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독소전쟁(소련-러시아에서 "대조국[애국]전쟁"이라고 부르는)이 끝나고 냉전 체제의 기본 골격이 확정된 1950년대 전반입니다. 무대는 당연히 구 소련이고, 주인공 역시 소련인이며, 다만 소련 체제에서 정보부(KGB의 전신인 NGB) 간부 신분이자 독소전에서 전쟁 영웅이었던 걸로 설정됩니다. 여기까지도 별반 특이할 건 없는데, 이 작품에 마련된 장치 중 단연 돋보이는 건, 주인공 레오의 성격, 개성, 인격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입니다. 서구 독자들에게 어필하려면 "자유를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불굴의 투사" 정도로 세팅되어야 하는데, 막상 그러면 또 하나의 진부한 "람보", 스테레오타입의 반공 전사 하나가 제시될 뿐입니다. 자유와 휴머니티, 개인의 양심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건 맞는데, 다만 그는 반체제 인사가 아닙니다. 사회와 체제가 그어 놓은 한계, 시스템의 펀더멘틀과는 파국적으로 충돌하려 들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 개인의 양심을 더 우선 순위에 놓을 뿐입니다.

 

이에는, 무(無)의 출발선에서 오직 자신의 능력, 의지만으로 정상에까지 오른(사회주의 체제이므로 이게 이론-현실 양면에서 가능합니다. 이 소설 나중에 등장[?]하는 흐루쇼프 서기장도 일자무식 빈농이었으나 현장에서의 실적만으로 출세한 사람이죠) 레오 자신의 경력이나 정체성 형성 과정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체제가 자신을 만들어 주었는데, 피조물이 창조주를 배신할 수는 없죠. 영화 <엑스맨: 퍼스트클래스>에 보면, "매그니토" 에릭은 세바스천 쇼에게 "유 아 마이 크리에이터."라고 안심 시켜 놓은 후 바로 뒤통수(...)를 치는데, 최소한 저 말 자체는 진심이었습니다. 크리에이터이자 불공대천의 원수이기도 하다는 게 함정이긴 했지만.

 

여튼, 레오는 당성과 국가관, 충성심이 약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실감이 나고, 일단 그녀를 위해 모든 걸 걸었음에도 현실이 지옥이면 그녀의 목을 조르기도 하는 어처구니없는 약한 모습을 노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역전의 용사로 나치가 파 놓은 지옥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목을 조르다니, 독자는 이처럼이나 허약한 히어로의 모습을 보고 전율을 넘어 절망, 체념하기에 이릅니다. "이제 모든 게 다 끝났군. 하긴 100페이지, 300페이지 전에 끝났어도 이상할 게 없는 지옥의 연속이었지만." 소설 초에, 극심한 기근으로 생지옥을 연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어느 여인은 고양이를 키우며 생의 의미, 희망 전체를 투사하고 있습니다(마치 1985년작 <에일리언 2>에서 어린 소녀 뉴트가 그랬던 것처럼). 레오에게 라이사는, 자신의 목숨, 평판, 경력, 부모님, 심지어 자신의 양심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를 끝까지 괴롭힌 건, 라이사가 과연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이 대답이 "No"에 가까워질 때, 그는 아마 라이사도 죽이고 자신에게도 응분의 처단을 스스로 가했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독자 입장에서는 여태 응원하고 감정이입해 온 주인공을 잃는 아픔보다 더 크게, 천하의 악당 바실리가 그 특유의 변태적 가학성을 충족하며 좋아라 하는 꼴을 봐야 하는 끔찍한 고통이 밀려 오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레오는 1) 잘생겼다. 2) 두 마음 품지 않는 충직한 성격이다 3) 육체적 능력과 기민한 판단력을 동시에 갖추었다 같은 장점, 히어로의 요건을 구비하고 있지만, 뭔가 모르게 독자가 전폭적 존경, 애정을 보내기엔 부족한 인물입니다. 보통 "결함 있는 영웅"이라면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야수 같은 살인마 기질이 느닷 튀어나온다든가 하는 약점이 내세워지는 게 보통인데, 그는 OOOO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면은 거의 없습니다(그 반대라면 모를까). 대신, 전형적인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포함) 답게, 장르물 주인공치고는 적잖게 이례적으로, 강자, 체제의 위력 앞에서 기본적으로 숙이고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건 차라리 리얼리즘입니다. 쿠즈민 총경이 "일곱번째 이름은 라이사 데미도바. 자네가 직접 조사하게."라고 악마의 한 수를 던졌을 때(그리고, 작가가 대체 독자를 어디까지 갖고 놀 것인지 경악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직 처음 100페이지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라는 건지요), 우리 독자들은 레오가 바로 상관에게 주먹을 날릴 것으로 기대했습니다(그러면 소설이 바로 끝나지 않을까? 작가의 지금껏 스타일로 보아,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재주가 있었으니 그닥 걱정은 되지 않았지요). 대신, 레오는 총경의 말을 듣습니다. 지시에 순응할 뿐 아니라, 정말 아내가 스파이라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접근해 온 건 아닐까 하고 의심까지 품습니다. 라이사는 의사(라기보다 구더기에 가까운) 자루빈의 그 강력한 유혹마저 뿌리치고 병상에 누운 남편인 자신을 지켜 낸, 용기와 지조를 겸비한 여성임을 우리 독자 모두가 지켜 봐 온 터라 더욱 기가 찰 모습입니다. "이 자가 지금 제정신인가? 아직도 약이 덜 깼단 말인가?"

