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오더 메이즈 러너 시리즈
제임스 대시너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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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 <스코치 트라이얼>이 곧 개봉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프리퀄 <킬 오더>를 포함해서 모든 "메이즈 러너" 시리즈 영화에 대응하는 원작 소설들이 이미 출간 되어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책 사이에 낀 리플렛에 인쇄된 사진을 보니 구매 충동이 일더군요. 내용 전개도 상당히 스피디해서, 운 좋게도 데모 필름을 미리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프리퀄에선 "지구가 왜 그꼴이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 나옵니다. 사실 프리퀄이란, 작품 내적으로야 기 출간작들보다 앞선 시간대의 사건을 다루지만, 최소한 대외적 발표는 이후에 이뤄집니다. 따라서 작가가 성실하고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은 이상, 보통은 어딘가 억지스러운 구석이 나온다든가 설정 충돌을 빚기가 쉽습니다(상업적 성공을 노리고 무리하게 구상, 출간한다든지). 이 <킬 오더>는 그렇지 않아서, 등장 인물이나 배경의 차림에 있어, 전작(내용적으론 이후)과 아귀가 대체로 잘 맞는다는 게 특징입니다.

 

바이러스가 묻은 화살을 쏘아, 그 맞은 이의 두뇌 부분에 이상을 일으키게 해서 인류의 절멸을 꾀한다는 설정은 독자의 공포를 절로 불러일으킵니다. 1) 본디 화살이란 무기는 서양인들이 능숙히 잘 다루는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 활과 화살을 잘 다루는 종족은 동아시아쪽 유목 부족이며,  그 중에서도 몽골인들이어서, 먼 곳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도 목표를 백발백중하는 솜씨는 상대를 공포에 떨게 했죠. 이 소설에서도, "화살을 주무기로 쓰는 외계 종족(?)"에 대한 설정은, 대체로 이 화살이 타자화한(나아가 적대적인) 영역에 속한 걸로 여겨 왔던 저들 백인종의 원초적 공포감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몇 안 되는 예외 중 하나가 색슨 족의 로빈 훗 설화라든가, 상업 영화 <람보 2>에서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입니다.

 

지구는 분명 인간에 친화적인 환경이기에 우리 종이 이처럼이나 우아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진화하게 도와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구라 해도 원 상태 자체가 낙원은 아닙니다. 한 예로 보다 자연에 밀착하여 살아가는 정글의 동물들도, 한시만 딴눈을 팔면 포식자에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피식자를 먹이로 확보하지 못하여 굶주리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인류는 자신의 생리에 조화롭게 구축된 문명권 안에 터잡고 사는 걸 최상의 이상으로 여겨 왔으며, 외부로부터의 침략으로 그 기반이 붕괴되는 게 가장 끔찍한 악몽 중 하나였습니다. H G 웰즈의 <우주 전쟁> 이래 모든 재난 SF,  판타지 장르가 비슷한 구조를 취하는 것도, 이런 독자의 오랜 감성 반응기제나 무의식에 의존하는 바 큽니다.

 

네 살 먹은 소녀 디디의 표현처럼, "화살을 맞고 머리를 감싸 쥐며 무섭게 죽어가는" 방식으로 최후를 겪는 인간들. 한때 자연의 정복자로 자칭했건만 지금은 개체의 생존조차 담보하지 못하고 비열하게도 멀쩡히 잘 사는 동족을 해적처럼 습격해야 하루의 연명이 가능한 모습. 사실 다른 어떤 재난상의 묘사보다, 인간끼리 동족 상잔을 벌이는 이 질서의 붕괴를 그린 대목이 독자에게 불쾌한 인상을 남깁니다. 최악의 막장이란 언제나 진영 내 자체 분열상이 아니겠습니까. 이 디디 같은 상징적 장치는, 영화 <에일리언 2>에서도 꼬마 뉴트 같은 배역(Carrie Henn 분)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뭐 그렇다 해도 상관 없습니다. 강도(칼만 안 들었지 바로 강도죠) 셋 정도는 너끈히 맨손으로 처리하는, (자신이 누누이 강조하듯) 전직 군인 출신 알렉이 마크와 트리나 들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독자들은 예상하겠지만, 이들 주인공 crew는 원래 그들이 목적했던 곳에 무사히 모두 도달하지 못합니다. 동료들 중 일부, 상당수는 반드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고, 프리퀄이니만치 진짜 그 핵심은 생존이 보장되어 있긴 합니다만(안 그러면 설정 충돌 발생- 프랜차이즈 단절), 여튼 우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이 워낙 극한이다 보니 보는 내내 마음을 졸입니다.

 

알렉은 자신의 표현대로 "정글의 냉혹한 야수가 씹다 버린 것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끝까지 지켜야 할 존엄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전 대원의 안위를 유지하려 합니다. 그와 같은 부대 소속인 라나 역시, 경력에 어울리는 냉철한 현실 판단으로(더 이상은 스포일러라 언급 자제) 아직은 미숙하고 어린 다른 대원(주인공들)을 이끌어 나갑니다. 이 시리즈의 두드러진 특징은, 극단적인 문명 절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주인공들이 사투를 벌이며 종의 재생을 모색하는 모습인데요. 아무래도 재번식의 주도는 어린 개체가 맡아야 그 건강성이 담보되겠지만, 문명의 재건은 경험 부족의 개체가 맡기엔 다소 버겁다는 점에서 다른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이 시리즈가 주로 어린 독자, 관객(영 애덜트)을 타깃으로 삼긴 했어도, 성인들에게까지 폭 넓은 공감을 안기는 건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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