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물리학 - 빅뱅에서 양자 부활까지, 물리학을 만든 250가지 아이디어 한 권으로 보는 교양과학 시리즈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최가영 옮김 / 프리렉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학교 다닐 때 물리 때문에 엄청 고생하셨다구요? 흠. 그럴 만도 하죠. 물리는 수학이란 언어가 아니고서는, 그 기술(記述)이 불가능한 영역이니까 말이죠. 수학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수학 기호만 잔뜩 써 놓은 채 무슨 법칙 어쩌구를, 내가 관심도 없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답시고, 그냥 외우라는 건지, 아니면 이해를 하라고 나름 열심히 풀어 주는 건지, 가뜩이나 싫은 수학에다 다른 공식까지 들이대고 있으니(수학만 해도 외울 공식이 얼마나 많나요), 이건 성질과 손버릇이 모두 나쁜 일진이 얼굴까지 못 생기고 입에서 냄새까지 풍기는 꼴 아닐까요? 물리 공부하다가 수학책 펼치면 그래서 차라리 무거운 짐 들었다 내려놓고 바로 가벼운 짐 진 것처럼 당장은 마음이 편하기까지 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약발은 5분이 채 안 가죠.


 


근데 어떤 학생은, 수학에선 몇 문제를 틀려도, 물리는 한 문항도 오답을 안 내는 친구도 있습니다. 물리 시험만 쳤다 하면, "호구 왔능가?"를 반가워서 외치는 거죠. 그런  애들을 보면, 물리란 과목을 정말로 우리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운동 현상을 설명해 주는 비결, 귀한 정보로 알고, 열심히 이해하며 소중히 여기고 나중에는 감정적으로 밀착하게 됩니다. 이 마지막 단계가 중요해요. 운동 중독 일 중독 되는 분들도 다른 사람 보기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도, 그 사람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대상에 몰입하는 거거든요. 물리를 마지못한 동기(대학 진학을 위해, 점수 따기 위해)가 아니라 감정상으로 애정하게 되면, 그때부턴 확신이 생겨 (따지고 보면 몇 개 되지도 않는- 오히려 그 수가 부족해서 문제죠) 공식들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어떤 경우에 무엇을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단계에서도 소위 "분별의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자발적인 흥미를 갖게 되고 나서부터는 만사가 편한데, 어떻게 그 흥미를 이식(?)하는가가 많은 이들의 경우에 문제가 되죠.

이 책은 좀 특이한 책입니다. 보통 물리를 대중에게 소프트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려는 책은, 1) 퀴즈 형식을 띠거나 2) 수학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말로만 풀어 주려 하거나 3) 역사책의 포맷을 빌려 "물리도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계열적 발전을 이뤄 왔음"을 강조, 두려움이나 막연한 경외감을 없애려 듭니다. 그런 책들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는 하나, 독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1)은 결국 그 문제만을 "상식 Q&A, 교리문답"식으로 알게 될 뿐, 다른 이슈에 대해 적용, 응용이 안 됩니다. 학문은 어떤 경우에도 "팁"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특히 물리는 자연 현상, 물체의 운동, 정지에 대한 "해명"의 동기에서 태동한 학문이므로, 종교 도그마처럼 고정된 형식을 띤다는 게 극심한 자체 모순을 드러내는 거죠. 마치 피겨스케이팅, 백발백중 사격술을 책만 읽고 마스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2)는 그런 시도를 하는 저술가가 아인슈타인과 폴 디랙, 세익스피어를 합친 초능력자라야, 물리의 전 영역에 대해 그런 태도로 일관 서술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파인만 같은 천재도 결국 중도 포기한 것입니다(할 수 있었다 해도, 들인 노력에 비해 결국 성과가 무의미하다 판단). 일반 독자도, 십만 원도 안 내고 구입한 책에 대고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받는 이백만원도 안 되는 월급만으로 사우디 항만 공사 수주를 모레 안으로 따 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장에게 무슨 생각이 들까요.



