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호랑이 같은 맹수는 혼자 힘으로 사냥과 자기 방어, 새끼의 양육이 가능하지만, 사람이 그런 생활 방식을 택했다면 개체의 생존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렇게 연약한 육신을 보유한 채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지금의 단계까지 도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흔히 주위와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의 생활 양식을 유지하는 분자에게, 딱히 범죄적 징후가 없어도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가지는 수가 있는데, 옳건 그르건 무관하게 그런 집단 심리적 태도는 인간 진화 과정 그 본질적 속성에 기원한 것이므로 딱히 나무랄 건 아닙니다. 사회에서 이탈, 유리된 개인에 대해 본능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일단 내리고 보는 것도 인간 본원적 습성 중 하나이니 말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어느 정도 성격이 유(柔)해지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타인들의 행동 양식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당연한 과정입니다. 연륜이 쌓여 이런저런 사회적 경험을 충분히 했음에도 성격이 거꾸로 강퍅(剛愎)해지고 주위와 불화하는 건, 젊음의 혈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정신의 기능이 퇴보한다는 불길한 징후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서 소외되고, 온라인의 폐쇄적 커뮤니티(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에서만 맹렬한 소통을 시도한다는 게 특징 중 하나인데, 그래 봐야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악화 일로로 치달을 뿐입니다.

혼자만의 삶에만 빠져 있고, 주변의 평범하고 선량한 이웃들과는 끊임 없이 알력을 보이는 주제에, 내일 모레면 육십을 바라보는 노년이기까지 하다면, 이미 그는 인생의 패배자로서 주요 조건들을 두루 갖춘 셈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베라는 인물은, 그처럼 타인으로부터 호감이나 매력으로 불릴 만한 요소는 하나도 구비하지 못한 낙오자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도 각별한 순정을 그 젊은 시절부터 바쳐 온 여인이 있었고, 오베는 어느 타인과도 온전한 교류를 거부한 채 오직 이 여인과는 영혼의 교감을 이루며 척박한 인생을 영위해 나갑니다. 이 한 가지 점만 제외하면, 오베라는 이 노년이 여태 걸어온 길은 누가 따스한 눈길을 잠시 줄 가치조차 없는, 처량한 실패의 누더기라 불러 지나치지 않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여전히 오베라는 이 늙은 인물에게 거리를 두고 적대적 감정을 유지할 것인지, 반대로 "그 황량한 외관 속에 이런 진국 같은 영혼이 숨어 있었다니!"하며 전폭 감동, 공감을 표시할 지는, 독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저 같으면 일종의 절충으로, 살아온 생애는 비록 실패자의 그것이었지만, 여타의 루저들처럼 남탓에 빠지거나 비루한 세태 영합을 시도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꿋꿋이 지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어딘가 마음이 짠해지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오베라는 인간을 지금처럼 괴퍅하게 만든 건, 그의 아버지가 남긴 영향이 컸습니다. 자 그러면 그의 부친 역시, 극단적 비관주의와 냉소주의, 대책 없는 불타협으로 인생을 일관한 사람이냐,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잃은 그였지만, 그가 일하는 방식이나 살아온 태도를 가까이에서 지켜 봐 온 사람은 누구나 존경심을 표하게 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장인(匠人)의 성실성과 은자(隱者)의 순결한 영혼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위인이었습니다.

소설에도 나오듯 어느 파티에서 자동차 한 대를 거뜬히 고쳐 준 일로 크게 감동한 호스트 중역이, 이 오베의 부친을 극진히 대접한 일화가 소개되는데, 사실 이는 소설 전체를 이해함에 있어 사소한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주지하는 바처럼 북유럽은 일종의 신분제 사회라, 자산에는 거의 세금이 물려지지 않는 반면, 근로 소득 등 새로 창출되는 부가가치 기여분에는 엄청난 비율로 과세가 행해지는 체제라, 신분 상승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저 중역의 친절한 제안을 "더러운 기름때가 잔뜩 밴 옷차림으로 파티에 누를 끼칠 수 없다."며 거부한 그의 태도는, 이 사람이 그저 자기 직분에만 충실할 뿐 허투루 딴데 한눈팔지 않는 지극히 성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숙자로 추락하거나 골방에서 아사하는 신세를 면하는, 하방 최소선 보장이라는 복지 시스템은 잘 가꿔져 있으나, 오베 부친 같이 뻬어난 기능을 지니고 현장에서 노동하는 계층은 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 중역이 그리 감동한 것도, 일처리를 야무지고 능숙하게 하는 인력 자체를, 주위에서 흔히 (짧은 시간 안에, 싼 보수로)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죠. 한 25년 전, 이문구 선생의 어느 단편에도, 이런 기이한 재주를 지닌 트럭 운전수가 나오는 게 있었습니다(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실존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도불습유, 길에 떨어진 물건도 함부로 줍지 않는다(주인이 와서 다시 찾아가게 놔 둔다)는 미풍은, 동양에서도 요순시대에나 볼 수 있었습니다. 오베의 부친이 지닌 도덕적 청렴성은, 일상에서 점유이탈물에 무단히 손을 대지 않는다는 그 철벽 같은 신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죠. 보통 이런 사람이 직업적으로는 대단히 무능해서 저런 값싼 모럴로 자신의 약점을 (과시적으로) 보상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람은 자기 직능 수행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 유능하기도 했다는 점, 이미 위에 언급했습니다. 오베의 자아가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고 주위와 완전히 방벽을 쌓은 건, 그런 부친을 그 정도로밖에 대접 못한 사회, 그리고 섭리를 그따위로밖에 운용 못한 신(神)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증오의 결의 때문이었죠.

