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자 1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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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상님께 물려 받은 강토에서 침략자들을 완전히 내몰았다고는 하나 마음의 상처는 씻을 길이 없습니다. 죽은 가족과 잃은 재산은 회복할 길이 없고, 잡혀 간 포로들도 몸값을 주고 찾아와야 한다니 그걸 두고 이긴 전쟁이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뼈대 있는 집안에서 올곧은 가르침을 받고 자란 주인공 "나"는 의분을 가눌 수 없습니다. 복수를 해서 저 무도한 왜국들에게 올바른 인간의 길이 뭔지 깨우쳐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벌은 의기나 선의만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실력이 있고 도구가 완비되어야 합니다. 저들 왜구는 대량의 조총으로 조선 민, 군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먼 서방 땅에서 양귀들이 개발한 것을 들여 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 무기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설욕과 창의(倡義)를 못 할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조정에서 그러나 딱히 의욕하는 바 보이지 않기에, "나"는 개인자격으로도 혈혈단신 서양에 건너 가, 왜구들에게 인류의 도를 깨닫게 해 줄 수단을 강구하고 싶습니다. 독자로서 이 주인공에 대해 거의 무조건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2권 중반에 접어들면서 크게 후회하게 될망정)



그는 마침, 유구의 군주와 관리들이 명(明) 황실로부터 밀조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반도에 침입하여 멀리서나마 중원의 평화를 위협하려 들었던 왜구는 어렵사리 격퇴했으나, 그 허를 틈타 이번에는 오랜 세월 동안 골칫거리였던 야인들이 발호하는 기운이 엿보입니다. 무용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엄청난 화력을 지닌 대포 앞에 일개 기병들이 힘을 쓸 수는 없습니다. "홍이포"란 별칭을 지닌 이 가공할 신무기를 유럽의 양귀들에게서 입수해 오라는 게 대국의 뜻입니다. 좁은 섬나라지만 총관, 수관(이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들은 요량하는 바도 비상하고, 인물이 인물을 알아본다고 "조선 남자"의 국량을 크게 평가하여, 험난하고 먼 해로를 통해 중임을 완수하는 데에 동행시킵니다. 조선 남자는 자신의 평생 숙원을 이룰 유일한 기회다 싶어 그들의 배에 동승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같은 조선인인 "뱃놈(역시 이름은 없습니다)"에게 아주 악질적인 배신을 당하는 곤란을 겪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건, 주인공인 "나"가 결국 이 배신자를 너그럽게 용서하여, 악귀의 소굴과도 같은 유구의 사창가에서 그의 누이를 속량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평소 "조선 남자"를 높이 평가하여 갖은 호의를 베풀던 수관은, 거친 흥정을 통해 어렵사리 챙긴 매매대금 중 큰 몫을 떼어 몸값으로 선뜻 내어놓기까지 합니다. 같은 조선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 유대를 가질 이유가 없으며,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배신행위까지 겪은 "조선남자"로서는 도움은커녕 해코지를 해도 시원찮은 판국인데, 양반으로서, 그리고 공맹의 도를 배우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지닌 엘리트로서, "양반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착한 백성이 화를 입다 보니 저렇게까지 타락한 것"이라 받아들인 그는, 약간의 양식을 주어 두 오누이를 배편으로 고국에 돌아가게 배려합니다. 하지만 "뱃놈"의 누이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몸이 망가진데다. 고향에서 다시 받을 천시와 냉대를 감당할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1권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성인데요. 한편으로는 이미 화란 젤란트에 도착해 있는 "조선 남자"의 사정이 나오고, 다음 장에서는 젤란트에 도착하기까지 온갖 곡절을 겪는 조선남자와 유구 상인들의 사연이 교대로 나오는 식입니다. 젤란트에 여장을 풀고 "무구의 본"을 구하려 드는 그는 여기서 우연히, 화형으로 죽을 위기에 몰린 처녀 로라와 그 동생들의 딱한 사정을 접하게 됩니다. 