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라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시리즈 (원앤원북스)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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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직급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던 시절과는 달리, 오직 능력과 실적에 따라 직원의 가치가 평가되는 기업 문화가 자리잡고부터는, 이전 세대는 알지 못하던 "팀장"이란 새로운 리더가 어느 직장 구조에나 등장해서 부서 소속원들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지지 않고 기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조직이 정체(停滯)와 무기력에 빠지는 건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경직되면서 (어찌 보면)필연적으로 겪는 과정인데, 이병철 창업주가 아직 대권을 쥐고 있던 시기의 말엽의 삼성도 그랬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반발과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조짐을 경계하여, 누구도 예상 못하던 과단성과 단호함을 발휘하여 조직의 둔화와 낙후화를 막았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팀장의 자리란, 한국 기업에 도입된 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으면서도, 개별 기업이 험난한 외부 변수의 도전에 잘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액티한 관리직"이며, 한 직원이 이사나 중역, 나아가 CEO로 성장할 만한 재목이 되는지를 최초 검증할 수 있는 시험장과 같습니다. 연대장, 대대장급 지휘관이 유능하고 기민해야 군대가 강력해질 수 있듯, 팀장들이 강한 회사라야 경쟁사들을 제치고 승승장구하는 장수 우량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도 이런 "최일선 지휘관"의 중요성이 기업주들에게 인식되어서인지, 군에서 장교로 오래 복무한 인재들을 수출기업에서 스카웃해 오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낭만적(?) 아웃소싱이란 상상도 못하며, 직원들 스스로가 알아서 독종 만능 특무대장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본인의 좌천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체 자체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그렇게 사내에서 한번 굳어진 평판은 회복이 어렵고(사회는 한 번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고과 기록이 계속 남기에 이직 전직시에도 (타 기업) 고위급들이 돌려 보는 자료에서 반드시 참고가 되므로 커리어 관리에 지독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요즘은, "성공하는 팀장이 되는 비결"을 다룬 책이 여러 권 나오는 추세이며 저도 이들 중 두어 권 정도를 완독하고 생각을 정리한 적 있습니다. 꼭 대리급들만 이런 책을 읽는 게 아니라,과장 부장 나아가 이사들도 초심을 찾기 위해 back to the basic한다는 의미에서 내용을 반추하는 모습, 많이 보이곤 하죠. 이 책과 다른 책이 확실히 차별화되는 점은, 1) 철저히 현실주의적 백그라운드에서 다소 냉혹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팁을 제공하며, 2) 다른 나라의 실정보다는 우리 한국 기업들의 살벌하고 비정한 상황을 더 많이 반영한 내용이라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우리는 이런 책을 읽을 때 흔한 "힐링"이나 마음의 값싼 위안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므로, 독한 예방약과 따끔한 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하드 멤버십 트레이닝의 일종이라 여기고 책의 내용을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이런 책을 읽고도 "다들 하는 이야기 아냐?"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면, 직장에서 자신의 "임전 태세"가 화석화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한 자기점검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당장은 무감각해지는 게 대증요법일 수 있으나,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유기체는 죽음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팀장은 어떤 권위나 자격에 기반한 직책이 아니라, 실적을 내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라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 가지 목표에만 전심 집중해야 하지, 이런저런 혜택과 부대적 수익에 좌고우면하다가는 자신뿐 아니라 팀 전체를 망칩니다. 이사, 부장도 그러할진대(요즘은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도 파트너 변호사가 일감을 물어 와야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하물며....) 팀장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단기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 목표는 오직 하나입니 다. 하나뿐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다른 일체의 곁가지는 무시하는 게 팀장의 소임입니다. 이 책에서는 따로 말이 없지만(이 책은 팀장의 직분을 논하는 책인데 다른 이야기를 않는 건 당연하죠), 고위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여타의 사정들을 두루  고려하는 능력, 원모심려의 수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팀장은? "미안하지만 그런 거 없다" 입니다. 그런 걱정은 부장 달고 별 단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최근 부상하는 소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2년 전쯤에 필립 코틀러가 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앞으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CSR은 필수 수행 과제 중 하나로 편입해야 한다"'는 게 그 책의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김경준 소장님이 쓰신 이 책은, 그런 입장에 대해 아주 호되게 비판하는 쪽입니다. 심지어 "일부 학자의 왜곡 과장"이라는 표현도 쓰십니다. 혹시 그런 권위자의 주장을 함부로 폄훼한다는 반응을 우려하셨는지(?) 베인앤컴퍼니 CEO의 말도 인용하시면서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과감히 무시하라. 기업은 본래의 목적인 가치 창출 외에 전념하면 그만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김경준 소장님의 책도 여태 여러 권 읽었기 때문에 이런 기조는 사실 뜻밖은 아니지만, 문맥적 추론의 고리들이 어느 지점에서 부딪히는 것과, 이처럼 핵심 주장 사이의 정면 충돌하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입는 충격의 정도가 다르죠. 저는 "여튼 팀장 수준에서는 주제넘게 CSR에 개의할 필요는 없다"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다만 이 책의 해당 챕터는 "투명경영" 자체에도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 책임의 부차화"를 넘어 "반사회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맥락으로까지 오해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팀장의 지식은 "지식인적 지식"이어서는 안 되고, 현장에서 척척 쓸모를 발휘하는 "상인적 지식"이라야 한 다는 게 예전부터 공병호 박사가 주장해 온 바고, 김경준 소장님도 이 책에서(이분의 다른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토픽입니다) 재인용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머리 속에 든 지식이라는 게 전자쪽에 아무래도 더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보니, 습관적으로도 후자 지향을 이루려고 평소에 대단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설프게 상황에 맞지도 않는 인문 잠언을 현장에서 설파하면, 그게 PT 서른 번에 어쩌다 양념으로 한 번 들어갈까 말까아야지, 그 이상이 되면 "아이디어와 감각 부재를 모호한 선문답으로 때운다"며 윗사람들 반응이 매우 안 좋아집니다. 이게 현실이고, 위에서 말한 대로 기업은 "가치 창출"에 본연의 소명을 다하는 게 최우선의 의무일 뿐이지 교육 기관, NGO가 할 일까지 맡을 이유는 없다는 점에서입니다. 자신이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면 일단은 조직이 주는 보수에 대한 반대급부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인문하기(?)"는 회사 나온 후에 해도 됩니다. 일하라고 다니는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딴 걸 하면 안 되죠.

