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 작품은 읽는 이의 마음을 내내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스릴러이기도 하고, 억압받는 여성의 통쾌한 복수극 속에 일본 사회의 후진성, 구조적 문제를 단편적으로나마 진지하게 짚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 소설은, 일본 사회가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어느덧 상수(constant)에 가까운 근심거리가 되어 버린 "중국 팩터"에 대해서도, 소설 곳곳에서 배경, 캐릭터, 중요 사건 소재 등으로 삼으며 직설적이거나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독자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돕는 충실한 읽을거리였습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빠져서는 그의 독자들에게 좀 곤란한 면이 있는데, 그가 언제나 성공해 왔듯 이 작품 역시 페이지가 참 잘 넘어갑니다.

 

출판사와 역자는 이 작품을 두고 예전 헐리웃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소설판으로까지 규정합니다만, 그 영화만 해도 벌써 나온 지가 이십 년이 넘었고, 미국의 경우 제도와 구성원 의식 모든 면에서 "매맞는 여인, 특히 아내"에 대한 구제책이 (더군다나 현 시점이라면) 넉넉히 마련되어 있습니다(부작용이 생길 만큼). 이 소설에 등장한 문제는 사실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화적, 구조적, 의식적 폐습을 그 원인으로 지닌, 오랜 시절 동안 속으로 곪아 온 것이라서, 사실 저런 미국 영화 등과 비교하긴 좀 삼가지는 점도 있습니다.

 

핫토리 가나코는, 그럭저럭 중산층 범주에 속할 만한 집안의 아들인데다 일단 겉보기에 버젓한 직업인 은행원 신분으로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이 남편이 그런데 폭력 성향이 강합니다. 별 것 아닌 일로 화를 내며 아내 가나코의 얼굴을 구타하고, 밥 먹다가 뜨거운 된장국을 끼얹는 등 행위의 질도 상당히 나쁩니다. 그렇다고 중증 정신병에 가까운 새디스트라든가 하는 정도는 아닌데, 여튼 가나코에게는 "마시는 물도 쓴 맛이 날 정도"로 이미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그냥 체념 상태에서 참고 사는 거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결혼 생활이 전혀 아닙니다. 이런 남편과 원활한 성 생활이 영위될 리 없고, 그녀는 강요에 못 이겨 잠자리에 임하지만 언제나 피임약을 사전 복용합니다. 이런 까닭에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소설 후반부에서 대학 친구 오다 나오미와 함께 "아가씨들"이라는 말을 택시기사에게 들을 만큼(혹은 그 앞장면에서 현장 답사를 갔다가 외딴 도로의 트럭 운전수에게 눈길을 받을 만큼) 가나코는 아직 젊은 나이입니다. 아주 젊지도 물론 않아서, 동년배인 나오미가 "'젊은 여성'이라는 마법의 카드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서른을 넘어가고 있다."는 방백이 나오는 대목도 있습니다. 나오미는 아직 미혼인데, 백화점 말단 외판원 신분인 그녀가 어떤 멋진 커리어를 다듬어 나간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역시 폭력 성향이 강한 그녀의 아버지(와 폭력의 희생양이 된 어머니)를 내내 지켜 본 결과 결혼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갖게 되어서입니다.

 

가나코의 남편 핫토리 다쓰로도 그렇고, 나오미의 아버지 되는 이도 자식들한테까지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정신 이상자들은 아닙니다. 작가가 이렇게 성격을 설정한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죠. 극단적 성향을 가진 자라면 일단 이성과 법적 혼인을 맺는 것부터가 어려울 테고, 소설 속에 그런 자가 등장하면 그건 극소수 이상성격자의 문제일 뿐 보편성을 갖지 못합니다. 이렇게 적당히(?) 폭력적인 남성이 등장해야,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 같이 고민해 보자는 식의 공감 토대가 형성되는 거죠. 적당히(...) 폭력적이니 용인해 주자는 게 물론 아니고, 어떤 폭력도 아내를 향해 행사되는 게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향하는 건 물론 당연합니다.