 

이상하게도 독자는 레오가 뭔 짓을 하든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결백한 수의사 아나톨리를 추격할 때에도(혹한 중에 힘 내려고 마약까지 흡입함) 레오는 분명한, 악독한 불의를 저지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녀석을 빨리 잡아 당국에 넘기고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시길!"을 외치고 있습니다. 전 아직도 제 자신의 이런 반응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능력과 의지가 탁월한 위인이라도, 사악한 체제 아래에서는 그 무엇보다 경멸스러운 죄악의 도구가 될 뿐이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는 대목인데도 말입니다. 레오가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가 "아내를 당국에 넘길까요?"를 (전혀 본심이 아닌 채) 물을 때,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하는 말할 수 없이 비겁한 생각이 잠시나마 들기도 했고요. 라이사를 고발하면, 라이사만 죽고, 라이사를 고발하지 않으면, 라이사, 자신, 자신의 부모 모두가 죽습니다. 아내의 침대에서 기밀서류 은닉용(?) 동전까지 나왔을 때, 독자는 이제 체념을 합니다. 바로 그 순간, 레오는 결심합니다. "그딴 거 없으니 차라리 날 죽이쇼." 이 능청맞고 솜씨 좋은 작가가 독자를 어느 정도 갖고 노는지 짐작이 갈 겁니다. 여태 잘 따라온 독자를 양심 팔아먹은 쓰레기로 만들고, 히어로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 고결한 세인트로 탈피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우리는 작가의 플롯 독재 속에, 전체주의 체제 안에서 최소한의 양심도 지키지 못하고 개처럼 끌려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비참한 신민, 농노들의 처지를 간접 체험하는 겁니다. 아닐까요!

 