엘리트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을 김 소장님은 냉철히, 직설적으로 찔러 줍니다. 자신이 아무리 유능해도, 팀장으로서의 능력은 자신이 거느린 "팀의 성과"로 평가받을 뿐이 라는 겁니다. "거,... 팀장은 잘하는데 팀이 별로야, 그치?" 라고 말을 건네는 부장님 말에 "그러게요... 흑흑 어케 제 마음 아시군,..."라고 했다간, 부장님 다이어리에서 이름 지워집니다. "부끄럽습니다. 못하는 팀은 곧 못하는 팀장입니다. 두 말 없이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이게 정답이죠. 팀장은 그래서 가장 빠릿빠릿한 일선 세일즈맨일 뿐 아니라, 그런 말단 직원들을 진두지휘해야 할 매니저입니다. 인생의 이처럼 젊은 시기에 너무 어려운 직분이 주어진 것이나 아닐지요. 하지만 경제인으로서 한창 체력도 좋고 센스도 충만할 지금 제 능력을 발휘 못하면 언제 해볼까요? 나이 서른 넘어서 전교1등, 수능수석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게 김 소장님의 말씀입니다. 고집쟁이들은 토론을 하지않고, 어설픈 독단이든 오랜 사고의 열매이든 무조건 제 입장만 고집하는 게 고질병이고, 설사 그가 올바른 생각을 가졌다 한들 다른 팀원(하위직)들이 이를 거부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주장합니다. 원래 머리에 든 것 없는 사람들이 "근거 없이, 이유 불문"으로 동어반복만 하게 마련이지만, 김 소장님은 아마 평소에 그런 사람은 상대해 본 적 없으실 겁니다. 저자 김 소장님이 지적하는 바는, "당신이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 해도, 여튼 팀에서는 타인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소통을 못하면 결국 그런 무식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당신이 맞는 말을 하고 있을진대, 왜 그걸 쉽게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가? 최소한, 틀린 말을 우기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 아닌가? 이 뜻이죠. 소신과 고집을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게 우리 나라입니다. 피드백 사고가 되어 있지 않은 구성원들이야말로 회사에서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평가/인기/평판 중에서, 평판을 좋게 얻는 팀장이 되라고 합니다. 평가는 하위직일 때 개별 업무에서 얼마나 꼼꼼한 일처리를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기는 조직의 건강, 건전성과는 무관하게 (주로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냐 하는 척도입니다. 팀장이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이 두 범주의 중용이자 핵심 교집합이라 할 "평판(reputation)"을 얼마나 좋게 유지하느냐라고 김 소장님은 말합니다. 이런 평판을 잘 관리하려면, "나의 상사가 보는 시선과 관점에 항상 서 볼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역지사지의 태도는 자신과 상황의 객관화이지, 등뼈 없는 아부나 영합과는 크게 다릅니다.

반드시 승진이다 출세다 따위를 염두에 두고 학습해야 할 사항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소임을 다하고 성과를 내는 건, 타산적이고 속물적인 선택이 아니라 "월급을 받는 피용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격입니다. 그뿐 아니죠. 개인보다 큰 단위인 조직을 생각하라, 나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통찰하라, 타인과 소통하며 더 큰 자아를 형성하라,.. 이런 것들은 출세의 방편이 아니라, 수백 년 간 동양에서 군자의 미덕으로 간주되어 온 사항이 아니겠습니까? 인문 실력을 발휘하려면 이처럼 지행일체, 무실역행의 차원에서 찾아야, 인문의 관점에서도 떳떳하고 온당한 선택일 것입니다. 훌륭한 팀장은, 한 인간으로서도 빠질 것 없이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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