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라오스 - 순수의 땅에서 건져 올린 101가지 이야기
한명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10여년 전부터 베트남 중심으로 부동산 투자 붐(그리고 이에 부대한 다른 경기 호황)이 크게 일어서, 동남아시아 중 옛 인도차이나 지역도 더이상 한국인에게 낯선 땅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으로 정정과 치안이 불안했던 게 큰 장벽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 문제는 예전같은 난맥상은 더 이상 아닙니다. 베트남 전쟁의 승자답게(?) 통 큰 행보를 "도이모이"라는 간판 아래 1980년대말부터 보여 왔던 베트남엔 이미 많은 한국 사업가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인도차이나 3국(그리고 아세안 가입 10개국 중) 중 유일한 내륙국인 라오스입니다.

 

라오스는 한국인에게만 낯선 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나 국제정치 무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이런 책이 쓰여진 건, 국토 넓이에 비해 인구가 매우 희소하여 개발의 잠재력을 넉넉히 품고 있다는 사정이 알려진 후, 한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 투자와 사업의 기회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라오스의 가장 큰 매력은 넓은 땅이다"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영토 넓이가 대체 얼마이기에 그럴까요? 책에 나와 있듯이, 수치상으로 약 23만㎢으로서, 한반도 전체 면적에 경기도 면적 하나 정도가 더 붙은 정도입니다. "그게 뭐가 넓다는 것?" 지구상의 어떤 땅이건, 넓다 혹은 협소하다라는 건 상대적 개념입니다. 라오스 정도의 영토를 보유한 나라에 인구가 그리 많지 않고, 그 거주자들조차 개발의 욕구, 능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면, 그 나라는 상대적으로 넓은 땅을 지닌 나라입니다. 철저히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고, 현재 외국 자본이 활발히 유입되어 GDP를 올려 주길 기대하는 그 나라 정부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 라오스가 "넓은 영토"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다른 관점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미국처럼 광대한 영토를 지닌 나라도, 이미 한 뼘 땅에조차 적법한 사적(私的) 소유자가 일일히 정해져 있는 경우라면, 그 나라는 외부 투자자가 보기에 "넓은 땅"을 지닌 나라가 아닙니다. 반면 라오스는 헌법상, 그리고 현실 정치상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영토는 국가 소유입니다. 중국도 명목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라곤 하나 사실상 전 영역이 사유화한 지 오래이며, 땅이 넓다곤 하나 부양 인구가 너무도 많기에 오히려 인접국들이 피로, 경계를 느낄 만큼 팽창욕이 강한 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은 전혀 "땅이 넓은 나라"가 아닙니다.

 

 

라오스 역시 상당수 토지에 현주 점유자가 있고, 그 점유자들이 그 땅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들이 "소유권자"는 아니기에, 약간의 보상 외에는 수용이나 협의 취득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게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다소 야박할 지는 모르나) 개발 비용의 부담에 신경 쓰는 사업가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일단 다가오는 겁니다. 한국에서 일단의 토지개발에, 원 거주자들과의 협상 과정에 얼마나 어려운 (양쪽 모두 마찬가집니다) 절차, 트러블이 끼어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냉전 시절 공산국가였던 이들에겐, 역설적으로 "볼륨 존" 안에서 이런 메리트가 새로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면적이 23만여㎢라는 사실은, 저 개인적으로는 좀 놀라움으로 다가왔는데요. 우리가 보통 참조하는 지도는 메르카토르(마케이터) 도법으로 작성된 것이기에, 적도 부근이 축소왜곡되어 실상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막연하게마나 남한보다 작겠거니 하는 정도였는데, 웬걸 한반도 전체보다 더 큰 면적이라니 크게 의외였습니다. 이 비슷한 예로, 라오스 바로 왼쪽에 붙은 태국이, 일본에다 북한 영토를 합쳐 놓은 넓이라고 하면 다들 믿지 않습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상당히 큰 나라인 줄로만 알지만, 일본에서 규슈와 시코쿠가 떨어져 나간 정도에 그칩니다. 반도와 보르네오 섬 양쪽에 걸쳐 있는 국토의 형상에, 다민족 다종교 연방체인 시스템이 그런 착시를 부르는 거죠.

 

기회의 땅 라오스에서 사업을 펼치고 싶다면, 일단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사정이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은 분석용 보고서처럼 형식이 짜여져 있지 않고, 마치 맘 편하게 배낭 여행을 다녀 온 수필가가 독자의 편의와 감상을 위해 꾸려 놓은 듯, 널찍널찍한 레이아웃에 컬러 사진에 큼직한 활자로 편집되어 있고, 문장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단문체로 끊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라오스에 투자를 준비하는 사업가라면 뭐가 궁금할까?"를 고민한 듯, 실용적 정보로 가득 차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라오스를 그저 사업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와 비슷하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피침의 설움을 겪었고, 오랜 세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서양화한 시간관념이나 합리적 의사 표현 등에 미숙할망정 동양 특유의 인간적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는 라오스인들에 대한 깊은 동정과 공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현지인들의 특성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다면, 그들의 반감이나 비효율적 소통을 초래하여 사업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이 책은 올컬러 편집이고, 라오스의 정치 체제, 고대사, 현대사, 풍습, 문화에 대해 매우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 전개를 취하고 있어서, 두꺼운 분량이 언제 다 읽혔는지 모르게 지나가며, 다 읽고 나면 라오스란 나라에 대해 대강의 개념이 잡히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미국이 닉슨 행정부 당시 왜 라오스를 집중 폭격했는지 의문이 생기곤 했는데, 이 책에선 라오스를 통과하는 소위 호치민 루트가 베트콩 보급선 노릇을 했음이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해서 아직도 불발탄 제거 문제가 큰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군산복합체의 탐욕이 필요 이상의 재고 정리를 위해 이 가난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그토록 많은 폭탄 세례를 받게 했을 것이다." 같은 저자의 통찰도 있는데, 사실 이게 남의 나라 사정만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인(저자와 독자들 모두)이 라오스인과 라오스 역사에 대해 이처럼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겨레가 살아온 내력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이유도 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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