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선생의 책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세한 논증과 풍부한 근거자료, 도표의 보강 못지 않게, 그 문장이 주는 힘이 실로 강력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통이자, 앞으로 좋든 싫든 중국에 목을 매고 살아야 할 우리들이라며 특유의 비전을 제시하는 경세가로서의 면모도 과시하는 전 소장님은, 연단에서뿐 아니라 지면상으로도, 명강사의 제스처와 아우라를 그대로 뿜어내는 듯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예언자의 잠언을 계시받는 느낌입니다. 그의 문장은 결코 길지 않고, "읽는 분들 시간 없고 주의력 딸리는 것 잘 아니까, 뭘 해야 하는지 결론만 딱딱 짚어 줄게"라고 작심이나 한 것 같습니다. 워낙 깊은 분석, 반추 과정을 밀도 있게 겪은 후 명제화한 결론들이라, 무슨 모세의 십계가 풍기는 양 카리스마가 구절구절 묻어납니다.
이 신간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줄이면 "중국은 앞으로 금융업이 뜨니, 지금 유망주에 돈을 묻어 두라"는 것입니다. 전작에서 그는 "외환 위기를 겪고 지난 10년 동안 동력과 활기를 상실한 한국 경제가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신흥 공업국으로서의 중국이 힘차게 제조업 엔진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시기 특히 한국의 중간재 섹터, 대표적으로 포스코가 (여전히) 잘나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쉼 없이 질주하며 한국의 중간재 생산을 독려하고 있었던 덕이란 거죠.
그러던 중국이라지만 1) 어느 단계를 지나고서까지 철강, 정유 따위를 인접국 시설에 마냥 기대지는 않을 테고(자체 역량 확보) 2) 이미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수출 대신 자국 시장 내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그들이, 더 이상 한국과 윈-윈 하기보다 자국 실리를 두터이 챙기려 드는 게 또한 당연하다는 겁니다(스테이지 전환).
지금까지 중국이 우리 경제의 성장 지탱에 큰 기여를 해 왔음은,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며 전세계의 진지한 애널리스트들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기대어, 중국은 이번 THAAD 관련 미국과 마찰을 빚을 때, "한국이 경제적 실익을 중국으로부터 취하면서, 이런 사안에 대해 타국 편을 들면 안 된다."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죠. 이만큼 막강한 상수로 한국 경제 함수식에 자리를 잡은 중국이, 그 내부 사정으로 말미암아 정책적으로 다른 스탠스를 취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기민하게 전략을 수정해야 함은 당연하다는 게 저자의 기조입니다.
앞으로 제철 제강 정유 등이, 중국 고도 성장기처럼 혜택을 보지 못하는 건 이로서 자명합니다. 지금 중국이 집중하는 건 소위 후강통으로 상징되는 금융 섹터의 육성입니다. 이 분야는 우리가, 아직도 그들이 미처 따라올 수 없는 메리트, 노하우를 많이 축적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그들에게 선도적 입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게 바른 선택이라는 거죠.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포철, 삼전 주식 사서 묻어둔 이들이 지금 큰 이익을 보았듯, 고성장이 명약관화한 종목, 기업을 골라 베팅하면, 과거에 채 챙기지 못한 기회를 다시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충언입니다.
지난 4일 동안, 지구 반대편 그리스 위기 국면과 겹쳐, 버블 붕괴로 의심되는 중국발 증시 폭락 사태가 이어져, 아마 이 말대로 중국 주식에 돈 좀 들인 분들(많이 없겠지만)은 당장 큰 피해를 보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 상당수는 아직 장래가 창창하며, 중국 증시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 앞으로 국가 자체가 체제 위기를 맞으면 모를까 현재로선 반등의 요인이 몇 배는 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황의 분석 중요성과 더불어, 전 소장은 "역대 G2중 중국처럼 G1을 바짝 추격하며, 고도 성장을 길게, 현재진행형으로 이어간 나라가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주위 분위기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분명한 원칙을 유지하며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