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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ㅣ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문이원 엮음, 신연우 감수, 제갈량 / 동아일보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제갈량은 사실 신출귀몰한 지혜주머니(智囊)였다기보다, 원칙에 충실하고 공맹의 가르침, 즉 충효의 도그마에 지행(知行)을 합일시킨
인격자이자, 유능하고 청렴한 관료형 인간에 가까웠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더 정확한 평가입니다. 실제로 <삼국지>의 저자 진
수 라든가, 주를 쓴 배송지 등도 그를 전술적 천재로 보지 않고, "임기응변에 능하기까지 했으면 대적할 자가 없었을 것" 정도로
아쉬움을 표현할 정도죠. 이런 제갈량을 전통적으로 중국 민중들이 사랑하여, 후세에 창작된 연의류에서 그를 책략과 술수에까지 능할
뿐 아니라 호풍환우하는 초인으로까지 과하게 미화한 감이 있습니다. 나관중 등은 이런 민중의 기호에 더 부응했을 뿐이겠고요.
이
짤막한 분량의 <장원>은 그래서 어떤 처세술이나 군략의 비의를 가르친다기보다, 유교의 강직한 충의(忠義)의 도그마를
핵심만 찔러, 그러나 간곡한 문장으로(제갈량은 당대의 문장가이기도 했죠) 표현한 저서입니다. 충의지사는 말을 길게 하지 않고, 그
격정과 에너지를 아껴 실천에다 투입합니다. 제갈량이 그 담백한 충성심과 의리를 얼마나 인격 속에 잘 구현한 인물이었는지는 이
책의 표현과 스타일, 체제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충의지사는 본디 말이 길지 않습니다.
원문부터가 이처럼 소략하니, 고대의 사회와 정치 체제, 그리고 그 속을 살며 일구던 이들의 사고 방식에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는
우리 독자들은 더욱 원전에 친근히 다가서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공명 량(亮)의 원저에다 덧붙여, "문이원"의 해제와 해설을
자세히 서술한 구조입니다. "문이원"은 사람 이름이 아니며, 동양 고전 인문을 연구하는 모임의 명칭인데요. 얼핏 보면 자계서마냥
처신의 바름과 정수를 가르치는 모양새이기도 합니다만, 그게 천박한 처세의 편의를 알림이 아니라 성현들의 강직하고 타협 없는 마음
자세, 수양의 올바른 방향을 일깨우는 내용이니 오히려 원문과 번역만 제시된 편제보다 이처럼 친절한(그리고 긴) "주석"이 함께
수록된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將戒>편에 보면, 역자들께서는 이를 "장수의 표본"이라고 옮깁니다. 실용적인 번역 태도로 보이는데, 뭐 구태여 문의에
충실하자면 "장수가 경계할 바" 정도가 되겠지요. 여기서도 공명은 <상서>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당대의 지침으로
받드는 모습인데, <상서>는 우리가 잘 아는 사서 삼경 중 "서경"으로도 부르는 그 고전입니다. 춘추 시대의 손자도
그렇고, 본디 중국 사상 체계의 여러 가닥 중 특히 병법을 논하는 영역에서는 공맹의 오랜 훈시와 무관하게 다른 제자 백가의
뿌리에서 비롯한 체계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명은 이처럼, 무장의 몸가짐을 논할 때에도 유가 정통의 교리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대전제로 삼아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장강(將彊)>편에 보면 재상의 위치에 오르고도 공명은 궁신접수(躬身接水)의 태도를 내내 유지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장원> 본문에 나오는 게 아니라 역자들께서 다른 전거 중 공명의 행적을 일러 뽑은 표현입니다. 이것만 봐도 이 책
편역 방침의 유익함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이 편에 보면 재물을 가지고도 그 인간됨됨이가 용렬하여 제대로 쓰지 않다 멸망하는 장수의
패착을 꾸짖습니다. 실제로 이 비슷한 예가, 명나라 말기 황제와 환관들이 서로 숨겨 둔 예산을 아끼고 상대가 먼저 금전을 풀어
모병하기를 기다리다 문 앞에 닥쳐 온 오삼계의 군대, 그리고 여진족의 팔기군을 막지 못 해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합니다. 어리석고
멍청한 자에게 재보는 최소한의 편의도 제공하지 못 한 채 오히려 불운과 재앙을 부르는 불씨가 되는 겁니다.
<便利>편은 역자들이 "전쟁에 유리한 조건"으로 옮기고 있네요. 여기서 역자들은 제갈량의 논변을 뒷받침할 방증으로 오대 십국
시대의 이존욱 등 여러 사례가 보여준 병법의 기발함과 반대 사례를 듭니다. 제갈량이 실제로 임기응변에 능하지는 않았으나, 대신
앞선 전사(戰史)에서 여러 좋은 사례를 들어, 유격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등 모범적인 임기응변의 교리화를 꾀합니다. 과연
제갈량다운, 규칙에 어긋나지 않고 재주꾼의 폭주를 경계하는 조신한 가르침이자 시스템의 정비라고 하겠습니다. 삼국 시대(제갈량의
활동 시기 기준)와 오대 십국기는 거의 700년이라는 시간 차가 나는데도 이처럼이나 적실하게 교훈이 적용되고, 또 서로 다른
사서에서 유사한 예를 끌어온 편역자들의 소양 높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제갈량(연의가 아닌 정사 속 인물)이 이처럼 구체적인
병법 실무를 논한 것도 진귀하게 보는 표본일 뿐 아니라, 사회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이 전법의 특수한 논변을 실제 처세에,
그것도 군자의 당당한 마음가짐으로 응용할지 깊이 고민하게 돕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