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신화로 말하다
현경미 글.사진 / 도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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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가 광대할 뿐 아니라 정확한 집계가 곤란할 만큼 많은 인구를 지닌 인도는,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하나의 세계"로 파악하는 게 온당할 것 같습니다. 엄청난 인구와 방대한 국토, 다양한 풍습과 기후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또다른 신흥강대국인 중국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힌두교"라는 엄청난 규모의, 문화, 사상 체계, 우주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12억 인구 중 대다수가 신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나 불교와는 달리, 이 힌두교는 일상과 신교(信敎)가 거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독특한데요. 이래서 다른 거대 종교, 세계 종교와는 달리 "성직"과 "세속"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다른 종교가 "세속화"의 경향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과 달리, 힌두교는 평신도(?)들이 사제 계급(....)의 특별한 독려 없이도 자발적으로 신앙을 생활 속에서 굳혀 가는 사실도 독특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서양인, 나아가 지구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인도인들이 생활하고 사는 방식은 너무도 다릅니다. 그래서 책에서 보는 인도, 학교나 사회 교육기관에서 접한 인도와, 실제로 현지에서 몇 년, 혹은 그 이상 살다 오신 분들이 겪어 보고 전하는 인도는,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더 큰 괴리가 느껴지더군요. 중견 사진작가 현경미 선생님이, 본인의 작품과 경험담, 세계관, 철학을 곁들여 예쁘게 짜 내신 이 책은, 쉽고 피부에 와 닿는 설명으로, 인도란 나라가 대체 어떤 문화와 풍습으로 물들여진 곳인지, 친근하게 술술 풀어 주고 계십니다. 



저자께서는 일단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인도, 힌두이즘 특유의 설화적 세계관에 대해 크게 공명하고 계신 듯합니다. 사실 힌두이즘은 우리 정서와도 아주 동떨어진 체계가 아닙니다. 브라만 교에서 계급 준별 요소를 제외하고 보편성을 강조한 게 불교이며, 불교의 도전으로 교세가 위축된 브라만 신앙이 대중(특히 농민)과 타협하여 새로 토착성을 강화하여 거듭난 게 힌두교입니다. 자연히 세계관과 설화 체계가 불교와 대부분을 공유할 수밖에 없고, 불교를 근 1500년 전부터 수용한 우리 민족이 이런 문화에 마냥 낯설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장 이 책에서 소개된 바로도, "나락"이 지옥을 뜻하는 "나라카"에서 직접 연유한 단어이며, 그 외에도 "아수라장"이니 "야단법석"이니 하는 게 힌두이즘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불교 용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저자께서 힌두교에 대해 지닌 태도는, 애증과 호오가 묘하게 교차하는 복합적 성격인 것 같습니다. 일단 힌두교는, 추상적이지 않고 자연의 이치와 인간 처세의 원리에 대해 직접적인 가르침을 많이 전합니다. 힌두 신화의 토대를 처음 창안한 이가, 생물의 기원과 발생, 혹은 진화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한 덕인지, 비슈누의 첫째 화신(아바타)이 물고기 마츠야, 두번째 화신이 거북 쿠르마라는 건 오늘날 생물학자들이 거의 의견 일치를 이루는 척추동물의 발생 순서와 일치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가 부(富)와 번영을 관장하기에, 아내가 그를 떠나면 당장 할 수 있는 권능이 사라진다는 구조도, "부자 되려면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우리네삶의 이치를 잘 설파한다는 게 저자분의 애교 섞인 해설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악한 두료다나와 아르주나 사이의 대결에서, 마냥 싸움의 규칙을 미생지신격으로 준수하는 게 상수가 아니고, 때로는 상대의 선(先) 위반을 빌미로 반칙도 일삼아야 한다는 크리슈나의 조언은, 인간사의 융통성이랄까 권모술수의 이용을 "인도인에게 환영 받는 방식으로" 권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윤리(혹은 칸트식의 정언 명법)에 회의를 느끼는 평균적 인간 심리에 더 부합하는 면이 있다는 해석입니다.



