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자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까? - 공자와 십대가 나누는 30가지 인성 이야기 ㅣ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12
김미성 선생님과 제자들 엮고 지음, 방상호 그림 / 꿈결 / 2016년 7월
평점 :
사람이 사람의 모습만 하고 태어났다고 해서 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 합당한 처신을 하고, 그런 처신을 할 정신적 각성이 이뤄져야 그게 온전한 사람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에게 우선 요구되는 덕목은 그래서 "인성"이어야 함이 유난히 강조되는 요즘이죠. 이런 인성 역시, 지식이나 특정 감수성 못지 않게 어려서부터 계발되어야 함에도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른 인성 함양에 대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확실한 지침과 사표가 될 분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인 공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공자님 같은 대성현의 가르침을 자구까지 정확히 익힌 인재라야 높은 관직이 보장되는 풍토에서 살고 있었죠. 그래서 예전에는 지식뿐 아니라 인성까지 동시에 학습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 가르침의 한복판에 공자의 사상이 자리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인문적 지식과 학습자의 인품, 인성, 인격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교육 체계란 대단히 효율적이고 동시에 이상적이라는 판단이 드는데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여러 모순과 문제들이, 이처럼 우리 조상들에 의해 직접적인 해법이 오래 전부터 마련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자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원전에서 그대로 배우고 이해하며 실천에 옮기기엔, 첫째 중국의 언어(한문)로 쓰여졌다는 점, 둘째 너무도 오래 전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익히고 읽히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내용을 보다 쉽게 풀고 우리 아이들의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에 적용하도록 어른의 지도가 꼭 필요한 편인데요. 이 책은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인 김미성 선생님이 오랜 지도 경험을 살려 아이들의 눈높이에 꼭 맞는 서술로 독자(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합니다. 책을 읽어 보니 내용이 쉬울 뿐 아니라, "아 그 말이 그런 뜻이었나?" 하는 깨달음이 올 만큼, 해의가 깊이 있으면서도 참신합니다. 쉽다고 무작정 좋은 게 아니라, 그 가르침의 핵심을 정확히 꿰뚷는 설명이라야 교육적 효과가 있겠죠.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인데, 게다가 꿈결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 편집이 예쁩니다. 아이들에게 조금만 의욕을 불어넣어 줘도 술술 읽히고 내용 소화도 완벽하게 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진짜 장점은, 저자이자 지도교사인 김미성 선생님이 성인, 어른, 교사의 언어로 쓴 게 아니라, 자신이 지도하는 중학생 아이들의 표현과 깨달음, 느낌으로 쓰여진 글들의 모음이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이해한 바 그대로를 정직하게 쓰고 있으니, 비슷한 또래들의 마음에 더 쉽게 이해되고 다가올 수 있죠. 어른은 아무리 쉽게 쓰려 해도 감성의 레이어가 이미 다르게 형성되었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내용을 배운 친구들이, 생활 속에서 자신이 느끼고 겪은 바를 대화하듯 전달하는 게, 공자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구성도 참 많은 숙고를 거친 편제인데요. 첫째 파트는 (공자님을 통해 알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 둘째 파트는 마주하는 상대로서의 "너", 셋째 파트는 나와 네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는 유교, 유학의 오랜 교리인 삼강령 팔조목의 핵심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각 파트마다 아이들이 쓴 글 열 편이 담겨 있고, 그 글들에는 공자의 가르침 중 대표적이라 할 만한, 그리고 주제에 부합하는 도그마가 주제로 꼽혔습니다.

구본혁 학생의 글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나비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고가의 학원이나 교습을 받는 애들이 부럽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보입니다. 어떤 애들은 처음부터 별 노력 없이 척척 어려운 과업을 해 내는 듯합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분노와 좌절감을 키우기 쉬운데, 세상은 어차피 미숙한 개인들이 숙련과 사회화 과정을 거쳐 조직의 성원으로 편입됨을 알지 못하는 탓에, 이런 감정이 인성에 그릇된 영향을 항구적으로 남기기 쉽습니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허구에 불과한 통념입니다. 공자님의 가르침인 "잘못을 알고도 고치치 않는 게 가장 나쁘다(過則勿憚改. 잘못이 있으면 그를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가 이렇게 실생활에서 다가올 줄은 몰랐네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치를 내면화할 생각을 해야지, 무시받고 따돌림당했다는 과거의 상처를 비뚤어진 권력욕으로 바꿔서, 유치하고 미숙한 자아만을 꽁꽁 싸매고 감싸는 것처럼 잘못된 선택이 또 없습니다.
이가희 학생의 글은 매우 짧지만, 어른들도 미처 이해하지 못한 깊은 가르침을 잘 전달하는 느낌입니다. 미혹(迷惑)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사리 분별을 못 하는 단계를, 아주 쉽게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잘 풀어내는 것같네요. 사람은 좋은 감정이건 나쁜 감정이건 자신의 격정에 휘말리면 사리의 바른 분별을 못 이루는 수가 많습니다. 공자님은 일찍이 이 감정이 이성을 그르치는 위험을 내다보고, 제자들에게 마음을 침착히 다스릴 것을 주문했던 것입니다. 종심소욕 불유구라는 궁극의 경지가 공자 자신도 나이 칠십에 이르러 도달했다는 진솔한 술회를 보면 이야말로 인격자가 성취하기 가장 어려운 과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성적 부진으로 인한 부모님 간의 다툼에 비유하여, 중학생 수준에서 가장 깊이 소화하려 애쓴 점이 정말 돋보이네요.

공자님의 가르침 중에는 딱딱하고 엄숙한 윤리적 교훈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를 바라본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털어 놓는 감회가 "못하는 게 없으시니 진정 성인이시다"인데, <시경>은 춘추 시대의 노래 가사집이지만 공자는 이를 두고 "시 삼백은 한 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음이다"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사람이 누굴 좋아하고 애모할 때 솟아나는 정직한 감정에는, 남을 해코지하거나 그릇된 물욕을 추구하려는 못된 마음이 전혀 끼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심지어 어린 학생들도, 그 나이에 맞는 연모의 감정이 무엇인지 건전하게 느끼고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진 학생의 글은 시경을 자주 인용하는 공자의 습관에 주목하여, "로맨티스트로서의 공자"에게 어린 학생들이 배워야 할 바가 무엇인지 재치 있게 풀고 있네요. 나와 너의 관계가 사랑으로 가득찰 수 있다면, 그런 너와 나의 바른 관계가 모이고 모여 형성되는 세상과 사회 역시 부도덕한 다툼과 미움이 사라진, 참된 공동체로 바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