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 속의 우주 - 대칭으로 읽는 현대 물리학
데이브 골드버그 지음, 박병철 옮김 / 해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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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에 이를 관통하는 법칙이, 그것도 지극히 단순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너무도 소박하고, 유치하며, 무모하거나 만용에 가까운 기대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뉴턴이 중력을 G와 두 개의 질량변수, 두 물체 사이의 거리라는 팩터만을 사용하여 도식화하였을 때, 유럽의 지성은 그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류는, 다섯 세기가 지나도록 이 기본적인 힘(중력)에 대해 더 이상의 상위 법칙, 원리에로의 포섭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보편적이긴 하나 보이지도 않는 양상으로 작용하거나(전자기력), 아예 육안으로 관찰할 수도 없는(장비를 쓴 후에도 여전히 그 관측이 까다로운) 나머지 세 힘(force)에 대해서는 제법 인식의 진전을 이룬 형편인데도 말입니다.

반물질 역시, 처음 이 가설이 제창되었을 때는 그저 만인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습니다. 사물을 양과 음으로 일일이 나누는 것부터가 원시 신앙의 흔적이고, 설사  그런 시도를 벌인다 한들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하나하나에 그에 대응하는 반(反) 실체가 대기하며, 다만 우리의 세계와는 접촉, 관측이 불가한 다른 영역에 머물 뿐이라는 말이, 황당무계하게 받아들여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에 대해, 주류 입장에 속한 물리학자라면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일단 긍정한 후 이론 전개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공자 이래 동양의 철학자들이 한 번도 그 견지와 탐구를 중단한 적 없는 영원한 도그마인 음양(陰陽)이기설 역시, 서세동점의 험악한 시대상에서 일거에 폐기되었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 오늘날에 와서 다시 한 번 열렬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론상의 이런 신 조류의 반영 결과 중 하나입니다.

표준모형? 한때는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구상할 때만 해도 이를 두고 미친 시도라며, 그의 위명이 버젓이 살아 있던 시점에조차 세인(이라기보다 학자, 지성인)들은 조소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입자론 분야에서 점점 발군의 성과를 이루고, "만물의 이론"이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는 데에 다시금 합의가 이뤄지자, 이 표준 모형이라는 얼기설기 사상누각 구조가 조심스레 복수의 학자들에 의해 도식화되었습니다. 처음 제창된 이래 유의미한 진전이 많지 않았음에도, 아직도 학자들은 이 가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최근 신의 입자 발견(이 책 저자 데이브 골드버그는 이 인기 있는 별칭 사용에 대해 반대합니다)에 의해 이 표준모형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금과옥조로서의 위상을 한층 더 굳힌 모습입니다.

이름이 거창하게도 표준모형이라고 붙은 공식조차 모습이 저처럼 번잡하니, 이를 지지하고 이에 집착하는 해당 분야 학자들의 주관적 의욕과 개인적 신조의 강도가 어떠하든, 우리 인류가 "세상 만사를 꿰뚫을 이치"를 한 큐에 장악하기란 여전히 갈 길이 멀리 남은, 어쩌면 무망한 과업처럼 보입니다. 20세기 중반 아인슈타인이 망집에 빠져 호기를 부린다고 비난하던 당시의 보수적이고(?) 겸허했던(...) 그의 후배 과학자들의 태도가 온당했는지도 모릅니다. 과학은 더 이상 단순화에의 예찬, 근거 없는 숭배를 중단하고, "현상의 정확한 기술"에 만족해야 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인문과학 중 언어학 같은 경우 이런 트렌드가 최근의 주류입니다.

