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아이 1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모든 우연은 우연인 듯 보여도 알고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떤가요, 이 말에 동의를 하시는 편입니까? 삼라만상 그 운용의 이치를 모두가 필연이요 업보로 파악하는 불가나 힌두이즘의 관점에서라면 이 명제는 참입니다. 그러나 일상을 바쁘게 사는 평범한 우리들의 눈에, 오히려 "뭔가 의미가 있는 듯 보여도 알고 보면 그저 우연의 산물에 불과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지는 않을까요. 무엇이 진리인지는 부다나 공자님 같은 대성현이 아닌 탓에 알 수 없으나, 어떤 특별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는 저 맨 위에 적은 말이 자신들의 가슴을 저미는 삶의 질곡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들(가상이길 바랍니다)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며, 다만 북유럽과 독일을 잇는 유틀란트 반도(수도는 동안의 섬에 있습니다만)에 자리한 작은 나라, 우리 막연한 선입견으로는 평화롭고 "착한(?)" 나라이기도 한, 덴마크란 지리적 배경에서 힘들게 힘들게 생의 특정 시기를 거쳐 자립한 이들입니다. 그렇게 힘든 환경에서 용케도 버젓한 현재의 직장, 직위, 신분을 가졌겠다 싶을 만큼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대작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면, 지독한 빈민가 출신인데다 성장기 대부분을 조직 폭력단원 일에 종사한 자가, 행운과 약삭빠름으로 정부 고위 관료직에까지 오른 인물이 하나 나오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 한창 사회에서 중간-고위 관리자 노릇으로 활약할 나이 때의 인물들은,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네요. 물론 어떤 이들끼리는 서로 알고, 어떤 이들은 같은 수용 시설에서 계속 같은 시기를 보낸 건 아니라 모르기도 합니다. 서로 계속 알아 온 사이끼리는 큰 문제가 없는데(작은 다툼과 갈등은 언제나 있더군요), "잠시 우리 사이에 있다 떠난 아이"가 누구인지를 몰라 일이 커집니다. 개인의 가정사나 평온을 위협하는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아니라 이들, 혹은 이들이 모시는 인사들이 제법 거물들이라 아예 국가적 스캔들로까지 번질 테세네요.

백성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베풀었고, 소탈한 매너와 인격으로 인기가 높았으며, 나중에는 전제 군주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국민에게 보다 큰 권리와 참여를 허용하는 입헌 조치를 내린 덕분에 "민중의 왕"으로 불리었던 프레데릭 7세. 그가 그 설립에 간여한 고아원이라면 정말 유서 깊고(근 두 세기 전의 군주입니다), 이후로도 주로 보수파 정치인들에 의해 "덴마크인은 어느 누구라도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해야 한다"는 정치적 슬로건을 입증할 좋은 예(혹은 정치적 쇼의 무대)로 널리 활용됩니다. 이 소설 전체를 통해 반복되는 지극히 타당한 말(여기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듯)처럼 "가장 좋은 집은 해변가에 있다"는 원칙을 그대로 실천하기라도 하듯, 이 고아원은 멋진 구조에 안락한 시설에, 가장 비싼 땅을 점유하는(쉽지 않은 결단이죠) 인도주의와 박애의 표본입니다. 원장이나 사감 등도 사명감 투철한 사람들이며, 무슨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악당들처럼 고아 장사를 하는 류가 아닙니다(한때 페스탈로치도 "고아 장사꾼"이란 오해를 받았죠). 겉을 봐도 그렇고, 속을 어지간히 살펴도 별 문제가 없는 듯하네요. 입양을 장려하는 (오래 전의)홍보 문구에는,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의 친부모를 추적할 수 없습니다"가 명시됩니다. 요즘이야 시스템이 좋아져서 큰 물의는 생기지 않지만,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이 이 시설에서 아이로 지내던 수십 년 전이라면 반드시 보장되는 지원은 아니었을 텝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피임 도구와 약품이 대중화되지 않던 시절, 타락한 남성의 정욕에 희생이 되어 그 대가를 오롯이 떠맡아야 했던 여성들은, 특히 고위층과 유력 인사의 사생아를 낳고서는 "철저한 비밀이 보장되던" 이곳에 제 아이를 떠맡겨야만 했습니다. 만약 이 스캔들의 진상이 철저히 밝혀지면 해당 정치인의 정파와 그 소속 정당은 비록 과거사라고는 하나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이 인도주의와 국가 복지 시책의 성공을 과대 포장하여 그토록 위선적인 속셈을 뒤에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국민의 공분을 부를 게 분명하죠. 물론 입양아 당사자들의 사생활도 보장이 되어야 하기에, 내밀한 출생의 비밀은 그 공개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겉으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이 특급 국립 고아원의 추악한 단면입니다.

