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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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는 보통 제왕학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유명한 고전입니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주로 유념하던 사서 삼경 등 과거 시험 출제에 애용되던 텍스트와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그 중요성과 연혁에 비해서는 현대인들에게 그 지명도가 낮은 듯 보입니다. 이 고전이 결정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건 모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 그 취임까지의 준비 기간에 이 책을 읽었다는 일화가 널리 퍼지고부터입니다. 사실 조선조, 고려조에 이 책을 읽은 축은 그저 제왕들에 그친 게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명신, 충신들처럼 군주를 잘 보좌해야 할 재상과 판서 들, 혹은 장래 일신의 높은 영달을 바랄 당상관, 당하관들도 넉넉히 가까이해야 할 잠재적 독서층이었겠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바른 처신으로 동료와 상사의 신망을 얻고자 할 모든 직장인 역시, 이 책의 저자가 먼 시점부터 염두에 둔 청자(聽者)가 아니었을까요.

정관정요는 몇 년 전부터 여러 역자분들에 의해 완역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김원중 선생님의 한국어역의 특징이라면 1) 타 저자의 주가 아닌 텍스트 본문에서 한문 텍스트의 누락이 없고 꼼꼼한 옮김입니다. 2) 김원중 교수님의 해설엔 초보자를 넉넉히 고려하는 친절함이 깃듭니다. 기본적인 사항을 언제나 먼저 짚고, 혹시 필요하다면 여러 주석본을 인용하여 부가 설명을 하십니다. 3) 편집에 가독성이 높습니다. 이는 책이 펴내어진 출판사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4) 윤문이 꼼꼼하여 문법 오류나 오탈자가 매우 드물고 문장이 평이하게 잘 읽힙니다. 특히 이 <정관정요>는 어떤 심오한 경전의 의의를 탐구하기보다, 다분히 실용적(처세적) 목적에서 읽혀야 하겠으므로 이런 미덕이 더 절실히 요구됩니다.

당태종은 수천 년에 달하는 중국 역사 전체를 통해, 학자나 민중을 불문하고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객관적으로 그는 "사실상의" 창업 군주로서 제국의 기초를 튼실히 닦은 공덕이 크죠.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선 무단히 고구려를 침공하다 국력을 낭비했다는 점에서 비난과 빈축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이조차도 그는 "즉시" 과오를 뉘우치고 갓 성립된 체제의 내실을 다지는 게 진력했다는 점이 탁월합니다. 이 과정에서 "위징이 살아 있었던들 그가 진언을 삼갔겠으며 끝내 내가 이 무리한 원정을 시도했겠는가!"라고 개탄했다는 그의 회오 속에, 이 고전 <정관정요>의 주된 저술 모티브인 그 유명한 명신이 또 등장하여 인연을 잇는군요.

그는 군주의 인품과 태도 면에서 또한 기념비적인 덕성을 갖춘 걸물이었습니다. 인신(人臣)된 자로 제갈량의 전범이, 학자로서 수신의 미덕을 갖춘 자로 동중서 같은 이의 롤 모델이 꼽히겠으나, 제왕으로서 만인(이라기보다 군주의 후계자 될 자들)의 거울이 될 처신이라면 당연 당태종의 그것이 거론됩니다. 이는, 건국 군주(부친 고조보다 사실상 더 큰 공헌)로서 손에 피를 끔찍히도 묻혔으며, 무엇보다 제 피붙이를 둘씩이나 죽인 패륜과 악행을 저지른 이로서, 향후 원만한 정국 수습과 차분한 나라 살림이 거의 기대되지 않은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헌데 일단 보위에 오르자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정적이자 자신의 패륜 행각의 가장 큰 표적, 피해자였던 형의 최측근 위징을 등용하여 국사의 매 면모를 직간하도록 배치했습니다.

위징의 처신 역시 볼 만한데, 죽다가 살아난 목숨 그저 일신의 안위나 돌보자는 생각에 굴신과 아첨, 복지부동으로 일관하지 않고, 군주(한때는 주군의 정적)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오히려 말마다 폐부와 정곡을 찌르는 충언, 냉정한 국정 운영으로 응수했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일부러 비위를 긁는(즉 국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삐딱선) 제스처도 취했는데, 이 역시 바보가 아닌 그로서 매 순간 목숨을 거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세민의 성격이 간단치 않고, 친형제의 생명을 둘이나 앗은 이가 일개 재상 따위의 행보에 겁 먹을 게 뭐겠습니까. 여튼 그는 어차피 거두어졌다 다시 들인 여분의 생을 산다고 생각하고, 신하로서 남아로서 국가의 신민으로서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언행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군주와 신하가, 서로 속을 훤히 꿰뚫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통 큰 제스처를 취하는 건 중화 문명에서 실력자, 대인으로 천하에 보이려는 모든 야심가들의 공통점입니다. 서안 사변을 기술할 때 유시민도 자신의 <거꾸로..>에서, 장개석과 장학량, 주은래의 쇼맨십을 두고 이런 평가를한 적 있습니다. 당 태종 역시 천하에 "내가 결코 냉혈한이나 속 좁은 독재자가 아님"을 보여 주려 했고, 위징 역시 그런 "쇼"에 철저히 조연으로 부응했습니다. 때로는 주연의 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오버액션까지 할 정도였는데, 이 역시 당 태종은 바로 그 속내를 간파하고 케미를 맞췄지요.

지금 한국은 국제 정세상 대단히 어려운 시기입니다. 중국 당국은 이례적으로 "한국의 친구들(朋友們. 붕우문)"이란 표현까지 써 가며 재고를 촉구했으나, 이내 "90% 이상의 네티즌이 제재 원해" 같은 여론전을 쓰는 등(환구시보) 국익 앞에 체면을 돌보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 가지 정책으로 일관하며 융통성을 잃는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다음 한 수가 무엇인지 알고 현명하고도 실리적인 외교를 펴야 하며, 아마도 단지 일국의 통치자로서 발휘해야 할 지혜를 넘어, 국가 간 치열한 외교전에서 십분 채용해야 할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지혜가 이 책 안에 담겨 있는 만큼, 당국자들이 넉넉히 참고해야 할 인문 고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런 위기의 시국일수록 나라의 참 주인인 우리 국민들이 더욱 열독하여 냉철한 집단 지성을 가다듬는 데에도 이 책은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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