데이브 골드버그는 이런 점에서, 대단히 야심만만한 성격과 정신의 특질을 갖춘 저자, 갑갑하고 굴곡 많은 구조적 제약에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지각적으로 감당 못 할 만큼 큰 스케일을 지닌 이 물리계를 "말 몇 마디로 후려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우리 독자들에게 록스타적 열광을 부르기에 충분한 엔터테이너입니다. 아름다운 비주얼과 조화로운 음율로, 우리의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픽션 내러티브를 구수히 오싹오싹하게 들려 주는 전기수도 요긴한 직분이지만, 그에 대한 무지가 인간 존재에 근원적 불안감을 드리우는 "세상 돌아가는 근본 이치"를 두고서, 시원하고 통쾌하게 해명해 줌으로써, 지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이런 이야기꾼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 소중한 동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잖아도 복잡하게 꼬인 논의 구조에서 만인이 지쳐가고 있을 때, 다 필요 없으니 이거 하나면 된다면서 들고 나온 게, 연식은 제법 된 뇌터의 이론입니다. 지금까지 그 숱한 단순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끝에,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듯 더 단순한 걸 펄럭이는 기치로 내세운 당돌함이란.... 그는 정말로, 이거 하나면 다 된다고, 실현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초단순 원리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이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건 아니지만, 어떤 이론이 그 끝장을 보겠다며 강력한 추동력까지를 부착하는 건 주장자의 인문적 상상의 저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저자는 현역 물리학 담당 교수이지만, 동시에 풍부한 인문적 통찰 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터에, 신명 나는 미학적 리듬과 통섭적 시야로, 물리학에 무지한 일반 독자들의 의욕까지 성공적으로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아마 공간구조적 대칭성은 많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개념일 겁니다. 당장 저만 해도 정규 초등과정에서 점대칭 선대칭 개념을 배우며 경시대회 대비를 위해 온갖 난해도형을 이리 뒤집고 저리 꼬는 연습을 숱하게 수행하고 자란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대칭은 어떨까요? 저자는 "시간의 화살"이라는 문학적 표현을 상기시키며, 시간보다 더 일방통행인 개념은 아마 인간에게 알려져 있지 않을 거라며 어리석은 독자들을 도닥인 후, 본격 황야와도 같이 거친 이 생소한 개념 속으로의 탐사를 독려합니다.

왜 시간의 대칭이 낯설 수밖에 없냐면, 일견 엔트로피 제2법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엔트로피 법칙이나 그 중핵을 이루는 개념은 말만 거창할 뿐, 그 내용이 우리 일반인의 직관에 그처럼 잘 부합하는 것도 없습니다. 사물의 질서란 어질러지기가 쉽지, 그 반대로 알아서 정돈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겁니다(책 중에서 골드버그 교수-왠지 이름으로 데이브라고 막 불러도 될듯한 - 는, "혼란의 극에 일단 달한 후 그보다는 쬐끔 나은 상태로 잠시 회귀할 수는 있다면서, 이 법칙의 예외를 인정하죠. 하지만 이미 유일 상태에 가까운 극점에 도달하는 자체가 확률적으로 극히 어렵습니다). 여기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설마 있을까요? 시간이 만약 역방향으로 흐른다면, 엔트로피 진행의 불가역성이 깨진다는 뜻이니까요.

그전부터 학자들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시간의 역설(인과가 뒤집히고 기 발생 실체가 무[無]로 돌아감) 때문에 장벽을 만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꼭 단서를 달기를, "이것이 시간여행의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라고 합니다. 즉 귀류법의 판정 범주에 이걸 포함시키면 안 된다고 유보 조항을 단 건데, 저는 예전부터 그 이유, 근거가 참 궁금했습니다. 왜 이 영역에서만은, 유클리드가 수천 년 전 확립한 수학적 증명이 통하지 않는 걸까요? 물리학과 수학이 전혀 별개의 왕국에서 놀고 있다 착각하는(대중서만 읽으면 그렇게 되죠) 백치는 이해 못할 수 있으나, 수학 없는 물리는 교각 없는 금문교와도 같습니다. 언젠가는 공법이 발달하여 교각없이 구조를 세우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이 없거나 먼 미래의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저자 역시 개념상의 난점을 몇 들며, "어쩌면 시간이야말로 가상의 추가 차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며 확언은 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 독자들은, 과감한 시간 대칭 방법론으로 사고를 확장하는 중에, 심지어 이중 나선 구조조차 뇌터의 이론으로 모두 일원적 설명이 가능할 수 있는, 전인미답의 신세계로 발을 한 걸음 들여 놓을 수 있을 겁니다. 중력만 여태 통일장 포섭의 달콤한 제의를 회피하고 있고, 시간 차원만이 여러 역설의 덫에서 시원하게 발을 못 뻬고 있다면,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계가 있는 것 아닌지, 가장 단순하나 가장 꾀까다로워 보이는 대칭성이란 처방으로 일거에 난제가 풀리는 건 아닌지, 데이브 골드버그 박사의 이 책은 개그콘서트처럼 직설적이고 재치 있는 화법을 통해, 대중들의 "물리 울렁증" 치료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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