"추함"은 이 소설 속에서 다른 의미로 독자에게 강렬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이들 중에는 예쁜 용모로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만한 처지도 있을 테고, 이런 아이들(작중 페터 같은 아이 - 나중에 기자가 되죠)은 설령 고아라 해도 쉬이 버젓한 형편의 다른 가정에 입양될 수 있겠죠. 헌데 보통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면(다 고위층의 사생아라는 게 아니라, 그 중에 숨겨진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빈곤층에서 유기된 출신이 훨씬 많겠죠), 장애가 있거나, 용모가 특히 추하거나 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행여 좋은 가정에 입양이 되어도,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렇지는 않겠으나, 유독 이 소설의 사정은 고아들이 특이한 이름을 갖는 예가 많더군요. 뭐 고아 아니라도 이름이 이상하고 아버지가 노조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한 애(뮈)도 있었습니다만.

부모에게 버럼 받거나 온전한 혼인을 성립시키지 못한 출신이라는 사실도 서러울 텐데, 이러저런 이유로 또래들에게 따돌림까지 받고, 나중에 입양아라는 사실이 밝혀져 또 한번 상처 받고, 마리 같은 아이는 극심하다 할 만큼 추한 외모 탓에 어느 가정으로부터도 입양이 이뤄지지 않아 평생을 시설에 머물러야 할 형편입니다. 그나마 마리는 시설의 책임자가 직접 입양을 한 덕분에, 그리고 예의 "최고급 시설"에서 베푸는 복지 덕에,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만, 이런 선천적인 악조건이 안긴 상처, 그리고 시설이 숨기려 애쓴 추악한 사정을 알고 나선 마음의 평온을 찾기 힘듭니다. 마리는 꼬마 때 이웃에 사는 막달렌이란 성인 여성을 알게 되는데,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으나 유복한 집안의 지원, 천성적인 밝은 성품으로 오히려 주위에 희망을 주는 존재입니다. 마리는 처음에 이분을 만났을 때 "증오와 사랑"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체험을 했는데, 한편으로는 그 외모의 추함에 대한 본능적 경멸, 다른 한편으로는 동질감이었겠죠. 막달렌은 프레데릭 7세를 "영혼의 친구"로 두는 좀 특이한 정신 세계를 가지기도 했는데, 물론 혼령이 찾아 와 대화를 나눈다는가 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이런 사연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미스테리와 직접 큰 연관을 가지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요(아직 2권을 안 읽었습니다), 작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대목을 세심히 묘사하는군요.

세심한 묘사가 이뤄지는 건 이 대목 뿐 아니라, 고아원 출신 소년(지금은 다 성인이 되어 자리를 잡은)이 그 고난의 유년기에 겪었던, 아주 지독한 사건 하나를 끔찍한 방식으로 회고하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 컸기에, 자기들끼리 모여 약자의 설움을 공유하고, 그 맺힌 한을 "더 약한 자" 하나를 찾아 내어 풀어야만 했습니다. 이들이 만약 그대로 사회 하층민으로 주저앉았다면 그런 기억을 간직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할 여유도 없었겠으나(실제로 이런 게 더 일반적입니다), 버젓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보니 이런 추악한 과거가 다 끔찍한 악몽으로 남는 거죠. 이들은 우연한 편지, 협박인지 뭔지도 모를 모호한 편지를 동시에 받고서, 수십 년 전의 과거에 다시 발목이 잡힙니다.

"덴마크는 작은 나라다.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마치 작은 시골 주민들이 모두 들어 알듯 사정이 뻔하다." 그러나 덴마크는 훨씬 높은 윤리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유명한 기자 한 사람이 근거도 없이 불법 이민자가 드레퓌스처럼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그의 방면을 이끌었지만, 이 자는 그런 호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동종 범죄를 또다시 저지르며 은인들을 비웃고 자살합니다.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기자는 거의 경력을 끝내야 할 만큼 비난을 받는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윤리의식의 발현으로도 보입니다. 이에 덧붙여 케네디의 암살, 훨씬 전 나치의 점령과 게릴라 활동, 68세대를 자칭하는 이들의 보수화 등이 촘촘한 시대배경으로 제시되어 사연의 실감을 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독일이란 큰 나라에 가로막힌 지리적 위치를 감안할 때(더군다나 북구 특유의 보수성까지 생각하면) 프랑스 68세대가 그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처음 알게 되었네요. 심지어 이 소설에는 히피 족도 나와서 남 스페인에 자치구를 찾아 정착한 어느 여인(토싱의 어머니) 이야기도 잠시 언급되며, 고아 하면 빠질 수 없는 1970년대 한국 고아 수출도 지나가듯 나옵니다. 박진감 있는 전개보다 인간 내면의 깊숙한 상처가 어디서 비롯하고 어디에서 크게 덧나는지 그 사려 깊은 고찰이 돋보였습니다만, 2권은 또 어떨지 계속 읽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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