 

오다 나오미가 그렇게까지 가나코를 "도우려고" 드는 동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는 역자분의 말도 있습니다만, 나오미는 (제가 위에 적은 대로) 폭력남편에 대한 원초적 증오감을 자신의 부친 탓에 계속 지녀 온 상황에 몰렸다든가, 대학 때 타 부원들에게 폐를 끼친 후배 커플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쭐을 내 줬다든가, 아주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만 타게 되어 있던 놀이시설을 두고 "강력 항의한 끝에" 순번제가 성별 차별 없이 이용하게 만들었다든가, 부쩍 늙은 어머니를 두고 이혼을 권유하다 "너 그게 부모한테 할 소리니?"라는 말을 (어머니 본인에게) 듣는다든가 하는 일화를 끼어 넣으며, 작가는 "결행"의 근거를 제법 부지런히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성격부터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잘못한 녀석에게는 "천벌이 내려져야(본인 입으로 말한 것)" 직성이 풀리는 그런 타입입니다. 성격 요소와 환경 변수가 적당히 어우러지면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더군요.

 

나오미의 그런 성향이 꼭 복수심이나 트라우마, 피해의식의 산물이라곤 보기 힘듭니다. 저 대학 후배 오리엔티어링 사건처럼, 권력관계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이들을 상대로도 "잘못은 불결한 것이며, 정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응보 관념이 투철한 걸로 보입니다. 나오미의 부모, 언니가 가정 폭력에 대해 "나오미짱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걸로 봐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크게 응어리져서 이런 대형 사고(....)를 치게 되었다는 식은 아니고, 정의감과 평등 의식을 건전히 자각한 표준적인 현대 일본 여성을 무난히 대변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비록 말단 외판원직이지만 오다 나오미는 그럭저럭 수완이 좋습니다. 중국인 리 아케미가 그토록 그녀를 도우려 한 건(오히려 독자에 따라선 이 대목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요령 있고 수완 좋고 그러면서도 너무 발랑 까지지 않은 채 단호할 때 단호한 그녀 성격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던 덕입니다. "중국에 가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사실 전문 직능이 뭐 하나 확실히 갖춰진 건 아니지만, 더 클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여성 억압적인 사회 구조 때문에 이런 일이나 하고 있다는 암시를, 작가는 은근 던지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나오미가 아주 능력이 출중하거나 하지는 않고요, 적당히 똑똑한 선에 그쳐야 (아마도 여성 독자들이) 쉽게 공감을 보낼 수 있겠죠.

 

가나코는 영어 검정 시험 우등 자격을 갖고 있으며 대학 졸업 후 회사에 근무한 경력도 있습니다. 이런 그녀가 시댁과 남편으로부터는 무슨 자격 미달자가 과분한 혼사를 맺은 양 지청구에 시달리는 것도 독자는 부당하게 느낄 상황입니다. 시험 성적만 있을 뿐 실무 능력이 출중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에게 맞고 살며 부엌데기처럼 살림만 하는 노예로 지낼 이유는 (가나코 아니라 누구라도) 없습니다. 반면 시누이 요코는 소설이 끝나갈 무렵 "니가 뭔데 내 경력을 망치려 드니.... "라며 제발 알아서 좀 xx 달라는(스포일러) 요구를 하는데, 처음에는 "내 손으로 널 죽이고 싶다"로 오해했으나, 다시 읽어보니 "폭력을 휘두르다 아내 손에 죽은 남편"이 자기 오빠라고 소문이 나면 자신의 평판에 큰 흠집이 날 걸 염려한 뜻이더군요. 너 혼자 곱게 xx면, 남 보기도 좋고 니 죗값도 치르는 셈이며 내 장래에 지장도 안 주는 것 아니냔 건데, 이러면 이 사건이 영원히 묻히므로 공범 나오미가 최종적으로 형사 소추로부터 해방된다는 (의외의) 효과도 있습니다. 물론 이미 의식이 깨고 단호해진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가나코는 단칼에 거절하죠.