이 무렵 그는 직장 숙소에서 일진 비슷한 폼을 잡으며 군림하는 톰에게, 제 분수를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만큼 혼을 내 주게 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통쾌하다기보다 씁쓸한 느낌 비슷한 걸 받았는데요. 톰은 크게 다치고 그 경위를 의료진이 묻자 "그냥 미끄러졌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물론 당사자야 망신스럽기도 하고(죽을 때까지 못 잊을 굴욕이겠죠) 인지부조화의 강도가 누구보다 커서 그러려니 하지만, 그 주위에 있던 노동자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게 우스웠습니다. 인간이란, 인식의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면, 눈 앞에 고릴라가 지나가도 모른다는 말처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면 필사적인 자기기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려 듭니다. 오베는 이 사건을 통해, "세상에는 정말로 바보 멍청이들로만 가득 차 있군!" 같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텝니다.

하지만 이는 그의 잘못이었습니다. 물론 보기 좋게 혼을 내 준 건 잘한 일이었지만, 세상에는 그런 무지하고 비겁하며 지능이 떨어지는 인간들만 사는 게 아니거든요. 다른 교류와 소통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 놓고, 보다 큰 세상으로 나아가 자아 실현을 도모했어야 옳았는데, 그는 그만 거기서 머물며 마음의 필터와 망막을 그저 흑백으로만 장착하고 말았던 겁니다(그나마 백보다는 흑이 대부분인 채로). 여기에는 다른 불운 하나도 겹쳤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직업 군인을 시키면 일을 척척 잘해내고 조직 내에서도 (기계적인) 융화에 무리를 안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선천적으로 희귀성 질환을 심장에 지니고 있었던 거죠. 결국 우리가 본 바처럼, 오베는 나이 육십에 이르기까지 고작 반사회분자의 탈만 뒤집어 쓰고 말았던 겁니다.

그는 그의 훌륭한 부친으로부터 다른 좋은 점을 배우고 익힌 후, 부친이 다소 소홀했던 주위와의 원활한 소통까지 자기 것으로 했다면, 작은 타운에서나마 멋진 리더로 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부터 (얼마 안 되었던) 부정적인 점은 몇 배로 키워서 상속하고, 아버지의 멋진 미덕은 그 원형을 대단히 옹색하게 축소해서 계승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이러니, 남다른 영혼의 고상함과 성실성, 그리고 빼어난 손재주와 걸출한 완력 등의 장점이, 거친 매너 속에 완전히 묻히고 만 채, 외롭고 척박한 삶으로 일관하게 된 거죠.

오베는 다소 절망적인 방식으로, 대단히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아내를 잃고 마침내 죽음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의외로 좌절감에 차 있지만은 않았고, 지금까지 신조로 유지해 온 것처럼 "내 인생 처분은 내가 내 자유의사로 수행한다." 다소 담담한 기분으로 결단을 내리려 한 겁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숱한 머저리들이 훼방을 놓았는데, 이제 마지막 순간까지 바보들이 끼어드는구만!" 하지만 이는 그에게 다소 소홀하고 부당한 대접을 해 온 신이, 최후의 순간에 보내는 미안풀이의 메신저였음을, "오베, 인생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무가치한 게 아니다."는 가르침을 전하려는 언질의 몸짓이었음을, 우리 독자는 조용히 깨닫게 되죠. 이런 진지한 자가 자기 나름으로는 인식과 판단의 소이로 입에서 내뱉은 각종 기상천외 현란무쌍한 독설을 보고(마음에 여유가 없을 테니 재능으로 지어내는 게 아니죠) 구경꾼들은 그 파격에 폭소를 내뿜게 됩니다. 인생이란 이처럼, 일인의 비극이 타인의 희극이요, 누군가의 전심전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소에 붙일 가십에 지나지 않는, 역설과 난제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저 웃고 넘기는 게 상책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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