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스캔들 - 은밀하고 달콤 살벌한 집의 역사
루시 워슬리 지음, 박수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집"은 우리 존재의 은밀하고 아늑하고 자랑스러우며 소름끼치게 하는 기억과 자아의 외-내면을 모두 담은 곳입니다. 집은 "나" 뿐 아니라 나와 가장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가까운 타인들(가족이라는 이름의)과 감정, 추억을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집은 사적(私的)인 흔적일 뿐 아니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나 이상의 거대한 자아(공동체, 민족 등)가 내게 소통을 꾀한 사적(史的) 자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은, 그 거주한 개인의 내력을 들출 수 있는 유력한 증거집합일 뿐 아니라, 역사를 추적하는 최초 출발점으로 쓸모있게 기능하는 좌표입니다.

이 책은 그런 "집"의 생활사, 발전사를 재미있게 요약, 혹은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또, 이 "집"이 살아온 궤적과, 문명사(대체로 동시대인이 공감하는 스토리의)이 서로 교차한 지점을 훑음으로써, 세계사 전체에 대한 회고와 조망을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내가 사는 "집"이 어떠어떠한 경로로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추게 되었으며, 거대한 역사가 결국 나라는 작은 존재에 미치고 간 영향을, "집"이라는 공적(公的)이면서 가장 개인적인 공간을 프레임 삼아 추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읽기에 쉬우면서도 그 담고 있는 깊이란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을 자랑합니다. 프랑스어권 저자들에 의해서는 이런 시도가 종종 행해졌으나, 대개 지나친 형이상학, 주관적 요설로 빠졌다는 게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이 책은 영국 학자답게, 현학적이지 않고 실용적, 일상적 용어로 "당신들의 집, 나의 집"과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집"이라는 미시사와, 정치적 이벤트, 경제적 격변을 두루 포괄할 거시사, 그리고 평범한 독자의 심리까지 넉넉히, 오밀조밀히 꿰고 있어야 이런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양인들이 흔히 타 문명권에 대해 갖는 오만과 우월감의 근거가, 청결한 신체 유지를 위해 개인 목욕 시설을 집에 일찍부터 들여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만 해도, 현대식 주택에 샤워 시설, 터브가 갖춰진 역사가 극히 짧고, 별도의 설비를 따로 애써 구축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닭장집에 불과한" 저소득층 거주의 상징이라 해야 할 아파트가 기이하게도 대중의 선망이 되었다는 게 이를 반증합니다. 그러나 최근 서양인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여러 대중서들에서 일부를 접할 수 있었듯, 거리를 지나가는 이들이 오물에 의복이 더럽혀지지 않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게 바로 저들의 생활사이며,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그토록 많은 전염병이 창궐했던 게(그뿐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인구가 희생되었는지요), 저들 스스로 부끄러이 고백하고 있는 지난 역사입니다. 이 책은 "목욕의 몰락"이라는 제목 하에 이 역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목욕, 아니 샤워라고 해도, 구석구석 씻는 버릇을 들이는 게 세련된 사회인, 부지런한 경제인임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식입니다. 그들이 구어에서 흔히 쓰는 말로 "귀 뒤까지 싹싹 씻는" 같은 말이 이를 잘 드러내죠. 그러나 각종 애널에서 드러나는 진상의 기록들은, 지난 역사에서 그들이 얼마나 더럽게 일상을 영위했는지 잘 폭로하고 있습니다. 너무 깨끗하게 씻는 습관(이라고 해 봐야 우리가 현재 평균적으로 시도하는 정도)은 터부시되었고, 심지어 종교적 우려를 부를 정도였습니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이 목욕은 대체로 공공 장소에서 이뤄졌는데, 옷을 벗는다는 그 과정에 불순하게 얽힌 채 매매춘의 편한 집결지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목욕하러 간다는 말은 곧 "추잡하고 떳떳지 못한 재미 좀 보러 간다"는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아마 미시사보다는 본격 역사(부당한 표현입니다만)에만 관심이 있음을 자부(근거 없는 허영입니다만)하는 독자들도, 이 책의 12장 "왕과의 동침"에 대해서는 끓어오르는 흥미를 감출 수 없을 것 같네요. 역사서를 읽다 보면 자주도 접하는 게, 해산하는 왕비의 모습을 "증인"으로 지켜 보기 위해 그 개인적 공간에 버젓이 입실해 있는 늙은 중신들의 모습입니다. 요즘처럼 DNA 검사를 자유롭게 행할 수 없던 시절, 누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사항과 권위는, 유력한 이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이 토픽은 2장 "출생"에서도 다른 각도로 조명됩니다). 왕과 왕후의 침실에, 그런 드문 이벤트가 아니라도 드나들 수 있는 위치는, 바로 그 사람의 권력과 위상을 드러내는 최우선 표징이었습니다. 그 점유자의 가장 가식없고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침실, 그것이 최고 권력자의 소유일 때 역사는 어떤 방법으로 거칠거나 유약한 면모를 우리 현대에게 속삭이거나 목청 높여 폭로하고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럽게 읽어낸 부분이었습니다.

성(性)에 대한 탐구는 제법 여러 군데에서 이뤄지는데, 7장은 아예 제목부터가 "성"입니다. 9장은 (성의) 비정상적 패턴과 자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3장은 (꼭 성적인 것에 한하지 않고 예컨대 수유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지나) 유방, 가슴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과 평가이며, 4장은 우리의 치부 중 가장 은밀한 곳을 감싸는 "속바지" 이야기입니다. 24장은 "월경"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집 자체"와 무슨 상관인가 의문을 가지는 분들은 직접 읽어 보고 판단하십시오. 에두아르트 푹스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접한 저인데도, 이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남다른 덕인지 정말 재미있고 "신선하게" 읽혔습니다. 아마도 "성"을 정면에서 다루기보다, 짐승이 아닌 이상 오픈된 공간에서 성을 향유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진 건조물, 그 중에서도 "나의 배타적 공간"이라 확신할 수 있는 경우에만 성욕의 해소를 시도하는 우리 인간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저자의 안목이 탁월했다는 바로 그 이유가 작용해서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은 꼭 무슨 욕구를 푸는 공간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활력의 재충전을 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 안에서, 어떤 "자세"를 반드시 취하며 지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 "꼿꼿한 자세"와 "편안한 자세"를 별개의 장으로 설정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거실의 역사>라는 상위 단위로 묶여서 제시됩니다. 이어지는 부분은 <부엌의 역사>인데, 익히 예상할 수 있듯 요리 과정과 그  뒤처리에 대한 갖가지 상상할 수 있는 상황과 촌극이 거의 다 다뤄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위 "먹방"을 보며 "음식 포르노"라는 극단적 평가를 하기도 하던데, "食"과 "性"이 결코 동일 시간에 양립할 수는 없지만(그런 분이 있을까요?), 동일 공간에서 병존하는 건 거의 당연한 사리라는 점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예전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닙니다. 집은 화석이 아니라, 현재상과 현실태에 대한 생생한 연속체이므로, 이 책은 당연히 20세기의 여러 생활사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부터가 집을 의식(意識)의 확장으로 삼는 묘한 버릇이 있으므로, 집을 모르고 인간을 알 수 없고, 인간을 알면 반드시 그 집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것 아닐까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 그리고 "나"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동화를 들려 주듯 가르쳐 준 이 책은, 1회독 후에도 한동안은 제 책상에서 곁에 머물 것 같습니다. 그림과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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