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제 대한민국 스토리DNA 6
백시종 지음 / 새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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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여 년 전, 실존 재벌의 비사, 흑막을 가득 담은 폭로 소설이라고 해서 큰 이슈가 되고,  일반 독자들이 서점에서 구해 볼 수 없게 회수 조치가 취해지는 등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소설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한참 후 제가 대학에 진학하고선 중앙도서관에서 찾아 보려고 했으나, 거의 언제나 대출 중이라서 손에 넣기가 어려웠었는데요. 아마 이 책은 그동안 대학 도서관 아니면 열람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국회도서관, 국립 중앙도서관 등에서의 이용은 더욱 기회가 희박하죠). 서점에 깔리자마자 알 수 없는 압력에 의해 자취를 감춘 책을, 일반 지역도서관이 소장할 기회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까요. 25년 전이라면, 지금처럼 자치구마다 여러 도서관이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을 테며, 하물며 당시 기준으로 "준 불온도서"에 가까웠던 이 책을 비치했을 여지는 더욱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전설 비슷하게만 전해져 오던 작품을, 이제 새움출판사에서 "대한민국 스토리 DNA" 시리즈의 일환으로 복간해 낸 덕에, 당시 나이가 어렸던 독자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순간, 마음은 상당히 착잡해 오더군요. 어느 나라나 자본주의 체제가 그 토양에 안착할 무렵엔, 소위 "총질, 칼질"을 통해 자원과 부, 토지를 뺏고 다니던 자본가들 중 최종의 승자들이 크게 한몫챙기고,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의 토대 위에서 그 흉한 과거는 전혀 모른다는 듯, 세련되고 평화로운 새 방식이 발전하기 마련이란 점, 학교에서 배운 우리들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그 근접한 과거에, 이처럼 수치스럽고 죄악으로 가득찬 "자본의 축적사"가, 개발 독재라는 당시의 체제적 특성에 걸맞게, 압축적이고 농밀하게 자리하고 있었을 줄은 아마 많은 분들, 심지어 그 시대를 산 분들도 잘 모르고 있었을 텝니다. 미국에서는 업톤 싱클레어의 <정글>, 마크 트웨인의 <The Gilded Age> 같은 것이 이런 사회성 짙은 고발 문학의 모범으로 꼽힙니다만, 우리 한국에선 이 백시종 선생의 작품이 그에 비견될 만한 위상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고, 글로벌 경제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다고 해야 할 거대 재벌의 치부를 들추었으니, 문학 내외적 가치를 따져도 그들에 못 미칠 바 별로 없습니다.

 

이 소설은 요즘 베스트셀러들과는 스타일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고발 문학이라고 하면 간결하고 꾸밈 없는 문체에, 사건과 대화 위주의 빠른 전개로 일관할 것 같지만, 작품에는 의외로 작가의 깊은 사색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문체도 고풍스런 어휘가 자주 사용되며, 문장의 평균 길이도 제법 긴 편입니다(예컨대 우리 시대 가장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메이커라 할 김진명 작가의 문장들과 대조해 본다면 그 차이가 상당하죠). 그런가 하면 이 시절 문인들의 작품에서 종종 보이는 해학적 특징으로, 질펀한 음담(淫談)을 슬슬 돌려서 전하는 그 유머에도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 예라면 pp.76~77을 참조하십시오. 저는 한 번 보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어 두 번을 읽어야 했습니다. 짖궂은 패설투는 차치하고라도, 백시종 선생은 여기서 캐릭터(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캐릭터라고만 하겠습니다)의 깊은 심리를 정확히 포착해 내는 놀라운 저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장애인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배려를 받는 건 전혀 달가워하지 않듯, 이 왕득구 회장도 자신을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라고 가식적인 존경과 아첨이 퍼부어지는 걸 내켜하지 않는 편인데, 자신을 진심으로 (잠자리에서) 섬긴 나머지, "특정 생리 현상이 정상치의 정도를 훨씬 넘어서 발생하는" 그 여인에게 각별한 총애를 주었다.. 고 하는 대목은, 표현의 절묘함도 절묘함이지만, 결국 대통령도 안 부러운 권세를 자랑하는 최고 재벌을 일개 장애인의 처지나 마찬가지라고 비꼬는 셈 아니겠습니까. 대놓고 "너 병X"이라고 원색적인 욕을 퍼붓는 것보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우회하여 꾸민 수사(修辭)적 공격이, 당사자에게는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실제로 여기 나오는 왕득구 회장은, 정규 교육을 길게 받지 못한 열등감이 있어서인지, 애써 문인들과 교제를 하려 들고(그런 그들에게 "진짜 천생문인"이라 할 노동자 김능길 은 신랄한 비난을 쏟아내고, 작가의 페르소나라 할 권도혁 차장은 이를 무마하느라 진땀을 뻬죠), 틈만 나면 "기업가 아니었으면 문인이 되었을 것"이라며 이상한 자기 과시에 여념이 없습니다. 머리가 비상한 왕 회장으로서는 시구(詩句) 몇 개쯤 즉석에서 외우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지적 열등감을 평생 떨치지 못하고 살았던 그로서는 일종의 남근 우월주의를 동시에 관철하는 수단으로, 대한민국 최고 여류 문인의 작품 몇 소절을 줄줄 암기하며 "작업"을 걸기도 합니다. 이런 걸 보면, 과도한 색욕과 상처받은 자아의 자구 치료 노력은 언제나 함께 가는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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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득구 회장이 그토록 병적인 여성 편력을 보였다는 것, 아홉 아들의 어머니가 다 다르다는 사실, 첩실을 두지 않는 대신 그 비운의 여성들에게 아이를 다 뺏어 왔다는 충격적 진상, 이 사실을 술이 취한 채 명광그룹 중역 부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실수로 다 털어놓고 만 회장부인 오 여사.... 일반 독자로서는 정말 갈수록 산이라는 격으로 당혹감과 경악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게 과연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현실에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단 건지요. 왕 회장은 자기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어느 아들을,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쳐, 반 불구자, 정신이상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 아들 역시 어느 여인(전직 영어 교사라고 합니다)에게서 낳아 뺏어 온 아이입니다. 그 생모도 아이를 뺏긴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 아이가 그꼴이 되었으니 제정신으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두 모자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 아니 감금되는 신세로 떨어집니다.

