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독립 -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남자, 독립을 꿈꾸다
이봉규 지음 / 프롬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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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쓰신 이봉규 박사님의 성함도 처음 들었고, 책을 펼치고 나서야 본업이 정치평론가, 교수이신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란 게 아예 부재하기에, 그를 두고 이뤄지는 무슨 "평론" 같은 것도 가치를 평가할(영어로는 believe in)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내용대로, 가수 조영남 선생이 "당신 정치평론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란 코멘트를 했다면, 모르긴 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정치평론가로서의 호불호가 아주 극명하게 갈리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저자께서 주장하신 바가 만약 열 가지라면, 여덟 가지 정도에 대해선 심한 반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라지만, 그런 가치관상의 반대 성향은 이 책을 읽기 오래 전부터 저 나름의 인생 경험을 통해 다져 온 것이라, 앞으로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유익하기도 했고요.

 

우선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저자분이 너무도 솔직하시다는 점이었습니다. "솔직하다"는 건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나의 감정상 호불호를 숨기지 않고 마구 표출한다"는 뜻일 수 있고(이 경우는 뭔가 따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솔직하다"보다는 "경솔하다"가 어울리겠죠), 다른 하나는 "치부에 가깝거나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도 격의 없이 털어놓는다"일 수 있습니다. 이봉규 박사님의 개성, 태도는 이 중 후자에 가깝습니다. 연세도 거의 육십을 바라보시는 단계인데, 이처럼 자신의 세계관, 습성, 태도에 대해 아무 가식 없이 털어놓으실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놀라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책 속에서 털어놓고 있는 대부분의 사연이나 견해가, 저 개인적으로는 종래 거의 일일이 반감, 혹은 경멸감까지 갖고 있는 터라, 책 읽은 후 다가온 그 정체를 모를 상쾌한 독후 감상이 더욱 신기한 체험이기도 했고요.

 

저자는 마흔 후반에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시고 연구, 평론직을 생계로 잡으신 분이라 내내 "늦깎이"라고 겸손한 자평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겸손이라기보단, "난 본래 그런 사람인걸? 그게 뭐 이상한가?"하는 어조로 들립니다. 그렇다고 애써 ego를 내세우는 분위기냐 하면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허허, 난 본래 이런 걸 어쩌겠어."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한마디로 대변, 요약할 수 있는 분 같습니다. 연령 불문하고 이처럼 인격이나 스타일에 어떤 높다란 장벽을 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분 주위에 참된 친구와 인맥이 모여들더군요. 말은 쉬워도 "편한 사람 되기"가 사회생활에서 제일 힘든 노릇이니까요.

 

사람은 비슷한 성향, 개성끼리 어울리는 게 보통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분이 칭찬하고 높이 평가하는 분들도, 일부에서 욕을 먹을지언정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퍼스낼리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자 이봉규 박사님은 늦깎이 데뷔라곤 하나, 미국 유학 시절 교민 대상 방송에서 이미 앵커맨으로 나선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DC에는 여러 사정으로 정치인들이 드나들게 마련인데, 이때 섭외하여 방송 출연이 이뤄진 거물들도 상당수더군요. 실명을 일일이 적진 않겠지만, 제가 막연히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부정적 인상이, 이 책을 읽고 거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통 와이프와 자식한테 끔찍히 잘하는 남자치고, 겉모습처럼 답없는 마초인 수가 잘 없습니다. 아내, 자녀 자랑하는 팔불출치고 악인이 대개 없습니다. 주위 눈치 보지 않고 그런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장면을 머리에 그리면서, 저 개인적으로 겪어 봤던 "잘 놀면서 술자리 분위기 띄우는 털털한 타입들"이 절로 오버랩되었습니다. 친분에 따라 다소 과장, 왜곡이야 있을 수 있지만, 책에 적혀 있는 진술들은 대체로 진정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 혹은 스타급 연예인 이야기는 이 책의 본령이 아닙니다. 책의 제목에서 보는 대로, 이 책은 "남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냐"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독립'이라고 해서 혹시 "마누라에게 쥐여 사는 처량한 신세로부터의 독립"이 아닐까 짐작하실 수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비중이 매우 적습니다. "주위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이 행복한 방식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어서, 유한한 인생- 특히 중년이라면 더욱- 신나게 즐기고 이 한생 보내라"는 유쾌한 주문입니다. "남자의"라고 해서 여성 적대적 주장이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도 있던데, 전혀 아니고 차라리 정반대입니다. 책 뒤표지에 "쉿! 여자는 읽지 마세요"란 말이 있습니다만, 반댑니다. 여성분들이 좀 읽어 주셨으면 하고 구체적 제안을 한 글도 있고, 설령 남자들 들으라고 한 이야기라도, 여성들이 좀 읽고 "이 철없는 남자들이 뭔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면 참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 많았어요(물론 주로 중년 여성들 말입니다. 젊은 여성이 공감할 만한 대목은,....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극히 적지 싶습니다). 남과 여가 어디 서로 싸우고 승부를 가르고 시비를 세우려고 지상에 태어난 존재들입니까. 이런 사이비 쟁투를 부추기는 사람들이야말로 애정사와 인생사에 모두 실패한 루저들이죠.

