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영화로 배우다 - 십대가 꼭 지녀야 할 12가지 인성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11
라제기.백승찬.이형석 지음, 남동윤 그림 / 꿈결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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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갈수록 조직화되고, 조직 안에서는 혁신이 강조되고, 혁신을 위해서는 조직원 사이의 협업이 강조되는 추세입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개인이라도, 불건전한 파벌 형성 따위의 시도로 조직의 협화(協和)를 깨뜨린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능력조차 보잘것없는 개인이 비열한 책동으로 가뜩이나 불안정한 조직 내 입지를 지키려는 의도를 갖는다면, 그 개인이나 조직을 위해 대단히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이런 분열적인 행태를, 안목 있는 지도자뿐 아니라 공동체의 성원들부터가 먼저 감지하고 경계하는 분위기더군요. 인화와 융화가 그만큼 중요하며, 개인주의를 그처럼 강조하는 서구 사회에서 오히려 더 강조되는 덕목이 이런 고차원적 협업 지향 인성입니다. 부회뇌동하면서 조직의 분열을 뒤에서 부추기는 이중인격자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책은 그런 고차원적 인성이, 어린 나이에서부터 내면에 바로 자리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공감이니 협동이니 하는 게 그저 눈치나 살살 살피고, 남들의 성과에 묻어 가면서 사실상의 태업을 벌이는 행태를 의미하는 게 아님은 너무도 분명하죠. 참된 인성이 무엇인지, 목적과 효율을 바람직한 지향성까지 갖추면서 현실화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겉과 속이 다른 책략을 구사하지 않고 회사 등의 조직에서 참된 능력을 발휘하려면, 창의성이나 혁신 역량처럼 어린 나이에서부터 그 올바른 개념이 갖춰져야 함이 자명합니다. 이 책은 바른 인성의 구체적 덕목을 모두 열 두 가지로 잡으면서, 어린 독자(제 생각에는 중학생 고학년 정도부터가 적당한 것 같았습니다)와 심도 있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책의 어조는 차분히, 그러나 가볍지 않게 독자를 설득하려는 품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어린 독자에게 이와 같은 인성을 가르치는 "교재", 매개체를 영화로 잡고 있습니다. 영화처럼 인생의 진실(단면이든 총제적 조망이든)을 강렬하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서사가 또 없죠. 영화 안에는 감상자의 정서를 자극하고 공감과 설복을 유도하며 세계에 대한 비전의 변화를 촉구하는 강렬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런 주제 지향의 설득은 얼마든지 다양한 층위를 갖춘 스펙트럼으로 분화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어린 독자(동시에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어엿한 구성원이기도 하며, 앞으로 더욱 복잡한 2차 집단의 한 자리를 차지할)에게 그 나이에 걸맞는 성장 단계가 요구하는 인성 덕목을 예리하고 섬세한 의도로 키우려 들고 있습니다. 영화는 올바로 선택되고 건전하게 해석될 때, 가장 좋은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넓은 범위에서 "교재(물론 영화)"를 선택했고, 건전하면서도 밀도 높게 "인성 형성"을 위한 메시지를 뽑아 냅니다. 쉽게 보여도 이런 작업을 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게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강동원 주연의 한국 영화로, TV에서도 자주 방영하여 한 번 정도는 관람한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얼핏 보아 우스운 모습, 외관이라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 듯 착각을 부르지만, 엄연히 질환의 결과로 빚어진 비정상의 불운한 조합이기 때문에 결코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왕따 같은 행태의 희생양이 되지 않아야 할 상황. 부모보다 늙어 보이고 추한 겉모습을 가진 아이. 분명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개인(타인)은 아닙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을 구태여 상정한 건, 오히려 다수와 소수 간의 작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빚어질 수 있는 집단 따돌림의 해악을 잘 강조하려는 주제의식 덕분이죠. 하나 유감인 건 해당 파트의 뒷부분에서 영화의 결말이 먼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아이와 함께 영화를 먼저 감상한 후 부모가 함께 읽는(그리고 대화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한 파트가 끝난 후,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다른 영화들을 추천하는 방식인데요, 저는 1980년작 존 허트가 주연한 <엘리펀트 맨>을 같이 권하고 싶습니다. 몇몇 장면이 어린 관객에게 충격적일 수 있지만 어차피 그런 점은 이 <두근두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글러브>는 청각 장애인 선수들로 구성된 고교 야구단의 사연입니다. 강우석 감독의 연출인데, 일견 따분하고 그저 인위적 감동만 강요할 것 같은 이런 소재를 두고 너무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려나가서, 감독의 전달 솜씨가 이처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잘 단련된 관객에게까지 깨우쳐 준 좋은 실례였습니다. 저 역시 저자분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건 "특별 대우"가 아니라, 그저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열린 태도라는 거죠. 제가 이 작품을 보며 놀란 건, 감독이나 배우들부터가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기에 이런 결론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공유되고 설득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주제나 메시지 전달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고, 관객에게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는 태도가, 감독 특유의 유능함과 결합한 결과입니다.

"타문화 이해", 그리고 "인간 문명에 대한 지나친 경외와 치우침"을 경계하자는 주제로, 블록버스터인 <혹성 탈출>을 이해하자는 저자분의 시각이 돋보였습니다(행성/혹성 표기 논쟁은 일단 차치하고). 사실 <스타 워즈>같은 SF 컨셉에서도 그 기괴한 모습을 한 외계인, 괴물 들의 비주얼은 타인종, 타민족 등이 주류 백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은유한 것이거든요. 이 <혹성 탈출>에서도, 겉으로는 진화의 그 느린 단계에서 (과학적으로야 있을 수 없지만) 특정 국면(phase) 둘이 동일 시기를 공유하며 빚어지는 아찔한 충돌과 갈등, 생존 투쟁을 다룬 이야기지만, 그 수면 아래에는 우리 시대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문명 충돌, 인종 차별의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이는 먼 나라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남아 등지에서 이주해 온 이들 때문에 바로 우리의 현실 일부가 되고 있는 다문화의 심각하고 절실한 얼굴을 바로 직면해야 하는, 우리 자신의 과제요 도전입니다. 어른 세대는 이 문제를 학교에서 교육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이처럼 미숙하게 대처하지만, 어른들보다 더 자주 더 심각하게 이 이슈를 맞닥뜨릴 지금의 10대들은, 바르고 체계적인 접근이 더 필요합니다. 책에 나온 여러 논변과 담론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먼저 심각하게 숙고해야 할 주제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올바른 답이 나옵니다. 어린 독자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이런 책을 읽고 사회에서 부대끼는 여러 복잡다단한 문제를 총괄적으로 해결해 줄 "인성"이란 자질의 실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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