로라의 죄목은 "이단을 신봉했다"는 건데, 알고 보면 네덜란드에서 수백 년 간 믿어오던 가톨릭 신앙을, 세상이 신교도 천지가 되고 보니 하루아침에 버릴 것을 강요받은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음모와 모략을 통해 재산을 뺏고 정치권력을 재편하려는 쪽의 허울 좋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로라가 거의 발가벗겨진 채 입에다가는 끓는 쇳물이 억지로 부어넣어지고, 형체도 망그러져가는 몸은 십자가에 대못으로 박히고(일본에서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에도 실제 못을 박기까지는 잘 이르지 않았습니다. 매달고 창으로 찌르는 식이었을 뿐) 마지막으로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등 사람의 머리로 상상 가능한 최악의 혹형을 어린 여성에게 가하는 그 장면이.... 인상깊다기보다는 솔직히 트라우마로 남는군요. 아, 멋도 모르고 읽었다가 지금까지 정신적 대미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세번째로 인상에 남는 장면은 루벤스, 아직 자리를 잡기 전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궁정화가로서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려 동분서주하는 젊은 루벤스가 "조선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입니다. 물론 조선남자는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 이해가 없습니다. 조선남자의 인식 수준으로는, 종교로 갈려 피터지게 싸우는 저들 양귀들이, 신부가 이끄는 구교는 "죄인과 더불어 그 모친과 다른 훌륭한 사람까지 같이 믿자는 입장"이고, 목사가 이끄는 신교는 "그저 죄인만 믿자는 입장"일 뿐입니다. 공권력에 의해 죄인으로 판정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를 왜 신봉하는 건지부터가 그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사정입니다. 게다가 신부가 이끄는 무리는, 지난 왜란 때 왜장 소서(고니시)에 조력하여 금수강산을 짓밟은 자들이기도 하니... 그로선 왜 인류를 구원하려든다는 무리들이 조선인들을 못살게 구는 행렬에 동참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선남자를 두고, 화가로서의 야심과 재능으로 똘똘 뭉친 루벤스는, 이처럼 기막힌 분위기를 풍기는 모델로서 도무지 그냥 놓쳐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기술적 도구의 일종인 "좋은 모델"로만 그를 보았던 루벤스는, 나중(2권에 나옵니다)에서야 어떤 기독교의 성인 못지 않게 위대한 품성을 지닌 "조선남자"에게 감복하여, 다른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신앙의 성질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갈려 일종의 동족 상잔을 벌이는 네덜란드인들의 처참한 사정이 나옵니다. 아마도 작가님은 이 배경을 통해 역시 남북으로 분단되어 소모적인 대결을 벌이는 한반도의 정세를 환기하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보-혁 대결 양상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 우리 남한의 자화상을 묘파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목표지의 살벌한 형편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의 위신과 정의의 회복을 위해 "무구의 본"을 찾아 떠나는 "조선 남자"의 모습은, 목적의 달성 뿐 아니라 여행의 험로를 겪음으로써 종전의 자신보다 더 큰 인간이 되려하는, 금양모피(fleece)를 찾아떠나는 그리스 신화의 이아손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아손"의 이름은  "치유하는 자"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과 동족이 입은 정신적 상흔을 달래고, 힘이 자라는 바 세계 만방에 공통의 정의가 있음을 상기시켜, 병든 인간의 혼을 치유하려는 꿈도 있습니다. 유구의 수관에게 "아랫사람은 인의의 도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건네자 수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다 이 취지에 동감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이 작자가 2권에선.....)

유구는 이 소설에서 조선과 같은 편을 먹는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고미는 "조선 남자"의 늠름한 풍채와 인격에 반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하는데.... 결국 2권까지 가서도 이 처연한 여인은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속편이 이어진다면 세월이 흘러 제법 나이가 들었을 이 고미의 후일담이 좀 자세히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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