3)은 결국, 과학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인문 설교"를 하고 마는 부작용을 적지 않게 드러냅니다. 과학의 매력은 결국 그 어느 영역보다 "정치 중립, 가치 중립성"을 띤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트 롬니가 믿는 조셉 스미스의 무덤 위를 운행하는 천체나, 탈레반 광신도들이 장악한 아프간 산악 위에 느닷 떨어지는 운석이나, 뉴턴이 발견한 법칙에 종속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편협한 독자는, 취향대로 골라잡은 인문 설교 책을 읽고 "나는 과학을 마스터했다"는 지극히 의도적이고 속 보이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빼어난 메리트는, 1), 2), 3)이 지녀 왔던 장점, 1), 2), 3)이 빠지기 쉬웠던 단점에 대해 숙려를 거듭하여, 독자에게 거짓말 하지 않고 물리학의 본령적 매력을 전달하며, 동시에 이후 심화 단계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독자 자신의 힘만으로 전진할 수 있는 든든한 지적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쉬운 설명만 해 주는 책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그 책을 읽는 동안에만 느낄 수 있는 불건강한 쾌감이, 막상 다른 영역에 지식을 적용해 보려 들 때 드는 "여전히 안 되는걸?"의 막막함, 좌절을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의 서술은, 초심자들에게 아주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음 심화 단계"로 결국 발을 디디려는 진지한 독자에게, 이 책의 설명은, 영양과 풍미를 고루 갖춘 일류 레스토랑의 프라임 메뉴처럼 황홀감을 안깁니다.



"연대순으로 책을 엮은 이유"에 대해, 저자는 구태여 무슨 해명이 필요할까 싶은데도 서문에서 길게 독자를 향한 겸손한 설명을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의도는 "물리학이 무엇인지, 현대 물리학이 자연에 대해 설명하는 단계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대중에게 밝히는 데에 있습니다. 첨단의 단면을 선명히 노출하려는 노력에서, 다시 그 일부나마 시계열로 재편성하려는 시도는 괜한 혼란을 주거나, 앞에서 말한 3)의 병폐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 되풀이하지만 이 책은 "지금 인류의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를 한 눈에 정리하게 돕는 책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진리의 이해"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지성의 거인과 불세출의 천재들도 얼마나 어이없는 시행착오, 억단을 여태 되풀이했는지, 그런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대가를 치르고 여기까지씩이나 도달했는지, 건조한 부호의 더미를 넘어 역시 인간의 피와 땀이 밴 이정표가 바로 물리학임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아무것도 모르지 않고, 무엇인가 극히 일부나마 우리는 알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은 이렇게 바꿔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신기해하는 게 부메랑인데, 어른들은 다른 이유에서 이를 신기해합니다. "어떻게 해서 저 무지몽매한 야만인들이 이런 도구를 가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값싼 사이비 문화인류학이 도출하여 판매하는 "모두는 평등" 같은 위선적 팻 앤서(pat answer)가 아닙니다. 저자가 구태에 이것에 대해 한 꼭지를 할당해서 책에 끼워 넣은 이유는, 1) 물리학은,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 경이에 대한 만족할 만한 기술적 설명을 내놓기 위한 학문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고(근거 없는 자아류의 도취적 형이상학 설교가 아님), 2) 어떤 발견도 무슨 지적 설계 같은 게 미리 예상, 설계를 마친 데서 나온 소산이 아니라는 것, 다만, 우연이 빚어 준 귀한 만남을 영리한 정신이 놓치지 않고 그 해명을 시도한 결과가 모이고 모인 것, 그 체계가 물리학임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우리가 일만 있으면 이용하는 항공 교통 수단인 비행기도, 그 "하늘을 나는 원리"를 학문적으로 명쾌히 설명하라고 하면 의외로 어렵다고 합니다. 이론이 먼저 생기고 그 결과물로 기계가 생긴 것보다, 일단 필요에 의해 이것저것 시도하며 뭘 만들고 난 후, 알맞은 해명이 그에 뒤따르는 게 더 보편적이란 거죠.

