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된 자유를 단 한 번도 누려 본적이 없는 영혼이라면, 모든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야 하는 극한 상황 속이라 해도, 그 가혹한 조건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하긴 이는 모든 상황적 제약이 풀린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사치스럽게 행하는 자기 기만일지도 모르겠는데요. 만약 수양제 시절의 농민 신분으로 살게 된 우리라면, 대운하 건설 노역장에 동원된 처지에서 물에 잠긴 내 다리에 구더기가 들끓은 채 썩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과연 현장에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권력에 반항이라도 한번 해 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분연히 봉기의 대열에 가담할지, 아니면 당장 눈 앞의 채찍이 무서워 그저 타성대로 묵묵히 벽돌을 나르게 될지, "사고 실험"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이니까요. 그 상황에 실제 처해 보지 않고서 나오는 모든 "의지의 표명"은, 그게 아마도 타인과 자신을 기만하는 언사일 확률이 매우 높으니 말입니다.

구판으로 처음 읽을 때는 현대 스릴러의 공식에 맞춰, 전체주의 국가 체제가 발동할 수 있는 최악의 감시, 탄압 조치 속에서, 정의롭고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레오의 필사적인 몸부림, 그리고 상황이 허락하는 중 가장 영리하게 돌아가는 그의 두뇌 작용 등이 결합한, 영웅적 투쟁의 서사로 이 작품을 이해했습니다. 국가는 이미 충성스러운 국민의 신뢰를 철저히 배신한 바 있기에, 앞으로는 그에 대한 람보 식의 복수만 남았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 신판으로 다시 읽어 보니, 그런 고독한 영웅의 투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큰 억지나 무리도 아니고, 또 그런 모럴에 입각한 독해라야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겠지만, 마냥 그렇게 읽기에는 레오 데미도프가 너무 나가는 면이 없잖아 있더군요.

레오가 고비를 맞닥뜨릴 때마다 취하는 결단과 결행은, 사실 아무리 그것이 타협적인 성격이라 해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초인적인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아내를 두 번 배신하고, 한 번 (그런 결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제약 속에서) 지켜 줍니다. 후자에서 독자는 "과연 주인공이 될 자격이있었군!" 하며 감탄하나, 전자에서 "이런 사람도 사람 구실을 포기하며, 구질구질한 연명을 택할 정돈데!"하며 (순서대로) 절망하게 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저는 제 방식대로 조국 소비에트에 충성하겠습니다!"를 외치는 레오의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기막히게 영리한 체제 반역(동시에 보편적 휴머니티에 대한 충성)을 꾀하는구나 싶었는데, 지금 제2권 <시크릿 스피치>를 다 읽은 시점에서 보기에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 역시 확고부동한 스탠스를 고수하는 게 아니라, 가혹한 외부 조건의 칼날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겁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지난 구판 리뷰에서 "어린이 살인마"의 정체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하며 작품 감상을 적었지만, 이 작품 <차일드44>는 탐정(?)과 범인 모두, 명확하게 비인도적인 환경의 희생양이며, 두 사람 다 그런 외적 조건에 맞서 정면 타파를 위해 투쟁을 전개하기보다는, 타협이나 자기 파괴를 시도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 독자의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합니다. 연작에서 계속 출현을 이어가는 레오 존재의 개연성을 유지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으나, 아마도 이 작품(시리즈)은 전통적인 영웅담의 성격만이 아닌 "잔혹 리얼리티 쇼"의 스타일도 같이 곁들여 꾸려진 듯 보입니다. 마흔 네 명의 어린이들 목숨을 앗은 범죄자뿐 아니라, 이런 체제 속에서 누구에게 고발당해 당국에 끌려갈 지 모르는 불안이 그 영혼을 좀먹어들어가는 평범한 시민, 그 강력하고 굳센 의지가 매 순간 모욕당해야 하는 주인공 레오 모두, 이미 존엄히 지켜져야 할 내적 세계가 치명적으로 파괴된 채 기껏해야 가망 없는 저항을 생물학적 충동에 의해 이어갈 뿐입니다. 이건 물론, 진부하고 통속적인 영웅담의 공식에서 벗어나, 이 작품만의 핍진한 개성을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비결임에 분명하긴 하지만 말이죠....

이런 주인공의 행보를 지켜 보기 위해 연작 소설을 다 구해 읽어야만 하나? 깊은 회의가 밀려오는 분들은 일단 재미로 이 1권을 펼쳐 보십시오. 결말에 가서 피로와 극한 감동이 동시에 찾아오는 통에 몸과 마음이 곤죽이 될 겁니다. "이 작품은 대체 상업적 흥미, 영혼의 건전한 고양, 그 어느 쪽을 추구하는 의도였나?" 여전히 미심쩍으면 2권도 이어 읽어 보십시오. 그런 시도는 기껏해야 한 번으로 족할 것 같은데, 작가는 2권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더럽혀지고 추악해졌던 주인공을 다시 끌어내어 "영웅적인 채무 변제"를 수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채무란 도덕적 채무를 뜻합니다. 아동 살인마 스토리와 반인도적 체제 고발이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은 두 요소를 이처럼 성공적으로 결합하였으나,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두 번이 가능할까? 바로 그게 작가의 의도입니다. 두 번 세 번도 나에겐 이런 곡예가 가능하다는 걸 독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 우리 독자들은 진정 임자를 만난 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