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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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 주고,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외부 환경이 부과하는 그 모든 불편함을 극복하게 도와 주고, 혹시 극복하지 못한 불편, 달성하지 못한 과업이 있다면 이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일종의 달콤한 자기기만을 통해) 그 좌절감을 씻어 주기도 하는 게 바로 이 기관입니다. 분명 우리 신체의 일부인데, 존재 전체를 좌우하며 주종 관계의 본위를 의심하게까지 이르는 주제가 바로 뇌입니다.

 

이 책은 여튼 우리 신체의 부속 기관에 불과한 뇌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하여, 일상에서 만나는 무수한 난제들을 잘 해결하고, 특히 잘 정리만 할 수 있었다면 더 적은 노력을 들여 해결할 수 있었거나, 아예 실패한 채 방치하지 않을 수 있었던 많은 미해결 과제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만병 통치 처방을 제시해 주는 내용입니다. 다 읽고 나서 좀 놀라웠던 게, 그저 몸에 밴 관성대로(이 책에 나오는 대로 소위 motor memory) 행동하는 사람이, 그 관성 하나를 고치지 않아서 자신이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그 많은 실책과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실패자는 타고난 조건이 나빠서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자기 과오를 고칠 줄 몰라서 실패하는 거라고, 뇌를 두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만들 줄 몰라서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하는 거라고, 이 책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산뜻한 표지를 다시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번역 제목은 <정리하는 뇌>입니다만, 원제는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조직화한(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적화한, 효율화된') 정신"이란 의미이던데, 이게 이 책 내용을 잘 요약이야 하는 제목이긴 해도, 제목이 그렇게 달려서는 최소한 한국 독자들이 거들떠 볼 것 같지를 않습니다. 따분한 이론서, 혹은 (정반대로) 전형적인 자계서를 연상시키기 일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번역서에 붙은 제목 "정리하는 뇌"는, 딱 봤을 때 장르가 언뜻 기계적으로 떠오르질 않고, 뭔 내용을 담은 책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제목 자체도 중의적인데, "사물과 사태를 잘 정리하여 인간의 의사 결정을 도와 주는 뇌"란 의미이기도 하고, 반대로 "여태 뇌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던 당신, 이제 이 책을 읽고 뇌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라!" 같은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전자의 주제에 대해 학문적으로 잘 요약해 주고, 후자에 대해 별반 강력한 촉구를 하지(자계서처럼)도 않으면서 학문적 근거 제시를 통해 독자를 경각시켜 주는 효과를 발휘하는 책입니다.

 

이 "정리하는 뇌"라는 제목은,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목을 단 이 책은, 두꺼운 볼륨이 대체로 담아 낼 수 있는 내용, 효과, 파장 그 이상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뇌의 효율성이나 건강성은, 그 용량이나 속도에만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뇌가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기억력이나 연산 처리 속도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루마니아에서 온 어느 수재 여학생에 대해 회고하는 부분을 보십시오. 그녀는 빼어난 인재들만 모인다는 명문대 클래스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축복받은 천재형 두뇌를 지니고 있습니다. 헌데, 빈한한 환경에서 내내 자라다 갑자기 선택지가 확 늘어난 풍족한 국가에 오다 보니,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지(소위 결정장애) 몰라서 큰 혼란에 빠지더라는 겁니다. 그녀보다 훨씬 성능이 뒤떨어지는 뇌를 가진 이도 잘 겪지 않는 곤란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이 수재의 모습이라니!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실제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주관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비결이, 이 뇌의 조직화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도 재확인이 가능하고요.

 

