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차이나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KBS <슈퍼차이나>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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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시니카, 과연 중국의 세기가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누구나 절반의 확률로 맞힐 수 있습니다. 예,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니까요. 한 십 년 전만 해도 반미감정이 절정에 달할 때라 그의 부수 효과였는지, 모 명문대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중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1위였습니다.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일각에서 혐중 트렌드가 자생할 만큼, 이 잠자다 거하게 기지개를 켜는 사자에 대해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는 행태로 봐서 아직 중국은 멀었다.", "동남아 여러 나라한테 영토 야욕을 보이는 모습으로 볼 때,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가 결코 안심할 게 아니다(원교근공으로 여전히 친미)"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국토, 인구, 자원 등의 잠재력으로 보아, 미국 추월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미 구매력 기준 GDP로는 1위)이라며, 대세의 전환에 미리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유일한 방책이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중국 대세론"에 편하게 가담하면, 현실주의, 실리주의에 진보적(....) 색채까지 겸한, 두루두루 폼도 나고 범용으로 둘러치기 좋은 스탠스였는데, 중국이 어지간히 커 버린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짧다며 지적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친중 성향 분들은 "아무리 그래봐야 이미 물꼬가 터진 대세를 무슨 수로 거스르냐"며 자못 느긋해하는 모습입니다. 근데 실리를 따짐에 있어 "시간"이란 제법 중요한 변수라서, 예컨대 오십 년 뒤에 초대박나는 주식이라며 목돈을 한 푼 수익 없이 한 품목에 마냥 묻어 두는 건 그리 현명한 투자가 아니죠. 우리 손자 대(代)에 가서나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면, 당분간은 미국에 줄 서는 게 더 큰 실리를 거두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주권국가가 자주적으로 활로를 모색할 생각은 않고, 어느 강대국에 부화뇌동하는 게 "실용 노선"인 줄 착각하는 게 근본적 오류라는 건 지적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인데도, 당면 현안과 본분에 충실할 생각은 없이 소모적 내부 갈등으로 정력을 낭비하는 걸 보면 "누가 이기든 우리는 지는 것 아닌가" 하는 비관주의가 피어오르지만 말이죠.

인류 문명이 개화한 후 연대적 비중으로 팔 할 이상은 내내 중국의 세기였으니, 잠시 동안의 "일탈"이 마무리되고 이제 노멀로 복귀할 뿐이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중국인들만의 강변이 아니라, 서유럽, 미국에서도 이런 견해를 피력하는 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서구 문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렇게 자기자신을 객관화해서 판단할 줄 알고, 본질적 이해관계를 두고 가장 보수적(비관적) 기준을 적용할 줄 아는 그 유연성과 여유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중국도, 겉으로 티만 안 낼 뿐 자신들의 취약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냉정한 분석을 하고 있을 겁니다. 세상 형편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우리만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 눈을 감고 우리 편할 대로 생각하며 부족히고 불리한 현실을 애써 호도, 미화하는 것 아닌지 그저 걱정만 될 뿐입니다.

이 책은 주로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세계를 향해 웅비하는 초강대국, 미국처럼 불과 이백년 안짝의 기간에 자립한 신출내기가 아닌, 언제나 의젓한 주인 노릇을 해 온 관록의 중국이, 오늘날에 이르러 어떻게 굴욕의 시기를 딛고 이처럼 천지를 진동할 만한 위용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지, 호방하고 거침 없는 어조와 비전으로 독자에게 표방, 설시, 웅변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입니다. "천지가 생긴 이래 중국과 같은 나라가 어디 있었으며, 뻗어나가는 그 기세로 볼 때 앞으로 누가 감히 중국에 대적하겠는가?" 마치 건륭제가 영국 특사 매카트니를 불러다 놓고 알현할 때, "이 중국에는 나지 않는 물자가 없고, 돌지 않는 물산이 없으니, 너희 외방 만인(蠻人)들과 교류할 아무 이유가  없도다."라고 한 그 위세, 그 존엄이 다시 살아나는 태세입니다. 실제로 중국의 페이스에 서유럽, 미국이 공동 전선을 이루지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끌려다니는 것도, 물론 공산당 당국이 영리한 책략으로 상황을 요리하는 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으로부터 배제된 나라가 내부 경제를 온전히 건사할 재간과 방도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한 번 혼이 났고, 희토류 반출 금지 조치로 일본은 하루 만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국이 만약 중국으로부터 여하한 무역 규제라도 당한다면, 그날로 실물/금융 시장에 무슨 변고가 닥칠 지 모릅니다. 마음에 안 들고 서글퍼도 이게 엄연한 현실이죠.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와 시각이 있지만, 특히 결제 관련 츨랫폼을 시스템에 유기적으로 통합한 그 실력만큼은, "경영상의 창의와 혁신의 총아"란 칭송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십오억 거대 시장을 배경으로 했기에 1인 잭팟이 운좋게 터진 걸로 볼 수 없고, 중국인의 본능적 상인기질에다 테크놀로지의 유효한 학습이 절묘한 시너지를 빚은 결과입니다. 국내용이었으면 냉정한 월가에서 대박을 낼 수 없고, 중국인으로서 미국 심장부 한복판에서 거의 개인의 힘으로 일종의 "정복 쾌거"를 이뤄낸 것입니다. 책은 이를 두고 "중국의 성취, 성공"으로까지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정상 등극의 단맛을 채 누리기도 전에 그 자리를 위협하고 들언온 백색가전의 거인 하이얼, "짝퉁에서 차르(czar)로 위상이 바뀐" 샤오미 등의 위상은, 중국 붐이 더 이상 관제, 관치의 산물이 아닌, 자생적 추동력을 갖춘 자본주의 본류의 적성을 구비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합니다.