푸리에 분석은 수학의 테마인데 이 물리학 책에 왜 나왔는가. 그래서 2)가 잘못이라는 겁니다. 수학이 없으면 물리는 (전혀 불가능할 건 없겠으나)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막대한 노동과 가망 없는 성과를 요구하는 무의미에 그칩니다.  "분석"은 사실 어느 정도는 오역이며, 수학에선 현상의 수식적 설명을 두고 "해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이 역시 딱 들어서 분명한 의미가 팍 와 닿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오역입니다만 여튼 한국에선 그렇게 쓰죠). anaysis는 오직 물리와 수학에서, 이치와 현상을 정연한 기호쳬계로 일괄 치환해 보겠다는, 데카르트 이래 가장 대담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중 눈부시고도 유용한 결과를 낸 이가 푸리에이며, 그는 수학적 소양도 매우 빼어났던 황제 나폴레옹에 의해 발탁되어 제자리에 쓰일 수 있었던 인재입니다.

미터의 탄생은 하찮은 것 같아도, 측정의 이슈가 어떤 물리학책(학부 교과서 수준 이상의)이건 맨 앞에 설명되는 걸 고려하면, 물리학 인식의 토대이자 시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프랑스를 위시한 세계의 지성들이 미터법을 국제 합의로 제정했을 때만 해도, 이 공통적 프로토콜로 언젠가는 세계의 모든 비의가 해명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는데(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후만 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 서문에 나오는 윌리엄 톰슨의 호언장담을 떠올려 보십시오, 할 일이 없으면 종말을 맞는 겁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어지긴커녕.....), 20세기 초 느닷 등장한 양자역학 혁명 때문에 도로 제자리에 돌아온 걸 생각하면 지독히 짖궂은 아이러니입니다. 측정으로 시작한 물리학책이, "측정은 불가능하다"라는 저주로 끝나니 이런 배드 엔딩이 또 있겠습니까.

해왕성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아마 뉴턴 법칙이 태양계 끝자락에서는 적용이 안 되든가, 혹은 그 자리에 무엇(그게 바로 해왕성)이 놓여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한 말에서, 우리는 뉴턴 법칙이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중차대하고 양가적 위상을 지니는지 알 수 있습니다(저 말 자체는 수사법의 장난 혹은 농담입니다). 무너질 수가 없는 철칙, 그러나 언젠가는 무너졌으면 하는 오만의 장벽, 이것이 지난 절반 밀레니엄 동안, 인간의 입과 손 끝에서 나온 유일하다 할 절대 진리가 가져 온 체계의 위상이었습니다. 푸코의 진자, 갈릴레오의 진자는 들어봤어도 뉴턴의 진자는 처음 듣는다고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일반에게 알기 쉽게 설명할 때도, 가장 편하게 동원되는 예는 "뉴턴의 회전하는 물통"입니다. 뉴턴의 위대한 점은, 오늘날까지도 그를 의심하고 그의 허점을 공격하는 예리한 지성들의 날카로운 공성(攻城)의 순간에도, 동원되는 무기는 바로 그 자신이 창안한 사고의 틀이자 프레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물리학은 양자역학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 이론의 근본 전제는, 지금까지 뉴턴적 지성이 확고부동 유지했던 모든 이론 체계의 정합성을 부정하려 들고, 최소한 그 파생물로서 "진리 탐구는 이러이러해야 하며, 그 최종 목적의 전망은 이러할 것이다"는 공통된 기대, 태도를 허물어뜨려 놓았습니다. "완벽한 동물원에선 특정 종(種)들과 다른 동물군과의 접촉이 일어나지 않으며, 동물원 관리인의 존재조차 모른다." 일관된 질서나 원리의 존재는 우리 인간의 주관을 투사, 반영한 허상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무엇인가 저 먼 배후에 그래도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이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알고 있음이 무엇인가의 존재 증명인지, 아니면 랜덤 파핑의 쳇바퀴, 야바위에 인류가 집단 자가 최면을 건 것인지, 판단은 이 매혹적인 책을 읽고서 우리 개개 독자가 내린다 해도, 설령 무지의 부끄러움을 느낄망정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건 아닐 텝니다. 가장 무지한 독자라도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거짓과 독단을 삼가게 하는 정연성, 진지함이야말로, 친절하고 똑똑한 이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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