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단돈 350만원으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먹은 소녀, 이제 스물 두 살,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감행할 만한 결단임에 분명합니다. 설령 타인의 눈에,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뭔가 실패라든가 볼썽 사나운 면이 있다 해도, 가장 아름다운 젊은 시기에 저지르는 실수이니 어느 정도는 용서가 되지 않겠습니까. 외부로부터의 자극, 아름다운 풍광,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추태, 착하고 때 안 묻은 이들이 베푸는 선의, 터무니없는 악인들의 범죄 시도까지, 모든 영향으로부터 좋은 것만 섭취하고 나쁜 걸 걸러내는 능력이 최고치에 이르는 것도 아마 그 나이에 가능할 것입니다. 나이 들어 신기한 풍물을 보아도, 이미 감성이 찌들어서인지 못난 기성 관념만 재확인하고 끝내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봤습니다. 체험이란 그래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려서 치르어야 합니다.



세계 일주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그 적은 돈으로 여러 군데를 잘도 순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인도에 대한 기행담으로 채워져 있는데, 저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대세 중 하나가 그 너른 아대륙 곳곳을 살피며, 그 특유의 기후나 풍경, 사람들의 습속, 혹은 문화 유산을 속속 즐기다 오는 건데요. 인도란 곳이 말이야 한 마디로 인도일 뿐, 같은 나라라고 보기 힘들 만큼 다양성이 존재, 분포하는 동네입니다. 가중치를 주려면 인도에다 많이 주고 일정을 잡아야 공평(?)하겠지요. 어린 학생답게, 인도인들과의 소통과 교류에서 받은 인상, 효과, 소득이 아주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본 사람은 알지만, 소박하고 꾸밈 없고 문명 세계 일반이 지향하는 바와 아주 다른 양식의 삶을 영위하는 그들이라, 한번 마음이 통하면 많은 기쁨을 나눠 주고 속을 틉니다. 반면, 이슬람 정복자나 영국 제국주의자들(혹은 그 훨씬 이전부터 아리아인의 재앙과도 같았던 침략)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었기에, 어이없는 속임수를 부린다든가 생각지도 못할 한심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치는 일, 여성을 우습게 알고 때로는 만행을 저지르는 등 그들 특유의 풍속이랄까 습성이,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다각도로 남깁니다.



공항 출발시 세 시간 정도 무서워서 막 울었다는 토로가, 솔직히 독자 입장에선 "이런 약한 나를 좀 봐 달라"는 식의 내숭 비슷한 태도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가진 돈이 넉넉지 않아 이런 위험천만(!)한 반(半) 무전여행을 어거지로 시도하는 형편에 대해, 일종의 서러움이랄까 자기 연민의 표현으로도 느껴져 한편으로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 책 처음(그리고 본문 중간중간)에도 나오듯, "도대체 350만원으로 비행기삯이나 치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렇게 최소의 비용만 들인 채로, 영리 숙박 업소를 이용하지 않고 현지인들의 호의에 기대어 무료 홈스테이만을 시도하는 패턴을 "카우치 서핑"이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가 아니고선 거의 시도하기 힘든 여행양식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가? 이 역시 모바일 시대라서 가능한 일입니다만, 프로모션을 알려주는 실시간 정보를, 요즘 같으면 항공사 앱을 깔았다면 바로 받을 수 있죠. 제주도 코스 같은 인기 상품이야 시즌 아니라도 바로 매진되겠지만, 안시내씨의 계획 안에서처럼 비수기 비인기 지역들이 그 타깃이라면 조금 부지런을 떨었을 때  티켓의 연쇄 확보가 일정 맞춰 가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이런 거대(?) 기획을 이루려면 여간 열정과 성의가 들어가지 않겠지요.



혼자 힘으로는 어렵고, 아무래도 경험자의 조언이 있어야 했겠으며, 유명한 저자들, 전문가들에게 일일이 메일도 보내면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이름이 종종 나오는 "대진오빠"는, 카우치 서핑에 일가견이 있는 국내 전문가인(책도 다수 쓴) 김대진씨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런 패턴의 여행에 관심 있는 분들은 그의 블로그 등을 참조해 보십시오.



해맑은 미소는 언제나, 낯선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저자를 지켜 주었다고 합니다. 약한 여성의 몸으로(상투어구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는 정말로 160cm도 안되는 신장에 가냘픈 체구의 여성)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구반대편에서, 견문을 넓히고 사람을 사귀겠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절로 돕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도 인간 사는 세상에, 나쁜 놈들보다는 착한 사람이 더 많다는 증거, 선의를 확인하고 온 거죠. 물론 당찬 마음도 먹어야 합니다. 책 표지 사진을 보면 티없이 맑은 표정으로 현지의 풍미를 감상하는 저자의 모습도 나오지만(이 사진에 반해서 책을 고른 독자도 많을 거에요), 책장을 잘 넘기면 가늘게 뜬 눈에 단호한 표정을 지은 샷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의 어느 세상이건, 호의나 선의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때로는 독기를 품고, 악의의 시도에 대해 표독스런 거부를 표시해야 합니다.

이런 힘든 여행이 어린 몸에 얼마나 고단했겠습니까. 아마도 책을 읽으신 분들은, 버스 안 "독수리 3형제"가 치한을 퇴치해 주는 그 장면이 가장 통쾌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정작 당사자는 버스 안에서 존다고 무슨 위해가 가해지는 줄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생긴 모습과 풍습은 달라도, 사람 사는 이치와 연대의식, 정의감은 공통되는 바 있음을 확인했기에, 이 스토리가 풍부한 여행서의 독해는 읽은 이들에게 정보 이상의 많은 걸 남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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