군사력은 어떠한가. 미국에 비하면 전력상 아직 열위지만, 중국의 위상은 이제 거뜬히 지역 패권의 현상 변경을 운위할 만큼 격상되었습니다. 시장에서도 독점, 과점 사업자는 가격설정자(price setter) 노릇을 하고, 완전경쟁에서의 개별기업은 그저 수용용자(price taker)에 머물듯, 덩치가 커진 중국은 더 이상 수동적인 플레이이가 아닌,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초거대 독립 변수가 되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그들은 주동작위(主動作爲)라고 칭합니다. 미국에 대항하여 삼개 방면에서 전개할 대함대를 거느리는가 하면,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중앙아메리카에까지 한 발을 들여 놓고 니카라과 운하를 건설하는 초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미 크게 화제가 되었고, 미국의 천하가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던 이들에게는 마치 北齊와 北周가 번갈아 汾河의 얼음을 깬 고사가 떠오를 법도 합니다. 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설치하려 들 때 바로 핵전쟁 불사를 외치며 대서양을 막아선 과거를 생각하면 더욱 무상감이 느껴지죠. 물론 어디까지나 경제 역사(役事)를 두고 딴지를 걸 명분도 없고, ICBM 체계가 오래 전 완비된 중국의 이런 행보에 새삼 신경전 벌일 이유도 없지만요. 

우리는 보통 마오가 공산 혁명에 성공한 후에는 실정을 거듭했다고 알고 있으나, 기실 국민당 정권 하에서 극심한 부정부패와 생산체계의 모순, 끝도 없는 지역할거와 정정 불안상에 시달려 왔던 중국 민중에게는, 1950년대의 더딘 발전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천만의 아사자가 발생했으나, 경자유전의 원칙이 시행된 조치만으로도 4억 인구가 두 배 넘게 이미 폭증할 수 있었지요. 이 책은 (다소 관제화한 홍보 문구가 많지만), 기본적으로 공산 혁명이란 모멘텀이 없었으면, 중국은 현 시점에조차 지리멸렬 무지몽매의 반식민지 상태를 면하지 못했으리라는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슈퍼차이나의 턱 밑에 붙어 있는 우리 한국의 장래가,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이 책은, 특히 제주도에 진출한 중국인들의 대거 투자에 주목하며, 국익과 경제적 실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잘 잡아야 하는지 (책의 다른 챕터와는 다분히 기조를 달리해가며) 심각한 분위기로 의제를 짚어 가고 있습니다. 영토 문제, 주권 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적지 않은 터라, 문단에 따라 "(중국의) 야욕"이라는 표혀현을 쓴 대목도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 논조의 혼란도 느껴지지만, 이 문제가 결코 안이하게 대처할 성질이 아니기에, 책은 영토 문제를 포함한 모든 외교, 정치, 경제 이슈를, 초강대국 중국의 군림이라는 "현실"과 함께 진지한 고민의 대상으로 삼자는 게 본지입니다.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는, 가급적이면 보수적(비관적. 나에게 불리하게 보자는 의미에서)으로 접근하는 게 현명할 때가 많다는 의미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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