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경제학 - 불황 10년, 가정부터 지켜라!
김준성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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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 0%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요즘이지만, 대한민국 어디서나 가계의 주름살은 깊어만 갑니다. 이 책에도 나와 있는 말처럼, "저축 안 하면 아이스크림 하나도 못 사 먹는 때"가 언제 우리 곁에 와 닥칠지 모릅니다. 신흥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라도 물가(하락)와 경제성장(호조)이라는 두 가지 과실을 동시에 따 먹을 수 없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는 두 가지 과실을 동시에 맛보기는커녕, 손 안에 쥐고 있던 수확도 동시에 다 빠져나가는 듯한 불길함과 걱정이 앞서는 요즘입니다.

 

특히 중장년층은 땀흘려 일 하면 손에 뭐라도 들어 왔던 과거 호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제 곧 경기가 좋아지면...."의 희망을 웬만해선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써 낙관적 전망(즉 물가 상승이라도 당분간은 주춤할 것)을 앞세운다 해도, 이 "예전 수준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는, 우리가 속한 경제 구조의 속성을 감안할 때, 이제는 접어야 할 시점입니다. 지금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갓 진입하려는 세대라면, 오히려 현실적이라서 자기 눈 높이를 알아서들 낮추더군요. 그러나 그들 역시, 절약과 노후 설계(아직 젊으니 까마득한 남 일이죠)에 대해선 개념이 없고, 이를 가르쳐 줄 세대도 없습니다. 너무 나이가 많은 분들은 그저 안 쓰고 안 먹는 것 말고는 해 줄 이야기가 없고, 그들의 부모 세대는 호황에 익숙한지라 실질적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이 안 쌓여 있으니, 새로 배워야 하는 처지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에서 떠들듯 지나치게 공포에 떨 필요는 없습니다. 간전기와 같은 대공황이 휩쓸어, 모두가 거리에 나앉게 될 위기는 현재로선 도래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풍요롭지 못하다는 것"과 "보릿고개 수준의 기아"는 성질이 다릅니다. 보편적 궁핍(누가 뭘 해도 소용이 없음)과, 그저 상대적 수준에서의 빈곤의 만연은 차원이 다릅니다. 후자는 적절한 내핍, 그리고 지혜로운 생활 습관과 개인적 장기 계획의 도입으로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하고, 남들이 호주머니 사정으로 쩔쩔맬 때, 나만의 영리한 대비책으로 상대적 여유를 즐긴다 함은, 그게 비난 받을 이기적 쾌감은 아닙니다. 이런 이유에서, 머리 쓰고 적절히 슬기를 발휘한 사람이 남들 못 누리는 윤택을 향유하게 된 상황은, 오히려 누구에게나(노력을 했건 안 했건) 혜택이 주어지는 것보다 더 즐겁고(?) 정의로운(!) 구석마저 있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 더욱 팍팍한 살림살이로 보편적 고민을 헤야 할 세상에서, 그런 적절한 노력을 행한 이들에게 응분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전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지혜"가 무엇인지만 검토하고 실천에 옮기면 됩니다.

 

제가 역사책을 읽으면서 아찔해지는 순간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먼 땅에서의 약탈에 성공, 감당할 수도 없는 부를 손에 거머쥐는 그 장면을 접할 때입니다. 직접 정복/약탈을 감행한 자들 중 상당수는 현지의 지배층으로 자리를 굳혀, 오늘날까지도 오랜 계급 갈등의 원인이 되는 자산 소유 계급으로서의 기득권을 고수하려 들고 있습니다. 이들 덕분에 덩달아 부자가 된 스페인 본토의 많은 이들은, 그러나 이 보난자가 처음부터 없었던 만 못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17세기가 끝나기 전, 이미 스페인은 유럽에서 형편이 가장 어려운 나라의 대열에 슬그머니 끼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의 부국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까지 떨어지고 말았을까요? 그들은 1) 손에 들어온 돈의 덩치를 굴리는 법을 몰랐고(이것만으로도 위험한데), 특유의 감정적 기질로 화끈한 삶만 추구하다 보니 들어오는 수입에 무관하게, 2) 최상의 벌이가 되던 수준에만 맞춰 써 대고 써 대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1)과 2)의 위험을 함께 피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은, 성장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 아직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드물고, 사실 깊이 들어가다 보면 돈 버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며, 아니 그 자체가 돈 버는 방법의 일종입니다. 2)는 노인분들처럼 무조건 내핍을 시도하는 식으로는, 젊은 세대나 중년 어느 쪽도 실천하기 어렵고, 혹여 그런다 해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입니다. 1)을 모면하는 지식은 원래부터 귀한 지식이고, 2)에 대해서는....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전혀 모르다시피한 지식입니다.

 

흔해빠진 금융상품 투자만도 그렇습니다. 부동산 뿐 아니라 주식도, 그저 사 두기만 하면 무한정 가격이 올라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현 시점에서 대장주라 꼽히는 블루칩-예전에는 그저 사 놓고 방구들에 묻어두라고만 했습니다-도 사정이 예측 불허입니다. 포스코나 삼전도 단기 위험 전망을 논해야 하는 시절이 올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요. 많은 분들은 그저 호시절만 기억에 담고 있다 보니, 요즘 도무지 증권회사에 돈을 맡길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공부해 가면서, 혹은 합리적인 증권맨의 조언을 들어가면서, 숨어 있는 노다지를 찾아 나설 땝니다. 이 노다지는 과거처럼 폭풍 수익을 안겨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햄스터 눈물보다 알량한 제도권 보장 금리와 비교할 수 없으며, 그 투자가 안기는 적정 위험을 감안하면 산타클로스의 선물과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적정 위험"의 개념을 모르는데, 수익이 낮아 보여도 위험이 그에 상응할 만큼 높지 않다면, 합리적 의사 결정자는 이런 선택안을 "대박"으로 간주합니다. "오, 이거 좋은데?" "난 모르겠는걸, 더 생각해 보고." 유리한 투자안을 (카너먼 식으로 표현하면) "패스트 씽킹"으로 바로 알아 보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승자로 남을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부터, 위험과 수익 사이의 운명적 상충 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도 풍요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아직도 "왜 아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줘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있는 집 자식들은 안 가르쳐 줘도 알아서 구두쇠짓이 몸에 배어 있고, 오히려 없는 집 애들이 돈 더 잘 쓰고 다닙니다. 장기계획이란 정말 노후 대비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절약(이라기보다 합리적 소비)를 당장 지금부터 몸에 익힌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가장 달콤한 행복을 맛 봐야 할 신혼에, 인생의 장기 계획을 잡으라는 조언은 다소 별나게 들릴 수 있습니다만, "가계"야말로 계획과 구체적 행동의 주체가 될 새로운 단위입니다. 지금까지 개인 단위로 경제 계획을 꾸린 사람은, 이제 배우자와 함께 좀 다른 계획을 새로 짜야 합니다. 만약 배우자가 계획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면, 나는 그 배우자에게 "앞으로 우리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계획 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둘 다 자기만의 플랜을 잡고 살아왔다면, 같이 통합, 수정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둘만의 행복을 더해 줄 것입니다. 결국 경졔계획은, 물질 뿐 아니라 사랑의 노하우이기도 한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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