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림자놀이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소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어휴, 너무 잘 읽었습니다. "너무"라는 부사, 부사어가 문법적 혹은 화용적 오용이 아니라고 강변이 주저없이 나올 만큼, 이런 고퀄의 작품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너무 가볍게 읽은 것 아닌지 하는 죄스러움이 느껴질 만큼인데요. 뒤표지에 보면 이 작품이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이유 중 하나로 "...가독성이 좋고.... "를 들고 계십니다만, 사실 웹소설처럼 가독성도 좋으면서(진짜 좋습니다), 재미는 따로 재미대로 안기고, 묵직한 울림, 감동, 뭔지 모를 벅참까지 선사하는 작품은 정말 보기 드물게 접해 본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가 읽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좀 송구스러운데, 그런 좋은 책을 읽고 독후감까지를 쓴다고 하면 이건 한 열 번 정도 더 읽고 서평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망설임도 들지만, 그래도 일단 쓰긴 써야 할 것 같네요.



처음 조생과 최생 두 백수(...) 선비가 등장하며 여차여차한 곡절을 빙자하여 구성지고 재미진 이야기 두엇이 끼어들 땐(이들은 낙방거사 과거폐인을 넘어 이제 소설폐인까지 겸하려 합니다), 액자는 그저 빈약해도 이런 삽입 설화가 무척 흥미로운 패턴으로 가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그건 저의 큰 착각이었고, 소설 속 소설인 <아수라>의 창작 동기, 작가, 배후의 사연(과 혹 음모)를 밝혀내려는 본 줄기가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강력했습니다. 나중에는 다소 충격적인(그러면서도 많이 "열린") 결말까지 마련하는데.. 이 강렬한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이야기에 취해서 속독을 하기보다, 미스테리 소설 읽듯 머리로 재구성, 추측을 해 가며 몰입을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분명한 마무리가 충분히 가능하게 전개되는 플롯이면서도, 구태여 작가(이 작품의 실제 작가, 혹은 작중 작가로 제시되는 다른 캐릭터들)는 반쯤은 열린 채로 개개 에피소드를 꾸려 넣고 있는데, 바깥 액자까지도 끝이 그런 식이라 전체가 부분을, 부분이 전체를 모방하는 기묘한 프랙털 구조가 연상됩니다. 소설이면서 소설의 의의("현실의 반영이요 그림자")를 논하는 점에서 자기 지시의 역설을 품고 있기도 한, 다층 독해가 가능한 걸작이었습니다.

 


일단 재미만 느끼려면 액자는 무시하고 아홉 편의 단편만 읽어도 됩니다. <아수라>까지 포함하면 열 편인데, 이 <아수라>는 본편의 복제(..)이므로 수에 넣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홉 편도, 우리에게 익숙한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 왔거나, 아예 definite(or extended) edition으로 개작한 것도 있을 만큼, 전혀 낯선 내용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 가락이라도 어느 소리꾼, 광대, 전기수의 리사이틀을 통하느냐에 따라 감동과 재미의 폭, 깊이가 다르듯, <바보 온달>과 <박씨전>이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였던가 하는 생각에 새삼 신선한 각성이 몰려왔습니다. 사실 저 두 이야기는 보기에 따라 축약판일 수도 있는데, 뭔가 말 못할 사정 때문에 흐릿하고 모호한 표현에 알듯모를듯 상징만 잔뜩 담아낸 이야기를, 우리 작가님이 현대적으로 화끈하게 복원, 재구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아니, 그게 그런 이야기였어?"). 같은 이야기라도 참 재미있게 풀어내는 분, 박식한 사항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는 작가도 물론 있지만, 원형의 얼개, 함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억지스러운 이념 투사, 논리 비약 폭주는 물론 없고) 이처럼 자기만의 색깔을 잘 꾸려넣는 모습(그러면서도 뭔가 흐릿하던 게 눈에 확실히 어느 순간 들어오게 하는 내공! 마치 "비유를 통해 어려운 이치를 쉽게 가르쳤다는 이어도 표류의 그 스님 같네요), 역시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하신 분들은 남들이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메우거나 극복할 수 없는 어떤 갭을, 독특한 솜씨를 통해 반드시 작품 속에 만들어 놓습니다. 학벌, 이거 절대 무시 못하죠.



