녀의 진영에서 주도된 게 아니라, 장관으로서의 업적을 보고 자연스럽게, 여러 섹터에서 붐이 일듯 조성되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더 이상 그녀는 자신만의 의욕과잉에 의해 정치 노선이 추동되는 정치인이 아니었던 거죠. 한때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젭 부시가 들고 나온 구호가 "누군가는 그녀를 막아야 한다"였듯, 호불호를 떠나 여성이 그만큼이나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정치인으로 우뚝 선다는 자체가 세계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힐러리 로댐은 우리가 흔히 잘못 알듯 엄청난 금수저 가문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여성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간직할 줄 알았던 평범한 분이었고, 아버지는 직업 군인의 경력을 유지하다 늦게 사업에 뛰어든, 규율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인사였습니다. "힐러리"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주셨다고 책에 나오네요. 남다른 인생을 살라며 이런 중성적인 이름을 택했다는 설명인데요(여자란 티가 뻔히 나는 이름이라면, 평범한 여성들처럼 정해진 길을 갈 것 같다는 뜻이겠죠?). 저는 고교 때 영어 선생님이 라틴어 어근("즐거운")을 설명하시면서 이분 이름을 거론하던 게 기억 납니다. 그때 우리들은 다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저 정확한 설명이었을 뿐 웃을 일은 아니었네요.

이 책에 나온 힐러리 로댐의 웰슬리 여대 재학 중 사진은 와 이분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귀엽고 때 안 묻은 모습입니다. 이 책에는 그녀의 지난 역정이 어땠는지 단계별로 추측이 가능할 만큼 여러 컷의 대표적인, 그리고 상징적인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여대생 때는 뭔가 엉뚱한 생각만 잔뜩 하고 있는 듯 순수하고 꾸밈 없는 착한 표정입니다. 그러다가 30대, 남편 클린턴 주지사를 만나 중요 공직 한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에는 당차고 야무지면서도 20대 시절보다 훨씬 세련되어진, 약간 무서워보이기까지 한 의지가 눈빛에서 풍기는 모습이에요. 사람의 인상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해 말해 줍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과 영혼의 색채를 이루는 건, 그 사람이 어느 누구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아 왔는지가 아닐까요. 힐러리 로댐은 어렸을 적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활동을 보고 인생의 지표를 결정했다고 털어 놓습니다. "허영은 그것이 인기가 많은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양심은 그것이 옳은지를 묻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양심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부각되고 주목 받으려는 의도 하나로 별의별 파렴치한 짓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허영을 양심인 양 위장하여, 정작 그런 양심적 결단과 지적이 필요했던 시점에선 실리를 쫓아 조용히 묻어가다가, 상황이 다 끝난 후에야 무엇이 옳다며 진리를 자기가 독점한 양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더군요. 킹 목사의 저 말은 진실과 허위를 가리는 준열한, 그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의 불 같은 시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댐의 양친이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이었고, 힐러리 자신도 (다소 기인으로 평가받던) 배리 골드워터 같은 정치인에 자원 봉사를 나섰다는 점은 이후 그녀의 행보를 고려할 때 정말 흥미롭습니다. 사실 배리 골드워터는 이후 엄청 젊은 부인을 맞이하고, 그 부인의 정치적 성향을 따라 리버럴로 전향했다는 걸 고려하면, 힐러리는 대학생 때부터 사람을 정확히 알아봤던 셈입니다.

빌 클린턴이 어느 인턴과 추문이 생겼을 때, 당사자의 아내로서 그녀가 처했던 입장은 세상 누구도 그 곤경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의 난관이었을 겁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남편의 실수가 안긴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치적 입장만 고려해서 본심을 숨기고 남편을 옹호하는 척한다는 일각의 삐딱한 시선이 더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세월이 그때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런 당치도 않은 편견이 얼마나 사악한 것이었는지는 최소한 증명이 되었습니다. 빌 클린턴이 퇴임만 하면 둘은 즉시 이혼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후 이어진 전례 없는 잉꼬 부부의 금슬이 드러나면서 스스로 꼬리를 내렸죠. 저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얼마 전 TV 생중계로 보면서, 이제는 노인인 빌 클린턴이 아내의 후보 수락 연설을 경청하며 "어쩌면 내 마누라는 저처럼 말도 잘 하고 똑똑할까. 어쩌면 말 한 마디를 해도 저렇게 사랑스러울까."라고 고백이나 하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미소를 지으며 연단에 시선을 주는 걸 봤습니다. 지금 이분이 건강도 안 좋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게 남들 보라고 가장하는 연기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게 의심된다면 의심하는 그 사람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crooked) 인간일 겁니다.
힐러리는 단지 "내가 대통령 한 번은 해야 되겠어." 같은 맹목적 권력 의지를 지닌 유형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지표를 갖고 이미 영부인 시절부터 대중 앞에 나서고, 이를 공개적인 토의와 검증의 장에 내세우려 했던 인물입니다. 모범적인 정책 지향 정치인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분야에서 과감하게 개혁을 내세웠기 때문에 그토록 오해와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겠고 말입니다.
그녀 역시,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리빙 히스토리>를 처음 출간했을 때처럼 아집과 허상에 사로잡힌 미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반대 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단점을 개선하고 전의는 몇 배로 더 키웠으며, 상대를 포용해야 할 순간에 감정을 이성에 의해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함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바마측과 경선 직후 대타협을 이루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확실히 챙기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상대에게 배울 건 과감히 배우는 대범함도 어느덧 자신의 덕목으로 내면화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어느 정도 시련을 거쳐야 재목으로 성장하는가 봅니다.
힐러리 클린턴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1)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 후 정면돌파하는 그 의지 2) 보편타당한 대의 명분을 추구하는 노선이라야 정치인으로서 장수할 수 있다는 바른 신념 3) 무엇보다도 여성에게 인습이 부과하는 장애와 한계를 거의 완전한 방식으로 타파, 극복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 등이겠습니다. 그녀는 유려한 연설가이기도 한데, 책 말미에 실린 영어 원문과 번역은 좋은 독해 교재로 쓰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