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 경제학과 심리학으로 파헤친 행복 성장의 조건
폴 돌런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행복을 얻어내고 이뤄내려면 정당한 노력이 앞서야 합니다. 아무도 그저 요행만으로 행복이 내 것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곤란하다는 데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통해 "행복을 설계"하라는 주문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습니다. 뭔가 열정적이면서도 앞뒤 재지 않는 손길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같은 게 행복의 전제조건이지, 타산적이고 빈틈 없는 "설계"를 통해 이뤄지는 행복을 두고는, 왠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위화감이 드는 게 보통 아닐까요?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당신이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당신 수중에 넣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행복해지고 싶으면 그에 맞는 합리적이고 적실한 방법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라며 우리 독자들에게 일침을 놓습니다. 어떻게 생각되세요? 흔쾌히 동의하기 망설여지거나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면, 책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제안과 근거를 보고 판단을 해 볼 일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떠오른 생각은, 카너먼 등이 주창한 "행동경제학"의 여파가 이처럼이나 길고 깊은 파장, 영향을 남겼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경제학과 심리학이란 사실 그 초기, 성숙기 발전 경로에서는 둘 사이에 서로 접합, 교차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시든 거시 스케일이든 경제학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미묘한 흐름과 조우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이른바 선택의 "균형(equilibrium)"이 결정되는 과정을 다룬 학문이요, 그 심리에 비합리적 요소나 감정이 개입할 바 없다면 모르겠으나(이 경우 건조한 기계적 방정식 체계에 의해 해답이 도출됩니다), 그렇지 않고 비이성적 요소가 개입한다면 이는 필수적으로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한편, 심리학은 결국 인간 마음의 가닥과 꼴을 알아내 보자는 학문 체계입니다. 마음의 모습을 안다는 건 (순수 학문 영역을 잠시 떠나 있자면) 어떤 직접 효용이 있을까요? 다름 아닌 "행복의 모색"입니다. 그 행복이 철저히 주관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고 육신의 감각적, 물질적 만족에 기반을 (어느 정도라도) 둔 성격이라면, 이는 경제학의 효용 측정 도구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죠. 결국 행동경제학이라는 첨단 분야에서 역시 "바로 쓸모"를 찾아 보자면 이는 행복의 추구이겠으며, 또한 그런 물질적, 현세적 행복은 경제학적 분석틀의 도움을 얻어야 체계적인 추구가 가능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행동경제학의 가장 큰 존재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행복 설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정신적, 육체적 장애가 있다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여러 타인과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조건상, 그가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튼 인생은 초기 조건이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눈 딱 감고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의 레이스이기에, 만약 성실한 사람이라면 결국 경기의 종반에 가서 자신만의 행복을 이뤄 내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넘어, 그 사람이 사려깊고 공동체지향적 모럴을 가진 사람이기까지 하다면, 그 사람은 이런 자신의 모색에서 시행 착오를 발판 삼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참고할 수 있게, 아예 행복 설계 매뉴얼 하나를 내가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폴 돌런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이 뛰어나고 호감 가는 외모를 지녔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통상의 능숙함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이 민망해할 만큼 서투른 발성, 조음습관을 지녔다면, 그는 아마 정상적인 사회적 소통이나 유리한 평판을 얻어 내기 힘들 것입니다. 폴 돌런 박사는 말을 꽤 더듬는 편이었으며, 이런 시련, 핸디캡을 어깨에 지고 남들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남보다 몇 배는 더 애쓰는 과정에서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일부는 자신의 정신적 성숙 과정, 일부는 자신의 직업적 본분인 학문적 도구를 통해, 그는 어떻게 하면 개인이 성공적으로 행복을 설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처럼 잘 정리된 매뉴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행복을 추구하는 바른 방법에 대해 설파하는 책들은, "당신의 관점이나 태도를 바꾸거나, 욕망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먼저 다스리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도 다들 이게 정석의 길인 줄 알며, 이 때문에 우리는 "행복"과 "설계"라는 두 개념, 단어를 결합함에 있어 그토록 불편함을 느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돌런 박사는 "자신에게 정직해지지 않고(때로는 자신을 속여 가면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행복에 이른다는 건 차라리 자기기만"이라고 말합니다. 그 자신이 만만찮은 고난을 뚫고 행복을 쟁취해 낸 체험이 있기에, 그의 방법론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가 자동차 몇 대 소유, 배우자 동반 여부, 거주하는 주택의 면적, 학위나 직장의 서열 등 표피적이고 물질적인 지표로만 행복을 평가하는 건 또 아닙니다. 그런 시도라면 전에도 여러 번 있었고, 그런 양적(量的) 어프로치로는 역시 정확한 진단과 질적 측정에 곤란함이 지적된 것도 사실이죠. 여기서 돌런 박사만의 균형 잡히고 창의적인 제안이 돋보입니다. 그는 물질적 지표, 가시적 환경을 결코 경시히지 않되, 그런 조건들이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개별 파급 경로를, 통찰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으로 가중치를 둬 가며, 주관적이고 질적인 행복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돈, 체험, 성취, 소통 등이, 구체적 개인의 마음에 자리한 각기 다른 코드 하나하나를 어떻게 자극하는지 제시하고, 이런 구체적 경로를 전제로 하여 개인별 맞춤 행복이 설계되는 모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목적의식과 즉시의 쾌락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라는 게 결국 한 마디의 요약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는 게 젊은 세대의 신조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만족을 위해 무작정 놀고 즐기면 미래의 행복이 크게 희생될 겁니다. 워커홀릭이라는 부류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결국 불확실성에 싸여 있는 미래를 위해 현세의 기쁨을 희생합니다. "중용"이 행복의 요체임을 일찍부터 갈파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태도처럼, 돌런 박사도 균형의 추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보통 무엇에 가치의 중심을 둘 것인지에만 집중하여 의견 대립을 보이던 기존의 학설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돌런 박사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에도 한계가 있지만, 그런 행복을 추구하려 들이는 주의, 집중에도 또한 한계가 있음"을 환기합니다. 이 이중의 한계라는 제약 조건 속에, 인간 본연의 이성과 태생적 비합리성 사이에서, 자신의 의지와 충동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고 수련하는 과정이 곧 "행복의 설계"이고, 이를 통해 실용적인 설계가 가능함을 돌런 박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제 적용례를 많이 제시하고 있으므로, 독자는 폭 넓은 pool 속에서 자신에 알맞은 처방을 잘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