흥미로운 지적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남자들이란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고통 받는 수가 있는데, 고통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으로 증폭된 갈등에 시달려서, 일상에서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이 저자 대니얼 레비턴이 지나가듯 거론하는 사실, 곧 "두뇌와 고환은 포도당을 두고 서로 다투는 유이한 기관"이란 점입니다. 우리 인간의 물질 대사에 있어 포도당이란 그토록 중요한 에너지의 근원인데, 이의 20%를 뇌가 사용한다는 건 존재의 유지, 생존에 있어 이 뇌에 의존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 줍니다. 뇌가 개체의 생존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면, 고환은 그 개체 당대의 생존을 넘어 먼 후대의 번식까지를 관장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뇌는 고립적 주제를 분석하고 정리할 뿐 아니라, 타인,  사회와 소통하고 효과적 네트웍을 구성하는 데에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개별적 대상에만 집착한 채 외부를 돌보지 않는, 이른바 자폐증 징후를 보이기도 하죠. 뇌는 객관적 실재를 정확히 포착할 뿐 아니라, 인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단순화, 혹은 왜곡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집단 자폐의 증상은 이의 극단적 발현태입니다. 사회에서 낙오한 무리들이 자신들만의 네트웍을 형성하여, 주류와 비주류의 위상을 역위치환하고 상처 입은 자아를 위로하는 행태가 이에 속합니다. 인간은 당장의 타격을 치유하기 위해 망상의 기제를 만들었습니다만, 망상에만 빠져 있는 자아가 그 생존을 효과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지극히 부정적이죠.

 

왜 우리는 특정 사건의 발생과 개연성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가? 이 책의 저자와 그 스승님(지도교수 폴 슬로빅)은 이에 대해 "분모 생략"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확률이란 다 아는 것처럼 분자와 분모의 두 항으로 이뤄지는데, 분모는 잊고 분자만 떠올리는 거죠. 우리말은 언제나 분모를 먼저 읽게 가르치기 때문에(영어와는 달리), 사람들이 분모를 (무의식중에서라도) 생략할 가능성이 적어요. 다만, 잊지 않으면 뭐하겠습니까. 분모를 애초부터 잘못 계산하기가 쉬운데 말이죠.

 

이 책 중반, 확률을 논하는 대목은, 딱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독립이 아닌 걸 독립으로 판단하는 오류", "독립인 걸 독립 아니라고 판단하는 오류". 어떤 사람이 국립 공원 관리인이라는 사실과, 그 사람(일반인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 벼락에 맞을 사건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뿐이며 결코 독립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남들 일생에 한 번 맞기도 어려운 벼락을 세 번 네 번 맞을 수 있는 거죠. 이 책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어떤 사태의 개연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류를 이처럼 정확히 귀인시킬 줄 알아야, 전에 저지른 실패로부터 회복을 용이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면, 오히려 실패를 쉽게 잊고 끊임없이 재도전을 시도하는 데에 노력이 덜 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의로 전전두엽을 손상시킬 필요는 전혀 없겠구요^^ 마치 뇌에게 포도당을 독점시키기 위해 고환을 절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는데, 1980년대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가 상대 플레이를 교란하기 위해 일부러 칭찬을 하면("여, 백스트로크가 좋은데!")  상대는 그걸 의식하느라 자연스러운 플레이를 (소위 muscle memory에 의해) 이뤄내지 못하고, 갑자기 개입한 두뇌의 반성 작용 때문에 오히려 범실을 저지른다는  겁니다.

 

뇌는 우리가 맹렬히 활용하면서도 자각을 못 하는 특이한 기관입니다. 전전두엽이 다소 덜 활성화하면 실패로부터 더 빨리 회복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즉시는 아니라도) 이를 이제 의식하며 고의적, 물리적 손상 없이도 알아서 해당 부위를 자제시킬 수 있는 게 우리의 뇌입니다. 에디슨 같은 위인은 어디, 뇌가 불구라서 그 많은 실패로부터 딛고 일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성공하는 사람은 이런 책을 안 읽어도 이미 성능 좋은 뇌가 알아서 어디를 억제하고 어디를 자극하는 습관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몸에 길든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는, 이제 그런 방식으로 뇌가 기능한다는 걸 알았으니, 마치 피트니스 클럽 다니면서 뱃살을 태우듯, 인위적으로 뇌를 최적화시키면 결국 같은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저자는 요즘 학계, 산업계, 그리고 출판계(!)를 휩쓸고 있는 행동경제학 창시자 중 핵심 멤버인 에이머스 트버스키의 직계 제자입니다. 과연 그런 명성답게(굳이 1만 시간의 법칙 창안 같은 걸 거론않더라도) 책은 창의적이고 근거 확실하며 진정성 높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주장이 매우 적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정확한 논증이 두드러집니다.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는데, 그가 대학원 과정에서 배웠다는 베이지언 확률 도출 사분표법은 사실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는 내용이죠. 사분표 아니라 십육분표도 같은 메카니즘이므로, 댄 카너먼이 말하는 소위 패스트 씽킹으로 숙달에 의해 몸에 배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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