 

거듭 말하지만 저자분의 주장에는,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 동의 못 할 내용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은 너무도 스킨십을 원하는데, 남편(이 점만 빼면 경제력으로나 좋은 부모로서나 완벽한 남자)이 한사코 마다는 부인이 있답니다. 손만 슬쩍 잡아도 흠칫 놀라며 물러서고, 그렇다고 외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 이봉규 박사님 말은, "그냥 이혼하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와 결합하라."입니다. 이 과격한 조언(?)을 곧이곧대로 따를 분은 없겠지만, "당신의 그런 욕구와 아쉬움에는 정당성이 있다"는 진단에 큰 위안을 얻을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굳이 인용하는 건, 이 책이 특히 중년 여성, 주부들이 읽고 공감하거나, 자신들의 남편 그 감춰진 속내에 대해 배울 바가 적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듣기에 민망하다 싶은, 너무 솔직한 고백도 많았습니다. 저자분은 자녀도 두신 이혼남이고(양육은 전처분이 도맡음) 현재는 독신입니다. 이분은 20대의 젊은 여성-아주 미인이라는데요- 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여성 말이, 돈 많은 중년 남성, 자기 또래의 킹카, 그리고 저자분 셋을 애인으로 두고 있답니다. 다른 두 분은 자신에게 다른 애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릅니다(알면 당장 관계 종료- 뭐 당연하겠죠). 용돈도 넉넉히 못 주고 명품 선물도 못해주는 늙은 자신과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을 다 털어놓을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여성이 공인이 아니니 이런 정도의 언급이 그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배타적으로 여성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현한다면(솔직히 그건 무리죠), 이 정도의 관계도 이어나갈 수 없기에, 만족함을 알고(?) 현실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매력녀는 본디 누구 하나가 독점할 수 없고, 마치 매력남, 능력남이 여러 여자를 오가는 거나 같은 이치 아니냐는 거죠.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심각한 논란을 부를 수도 있는 이 같은 주장은, 그러나 저자의 솔직한 어조와 악의 없어 보이는 매너에 많이 중화되어 전달됩니다. 지나치게 괜찮다 싶은 여자가 내게 접근해 오면, 혹시 이거 쉐어링 아닌지 한번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은데, 서평에 일일이 적을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성교육 시간에, "지나친 마스터베이션은 이후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지닐 때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하나의 교조였습니다. 아마 지금 아이들은 꼭 그렇게 배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성 담론이 많이 오픈되었으므로). 저자분은 여기에 대해, 전혀 반대되는 논리로, 제법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애인과 서로 협조하여 실습하라는 말까지 있는데, 이러면 이미 그 이름을 버려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성행위에서 강조하는 포인트는 "애무, 전희, 후희"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 싹트거나, 죽은 애정이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 독자층이 중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든 남성은 돈많은 사장님 아니고선 룸살롱에 가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괜히 아가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죠. 그게 진리입니다. 대신 중년들은, 미국처럼 파티 문화, 인맥을 만들어서, 특화된 기쁨과 보람을 찾으라는 겁니다. 앞에 룸 이야기는 흘려 듣더라도, 뒤의 파티 이야기는 모두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 이 같은 신조가 자연스럽게 생기신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티 문화는 또한 나이의 노소를 가릴 필요 없이 수용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교제입니다(물론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얼핏 들으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는 민감한 이슈를, 툭 터놓고 논의의 장으로 끄집어 내니 오히려 개운해지는 뒷맛, 이것이 솔직함의 미덕이요, 또한 남자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진정 남자다워지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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