 

이 소설에서 독자의 미움을 한 몸에 살 캐릭터는 시누이 요코일 겁니다. 그녀는 사회 생활 경험도 많고 능력도 있으며 자기 의지를 효율적으로(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식이 아니라) 관철할 수완이라든가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썰미도 좋은 편입니다. 위의 나오미보다 훨씬 고소득자며 지능도 뛰어납니다. 그녀는 오빠가 올케에게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나 이기적으로 이를 방관하고(같은 여자로서 차마 할 일이 아니었죠),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오빠의 "실종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짐짓 올케의 마음을 떠볼 생각으로 전화상으로 교묘히 늘어놓는 교활한 모습입니다. 올케를 충분히 의심하지만 밤마다 전화를 걸어서 "니가 무슨 일 저지른 것 맞지? 이 망할 x아 대답을 하라구 대답을!" 같은 추궁을 퍼붓지도 않습니다(한국형 막장 드라마에 잘 어울리는 이런 선택이 오히려 가나코에게는 효과적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의심을 하되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지 올케와의 연락을 일절 끊고, 결정적 물증을 남김 없이 구비하고서야 찾아가서 마지막 담판을 벌일 만큼 이 요코는 영리하고 냉정한 여성이더군요.

 

이 소설에서 중국은 여러 면을 지닌 문화 코드,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중국인은 이기적이고 법질서에 대한 근원적 disrespect를 가지고 있으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게 분명히 여러 장면을 통해 표현됩니다(여기까지 읽으면 무슨 혐중 문학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두 여성, 숨막힐 듯 조여오는 여성 억압의 기제를 모면하려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 이들에게, 질서 잘 지키고 정직하며 깨끗하고 교란 없는 일본 사회의 미덕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작가는 "죄 없이 고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일본은 중국만도 못한 땅"임을 제법 심각한 울림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상하이 같으면 그런 남편은 여자 친정 가족이 나서서 죽여 버리거나, 갱단한테 부탁해서 깔끔하게 처리하지." 사실 중국이 근 백 년 간 반식민지 상태로 지낸 건 저런 비공식적 분쟁 해결 수단이 공권력과 보편 정의를 압도해서인데, 사회주의 오십년 통치를 거친 지금 다시 장개석의 국민당 시절에나 보던 사회상이 또 만연하니(소설 묘사를 떠나 이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참 아이러니하다 하겠습니다.

 

"친구의 죽어 마땅한 남편"을 깔끔하게 clear하고(나오미의 표현입니다) 완전 범죄를 도모하는 과정은, 독자의 공감과 응원(...)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긴박감 넘치고 재미있습니다. 이 과정이 소설의 절반인 "1장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 여성일 뿐인데, 어디서 그런 요량과 배짱이 나오는지 독자는 경탄하게 되고, 여러 행운이 도와(이 점이 중요합니다. 운이 나빴으면 어림 없었을 진행이, 여러 천행이 겹쳐 일이 그 단계까지 가기라도 한 거죠) 살인은 그저 먼 후지산자락 어느 모퉁이에 그냥 묻히는가 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나머지 절반 "2부 가나코"에서, 완전 범죄라며 섣불리 안도했던 이 계획이 사실은 구멍 투성이였음을 독자에게 깨우치며, 공들여 쌓은 두 여인의 탑을 밑둥부터 무너뜨립니다.

 

앞에서 말했듯 작가는 심지어 주인공 둘로부터도 거리를 두고, 폭력 남편을 향해서도 너무 지나친 소외, 추방은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남자는 (일본에서라면) 독자 바로 당신, 혹은 당신의 남편일 수도 있다!' 정도죠. 그래서, 두 여인이 완전 범죄를 무난히 저지르게 놔 두질 않습니다. 여튼 범죄는 범죄고, 그래서 그 미화, 합리화를 경계하며, 오히려 "과연 그렇게까지 두 여인이 했어여만 했던가!" 같은 逆비판의 여지도 충분히 남겨 놓습니다. 좋은 문학 작품은 이처럼 하나의 신조, 인물, 주제를 위해 폭주하지 않고, 독자에게 많은 공간을 배려, 예비하는 게 또 공통적인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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