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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6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6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11월
평점 :
우리 현대인은 참으로 나약하고 미덥지 못한 존재입니다. 아니, 자신만의 기풍과 지조를 유지하고 떳떳이 생활을 영위하면 될 것을, 왜 "트렌드"라는 변화무쌍하고 기복 심한 녀석을, 그것도 애써 개념화하는 수고까지 들여 물신 숭배나 하듯 끌려간다는 건지요. 우리의 선조님들께서 보셨으면 "그 녀석들 참 주견없다"며 호통깨나 내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내면을 알찬 실속으로 다지는 동시에, 나와 같은 시대, 공간을 호흡하는 동료들이 무슨 생각과 지향을 갖고 살아가는지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의무를 동시에 이행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처지입니다. 내 생각만 갖고 그게 제일이라는 양 독단적인 태도를 고집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생각마저 관철시킬 수 없는 고립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트렌드는 첫째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떤 크고 작은 유행, 흐름을 선호하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이며, 둘째 이런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자아실현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중요 참고 자료가 되는 인식의 틀입니다. 세상이 이처럼 타자와 환경과의 유효한 소통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꼴로 변했는데, 트렌드에 눈 감고 세상을 산다 함은 눈을 가리고 스포츠카를 모는 무모한 망동이나 진배 없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진단을 받는 단계야말로, 가장 명석하고 현명하며 균형 잡힌 세계관을 지닌 석학을 거친 후에야, 소비자로서, 독자로서, 직장인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인격을 지닌 개인으로서 바른 처신을 할 수 있다며 안심할 수 있는 지경입니다. 아무에게나 "이것이 트렌드요"라고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것은 곧 나의 기본 인식틀을 허술하게 다루는 소이입니다. 김난도 교수님처럼 해박하시고 빈틈 없고 동시에 자신의 주장에 대해 집요할 만큼 책임을 지는 분이 내린 진단이라야, 우리 독자들이 안심하고 인식의 요람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이 시리즈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책의 절반은 작년판의 예측과 전망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그 반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며 호언하는 건 누구의 입으로부터나 쉽게 나오지만, 자기 반성을 흔쾌하며 거침 없이 공개된 장에서 공평무사한 기준으로 검증 받기란 참으로 고통스럽고도 감내하기 어렵습니다. 책의 절반이 이런자기 반성의 기조로 채워지고, 다음 해의 전망이 이 리뷰의 기반에서 시작한다는 것부터가 책의 신빙성을 확고히하는 근원이 됩니다. 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는 막연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트렌드"를, 매우 섬세하고도 치밀한 사례를 들어 "예측"한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과하다 싶은 핸디캡을 지우고 시작하는 편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예측은, 시간이 지난 후 매우 혹독하고도 사항천착적인 비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 시리즈는 검증에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낼 뿐 아니라, 엄격한 검증 절차까지 (독자를 대신하여) 자청, 집행하고 있으니 차라리 독자가 그 성실성에 부끄러워질 뿐입니다.
1인 미디어 전성시대에 대한 논의는 이미 4, 5년전부터 세대를 불문하고 향유와 생산이 보편화된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이 2016년판에서 또다시 취급함은(이미 이 시리즈의 지난 권들이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런 트렌드가 종전과는 양상과 색채를 달리하여 "진화"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작년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심드렁하게 읽어내려간 편이었으나, 최근 미디어에서 이 토픽 관련 각종 말썽과 사고, 우려가 다뤄지는 걸 보고 집필진의 혜안과 빼어난 센스에 감탄하게 되었네요.
Ethics on the Stage 역시 7, 8년 전부터 소비자 섹터의 자발적인 추동력을 확보한 트렌드입니다만(한국 기준으로도요), 최근의 소비자들이 개별 소비행위- 지극히 개인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 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의 진화적 발전 양상을 볼 때 이 책 올해판에서 다시 취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 기획이 "너무 12간지의 두문자 맞추기에만 집착하는 것 아닌가" 같은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나, 제가 간접으로 전해 들은 제작 경로에 의하면 정반대입니다. 먼저 개념을 잡고, 이를 추리고 정제하여 대(大) 트렌드를 구체화하고, 중복되는 사항을 최소화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애크로님으로 이를 보기 좋게, 혹은 인문적 무게를 가미하여 제목을 정할 뿐이죠. 뿐만 아니라 이 Ethics on the Stage와 같은 논의야말로, 기업이 아닌 소비자의 지평에서 "트렌드"를 연구하고 정의하는 의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는 유력한 예증에 가깝습니다.
All’s Well That Trends Well 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대사(이자 작품 제목)를 멋지게 패러디한 문장입니다만, 트렌드의 물적 지향을 넘어 정신적 구조를 절묘하게 짚어낸 챕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게 유행한다 저게 뜬다 같은 저널리즘식 서술은 사실 유효기간도 짧을 뿐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정신적 성장을 유도하기도 어렵습니다. 흔한 의미에서 트렌드가 무엇인지는 TV만 봐도, 친구만 부지런히 만나고 다녀도 감을 다 잡습니다. 표피적 현상을 넘어 사회의 생산, 소비 이면에 무슨 철학과 욕망이 숨겨져 있는지를 공부하는 것이, 이런 책을 독자가 읽는 이유입니다. 이런 장은 트렌드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진단과 예측을 넘어 교과서적 인식 틀을 제공해 주는 멋진 서술이었습니다. 시리즈가 해가 갈수록 학문적 의미에서 알차지는 것도 애독자들이 해마다 이 신간을 기다리게 되는 중요한 보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