금오신화나 기타 설화 문학에 등장하는 일부 캐릭터나 서사처럼, <능텅감투>에서 주인공이나 스토리는 누가 무슨 잘못으로 그런 비극적 파국을 빚었다는 건지 끝내 모호합니다. 오시원은 먼 친척(인척) 뻘이 될 별당아씨에게 불순한 마음을 품으나, 금도를 범할 배짱은 전혀 갖지 못한 좀스런 사내입니다. 정체를 모를 도깨비(혹시 별당아씨의 죽은 남편- 자신에겐 먼 조카뻘이나 됨직한 - 의 귀신일지도 모르죠)에게 능소(能消)감투-이게 소위 "도깨비 감투"입니다- 을 빌리고, 꿈 같은 운우의 쾌락을 맛봅니다. 허나, 날이 새고 집에 돌아와 보니 오생은 과연 세상에 공짜가 없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읽고 저는, 처용 설화의 처용 역시 그저 관대해서 역신에게 노여움을 자제한 게 아니라, 뭔가 사전에 deal이 있었기에 그렇게나 초연(체념과 허탈함이 가득 밴)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해셕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네요.

<오백 년 해당화 향기>는 제목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몽침 시기 끝까지 고려의 자주혼을 지키려다 죽은 김통정 장군과 그 무리들의 원혼 이야기입니다. 특히 저는 "...한때 귀족과 권귀의 사병, 개돼지 노릇을 하며 기생충처럼 민생과 국부를 갉아먹던 우리였으나, 이곳에서 백성의 인심을 얻고 그들을 대변하며 싸우다가 참된 깨달음을 얻었다"는 대사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삼별초의 정체성에 대해 학습하며 혼란을 느끼곤 하는데, 작가는 이처럼 간단하게 얽힌 가닥을 풀어주는 군요. 역시 학교 다닐 때 공부잘하고 볼 일입니다. 제주도란 고장의 저항사와 토색(土色)적 한(恨), 민족 항쟁의 의미, 유생, 학자의 본분에 대한 고찰 등이 두루 잘 압축된 설화다 싶더군요.


<사다리를 오르지 마라>는 괴담, 처세술, 도참비기, 애욕, 미스테리 등 다양한 소재가 들어 있는 제법 긴 분량이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불우한 서생 이은처럼 보이지만, 주제와 이야기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장악하는 이는 무시무시한 권력욕과 의지를 지닌 "대감마님"이었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작은 용원설화, 구토지설의 변용태인데, 용왕이 토끼나 자라 등에 속거나 무기력하게 의존하지 않고, 뒤에서 기미조정하는 무서운 존재로 거듭났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은은 주인공답지 않게운명의 장난(이 사실은 아니었고 대감님의 마수)에 팔랑개비처럼 맥없이 놀아나는데, 어찌 보면 이 역시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설정입니다. 자세한 건 직접 읽어 보고 판단하시고... 전 개인적으로 (모호하고 뜬금없는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언은 결국 실현되고야 말았으니..... " 그런데 대감님과 난이는 결국 다 어디로 간 건가요?

<황금비늘>이야기가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평강 공주가 출궁 후 온달과 맺어지는 과정에 큰 설득력과 필연성이 부여되는! 그냥 이 버전을 정통 정본으로 삼고 교과서에 싣고 가르쳐야 할까 봅니다(다만 에로틱 묘사는 다 순화 - 이 책에는 야한 표현 걸쭉한 묘사가 은근 많으니 조심이 필요합니다). 임금이란 밖에서 넘보고 안에서 찌르며 밑에서 치받는 위험천만한 자리인데 평민을 무슨 명분으로 사위에 들이겠냐는 평원왕의 대사는 정말 실감이 났고, 옛 약혼자이자 왕족 고씨 청년이 마지막에서야 "온달에게 자신 따위는 넘보지도 못할 용기와 기품이 있었음"을 통렬히 깨닫고 그의 부탁(...)을 들어 주는 장면도 마음이 짠하더군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설화 유형의 모든 매력을 다 담아내는 솜씨.

아홉 편의 이야기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마지막 단편 <광대와 여인>은 진정 소름이 돋고 영혼이 감동에 관통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연도 충격적이었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잠언이고 십계명이고 신들린 법열의 산물이더군요. 여기다 한 구절 한 구절 인용해 보고 싶지만 저만의 감흥이 깨어질 것 같아서 그냥 자제하렵니다. 사실 이처럼 감동의 농도가 높으면 서평 쓰기보다 그저 내밀한 느낌만으로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간직하고 싶습니다만.... 웹소설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 톨스토이처럼 심오하고 미당처럼 미려한 문장, 표현에다, 박경리선생처럼 토속적 아름다움을 담은, 독자로서 그저 황송하고 감사할 뿐인 작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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