또한, 저자분이 힌두이즘에서 가장 깊은 공감을 갖는 대목은, "사후 세계"에 대한 자세하고 체계화한 가르침입니다. 사실 이 요소는 특히 우리 한국인에게는 힌두이즘이라기보다 불교적 교훈,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스티븐 호킹의 말을 잠시 인용하며, "아무리 대석학의 말이지만 언제나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며, 70여년만이라도 이 다채로운 빛깔이 삼라만상을 물들이는 물리계에서 육신을 갖고 뛰놀던 정신이, 이제 육신이 쇠했다 해서 영혼까지 사라지는 무(無)로 화할 수가 있겠냐는 취지로, "사후 세계"의 존재를 강하게 긍정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 평균적인 한국인들도, 생전의 업보에 따라 내세에서 보다 나은 존재, 신분으로 거듭나거나, 아니면 그보다 못한 존재로 떨어지거나 하는 연기의 사상에, 거의 태생적으로 친밀감을 느낍니다. 한번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한국인, 나아가 동아시아인들은, 내세를 믿는다 해도 아주 편의적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일단 현세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한 시간이라도 아껴 일하는 게 인생의 최우선 사명입니다. 바쁘게 살다가 혹시 무고한 생명을 죽일까 저어하는 심리란 아예 없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도 강남역 진입 골목길에서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 사체를 보았죠. 고양이가 문제가 아니죠. 바쁘게 달리다 사람까지 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다른 생명을 돌보지 않는 게 죄가 아니라, 한가하게 다른 생명을 돌보다 바쁜 사람 길 가로막는 게 더 큰 죄입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 별로 없을 겁니다.



인도에서는 마구 자란 나무가 도로를 가로막아도(현지 기후 특성상 이런 괴물 같은 나무가 많다고 하십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고 행여 나무가 다치지 않게 배려까지 합니다.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소가 도로를 거닐어도 차가 피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온갖 종류의 새떼들이 아파트 단지를 어지럽게 날며 민폐(일단 이런 걸 인도인들은 민폐라고 생각지를 않죠)를 끼쳐도, "구청"에다 민원 넣어대는 주민은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과 생물을 내 이웃처럼, 아니 내생(來生)의 나나 내 형제, 가족처럼 여기는 게 인도인들입니다. 따님이 한국에 돌아와선, "왜 한국엔 새가 없어?"라고 물었다는데, 사실 도심에 부족한 건 새뿐이 아니죠. 농민 상경 시위 현장이나 동물원 아니고선 어디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게 타 생명체입니다.



이렇게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습성도 많이 가진 게 인도인들입니다. "처음에는 격의 없는 이웃으로 접근, 친해지면 내 것을 가져 가려 들고, 마지막엔 자기들 내키는 대로 하려 드는" 경향, 이것이 수 년 동안 인도에 거주하면서 저자가 느낀 바입니다. 델리 근처인 발달된 도심에서도 사람들 근성이 이런데, 더 외진 곳으로 내려가면 사정이 어떨지는 짐작이 됩니다. 남편이 죽으면 여자를 화장터에 떠밀어, 그냥 순장도 아니고 불에 태워 죽이는 풍습인 사티,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야만적인 폐습이죠. 아이들 기저귀 갈아 입히는 것도 "자기 카스트에선 할 수 없는 일(대변을 만지므로)"이라 해서 유아원 보모가 직무를 방기하는 사태도, 한국에서라면 어느 어머니도 용납 못 할 일입니다. 경제 성장과 고루한 계급 의식은 결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실업(實業)에 종사하는 걸 천시했던 반상 준별의 관념이 지금껏 남아 있었다면 한국이 과연 무역 10대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저자께서는 그래도 하급 카스트 출신이 총리직에까지 오르는 등 발전과 변화가 있다며 인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시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아직 그들은 멀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갠지스(강게스, 혹은 강가)는 단지 자연지형으로서의 강 이상으로, 인도인들에게는 신성한 의미를 지닙니다. 1902년 이 강에서 물을 떠 간 "자이푸르의 마하라자"는 아마도 당시 라자스탄을 (영국의 후견 하에) 다스린 마도 싱 2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특히 암흑 미지의 사후 세계) 모를 여정이라는 관념을 담은 "야트라"의 설명에서, 목적도 없이 재화 취득의 레이스에만 몰두하는 우리네 삶의 덧없음에 대해서도 깊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신화, 2부는 생활, 3부는 저자분의 주거지 말고 자신만의 여행지로 즐겨 방문했던 인도의 명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부가 신화 소개로 짜여진 건, 신화, 혹은 종교 설화를 모르고선 인도인의 생활이나 역사 유적이 갖는 의미가 전혀 이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으로 그 복잡한 인도 신화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최소한으로 알아 둘 필요가 있는 대목만 잘 짚어서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여성 저자의 입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제 군주였으면서도 여성에 대해 폭력적 수단을 쓰려 들지 않고, 인품과 매력으로 이성을 대한 두 황제를 특히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악바르(아크바르) 대제이며, 다른 한 사람은 뭄타즈마할의 부군이자 아크바르의 손자 샤 자한입니다. 타지마할 묘당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경탄하는 저자지만, 그런 완벽한 건조물 구축에 동원된 인력과 자원의 희생이 얼마나 엄청났을지에 대한 차분한 성찰도 잊지 말자고 하시네요. 거대한 대륙에서 현세와 내세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여타 민족이 흉내 못 낼 방식으로 체계화한 그들에 대해, 이 쉽고 재미있는 책, 작가분의 사진 작품까지 가득 실린 예쁜 책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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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미 2015-05-3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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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