 

이런 지극히 파행적인 개인사 외에도, 이 소설 후반부는 노조 탄압에 얽힌 긴 사연이 들어가 있습니다. 노동자, 노조를 "뇌동자. 뇌조"로 발음하는 왕 회장, 별로 발음이 어눌하거나 부정확한 편이 아닌데도 유독 이 단어들에서는 변형된 발성을 하고야 마는 그는, 노조 지도자(정확하게는 노조 조직 준비위원장) 한광필을 납치하여, 불량배들을 시켜 그의 목숨을 앗으려 들기까지 합니다. 이 사건은 아마 1988년경에 실제로 있었던 서정의씨 납치 사건을 염두에 두시고 픽션화하신 듯합니다. 현대 직원들마저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송두리째 버리게 했다고 표현되는 이 에피소드는, 확실히 지금 읽어도 충격적인 테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뒤로 가면, 위에 언급한 노동자 문인 김능길이, 울산 현지에서 큰 규모로 노조를 조직하려 들던 양재봉으로 오인되어, 온몸을 회칼로 난자당한 채 죽음에 이르는 끔찍한 사건도 묘사됩니다. 이 일은 최평국이라는 이름을 지닌, 미국 출신 경제학 교수라는 배경을 가진 어느 "해결사"에 의해 주도된 걸로 나옵니다. 이 역시 완전 픽션은 아니고, 당시 현대그룹에서 "구사대"를 이끌었던 인사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소설에서는 "미국식 이름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나오지만, 그가 세인의 주목을 받은 건 OOO라는 미국식 이름 때문이기도 했죠.

 

마지막에는 어느 구로공단 여직원이, 출처가 불분명한 거금을 고향의 아버지에게 송금하여, 씀씀이가 갑자기 커진 그를 질시한 동네 주민이 경찰서에 "간첩"이라고 신고하는 바람에 일이 커지는 촌극이 소개됩니다. 이 여직원은 예쁘장한 생김새 때문에 왕득구의  눈에 바로 들어, 그날부로 회장을 모시게 되는 걸로 이야기는 꾸려지는데요.... 일반 범죄 사건도 아니고 대공 사건이니, 경찰도 수사를 마무리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위에서 문초를 당할 것인데.... 결국 명광 측은 거액이 든 봉투를 돌려 이들을 구워삶습니다. 이뿐 아니라, 노조 관련 각종 잡음과 추문이 일어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의 입을 막고 유리한 기사를 작성하게 하려는 명광의 책동은 참으로 집요합니다. 안되면 육탄으로라도 막으라는 특유의 기조는 과연 어디애서 나온 걸까요? 한국 천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인, 창업주 왕득구의 신조 외에 다른 출처는 없습니다.

 

소설은 다소 급하게 마무리됩니다. "이전 각하" 시절 잘나가던 어느 장군이, 신군부로 권력 주체가 바뀌고 나서 출세의 가망이 줄어들자 예편한 후, 이 명광에 영입되지만... 강직한 군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판단으로)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왕득구와 도저히 호흡을 맞출 수 없어서 그만 두고 나오게 됩니다. 이 소설은 권도혁이 과연 어떻게 회사에서 진퇴를 결정했는지는 분명하게 적고 있지 않으나, 이 "최 장군"의 선명한 처신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이 당시의 암울하고 처참하기까지 한 모순의 실상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재벌 기업은 지금 사실상 대한민국을 할거 점령하는 사실상의 공동 소유권자들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로 인한 각종 "갑질"의 횡포와 폐단이 오늘도 여러 중년 가장과 그 식솔들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에, 재벌의 비위(非違)를 고발하는 작품을 쓴다는 건 요즘 같은 깨인 세상에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보다 펜을 선택"했다는 이 소설이 늦게나마 세상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건, 우리 동시대인들에게 큰 행운이라는 점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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