레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일 개인이 어떻게 체제 타도에 나설 역량이 있겠으며, 그는 사실 그만한 각성도 의지도 결여된, 오히려 체제의 총아 위치에 놓여 있는 처지입니다. 근데 레오가 전쟁영웅, 정부 고위 간부라는 아이덴티티보다(심지어 작신의 영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게 있습니다. 그건, 아이들을, 마흔 명 넘는 소련 전역을 누비면서 기이한 방식으로 죽이고 다니는 연쇄 살인마를 잡아 죽여야 한다는 양심의 외침입니다. 그는 자식이 없습니다(왜 아이가 없었는지 이유는 종반에 가서야 밝혀집니다). 이런 개인적 상실감(그리고 동기가 하나 더 있었는데, 자신조차 오랜 동안 잊고 있었지요. 스포일러라서 적을 수는 없습니다) 역시, 그의 굽힐 줄 모르는 "수사의지"에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는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이렇게 주위의 이웃들에게 호소합니다. "난 조국과 당, 스탈린 동지를 배신하자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다들 아이를 낳고 키우시죠? 전, 우리 나라에서 아이만 골라 잔인하게 죽이고 다니는 악마를 찾아다니다 오해를 산 것 뿐입니다." 어떤 처지에 놓여 있건, 숱한 소시민, 촌락민, 무지렁이들도 소련 인민이기 전에 "인간"이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기에, 레오에게 길을 내어줍니다. 그것이 신의 명령이나 되는 듯 말입니다. 시골로 가면 갈수록, 그곳에선 당 간부보다 마을의 노인이 더 큰 카리스마를 발휘합니다. 그 정체, 그 연원이 무엇인지 불가사의한 카리스마를. 우리 독자들이 짐작하듯, 그것은 인간 기원과 역사의 궤를 같이하는 "휴머니티"입니다.

 

독자가 레오에게 이처럼 큰 응원을 보내게 되는 이유는, 작가가 잔혹하게 마련해 놓은 지옥의 롤러코스터 장치가 주는 불공평한 서스펜스나, 캐릭터 개인의 매력, 혹은 숭고한 주제 의식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안타고니스트인 바실리란 작자의 비열함, 경멸스러움에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바실리는 실무 능력도 없고, 오로지 조직 내 정치력에만 기대어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는, 어느 집단 안에서나 암적인 존재로 기능하는 전형적 악인입니다. 이 자가 잘되는 꼴, 저열한 욕망을 충족하는 꼴을 보기 싫어서라도, 우리 독자는 레오에게 없던 공감, 동정까지 다 짜내어 보낼 수밖에 없죠. 저는 쿠즈민 총경, 그리고 이 바실리가, 각각 스탈린과 베리야의 분신, 미니어처로 소설 속에 배치된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레오를 괴롭히는 이 악질적 상관들은, 흐루시초프가 정쟁에서 승리하고 말렌코프 등을 모조리 실각시키면서 일제히 퇴장하거나, 다른 운명(스포일러)을 맞게 됩니다. 우크라이나가 작품 초두에 지역적 배경으로 잠시 등장하는 것도 적잖은 의미를 지니는데, 허위 단서에 속은 바실리(돌머리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의 주장을 물리치고 레오가 반대 방향을 고집하는 건, 책을 다 읽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다른 동기(역시 스포일러)가 은근 심적으로 작용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실리가 레오에게 가진 태도는, 철저히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지닌 그런 스탠스와 닮음꼴입니다(지극히 무능하다는 게 차이지만).

 

센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에서, 페트로니우스는 교묘한 수사, 논리로 네로의 비위를 맞춰 가면서, 결국 폭군의 파멸과 정의의 회복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레오는 상관에게 "강력부 부장을 맡겨 주십시오. 자본주의의 주구가 우리 조국, 체제를 '범죄 침투라는 신종 수법으로' 좀먹는 시도를 기필코 막아내고 말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우와 이 아저씨 궤변 쩌네요" 같은 반응을 우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페트로니우스와는 달리, 레오는 저 말을 할 때 팔할 정도는 진심이었기 때문이죠(또, 그래야지 이 프랜차이즈가 쭉쭉 이어간다는 상업적 이유도 있지만 이건 그냥 넘어가야...). 진심과 현실 순응, 야심과 양심이 교묘한 길항 작용을 일으키며 존재를 버티게 하는 이 레오라는 주인공에 계속 응원을 보내는 건 이런 특이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은 마치 한국어 원문 소설처럼 자연스럽고 가독성 높습니다만, "흐루시초프"를 "후르시초프"라고 오기한 게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 이전에, 현행 바른 표기는 "흐루쇼프"입니다. 물론, 외국인 이름 표기도 이처럼 구식이라야 빈티지한 맛이 사니 다분히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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