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용"이라는 단어는 경제학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학술용어, jargon이라는 게, 언어를 일상의 용법대로 성실히 구사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언제나 혼란을 끼치곤 합니다만, 경제학에서 특별히 고안해 쓴 이후로 다른 영역에까지 널리 퍼진 "기회 비용"이라는 말은, 뻔한 현상의 이면에 가려진 무서운 진실, 혹은 거대한 비위를 제법 요긴한 쓸모로, 보이는 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아 왔던 우리 눈 앞에 들추어 내는 고마운 노릇을 해 왔습니다.



저는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비용"이란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1) 말 그대로, 전(前) 이명박 정부에서 헛되이 낭비된 엄청난 비용을 의미, 2) 이명박 정부가 그런 탕진, 혹은 착복 횡령(여기까지는 아직 짙은 혐의가 주어지는 단계일 뿐, 물증이나 확정 진단은 국정 조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하겠습니다)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그 대신 우리 국가와 대중이 입었을 수도 있었던 갖가지 복리와 혜택이라고 말이죠. 전자는 구체적, 실물적 손해요, 후자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실, 그 대신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유산(流産)된 희망을 뜻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손해를 입었을 때, 돈으로 측량 산정이 가능한 손해가 안기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고는 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로서, 저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마치 이게 그저 꿈이었으면, 악몽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고 소극적으로, 무기력하게 바랄 뿐입니다. 진위 여부는(이미 전망이 상당히 어둡습니다만) 그저 국정 조사에서, 명쾌하게, 그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헛된 쪽으로나마) 희망적인 결과를 안겨 주길 기대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각종 구체적인 자료와 수치, 연구 해석을 볼 때, 별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만.



책의 1부 대제목은 <탕진>이라고 달려 있습니다. "탕진"도 물론 그 자체로 비난 받아야 마땅할, 공무원(지위 고하를 막론하고)의 비위이며, 형법상 직무유기죄를 구성할 수 있는 범죄사실/요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구체적인 착복이나 횡령의 사실, 단정까지 내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는 사실 검찰 수사, 그리고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확단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다만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너무도 양적으로 방대하고 그 내용이 확연한 자료 앞에, 어느 누구도 한 가지 방향의 심증 말고는 떠올리기가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반대당사자가 앞으로 내어놓으리라 기대되는 해명도 들어는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자원외교, 4대강, 기업비리, 원전비리, 그리고 한식세계화사업 등 다섯 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붙은 김윤옥 여사 주도의 한식세계화사업을 다룬 대목은, 책에서의 비중이나 사건 자체의 중대성 면에서 다른 네 아젠다에 비해 좀 처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관심도로 놓고 볼 땐, 이 다섯 파트 중에서도 (사대강 부분과 함께) 단연 시선을 끌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또한, 가장 소박하고 대중친화적인 동기와 양상으로 발단,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실망도 유발하겠고요.


자원외교의 경우, 이미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장 주석 시절부터 일찌감치 그 중요성에 눈을 뜨고, 특히 아프리카(나중에는 중남미)를 중심으로 전개해 왔습니다. 우리 나라 같은 협소한 영토에 빈한한 자원만을 보유한 나라는 그 시론조차 전개되지 않고 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비로소 초점이 부각되기 시작했죠. 이 대통령보다 먼저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은 거물 이상득 의원이, 책까지 써 가며 홍보한 자원외교에 대해서도, 저는 2009년 당시 그 저서 구입까지 생각해 가며,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구나."하는 자괴감까지 느껴 가며, 관심을 가졌더랬습니다. 물론 제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여러 고급 정보가, (마치 이 책 같은 매체에서 이제서야 알려 주는 내용과 비슷하게) 그 반대되는 내막 비슷한 걸 알려 주기도 했기에, 행동에 신중을 기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특히 저는, 두 가지가 인상에 남았습니다. 덩치 큰(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생각보다 넓은 영토를 보유한 나라더군요) 볼리비아를 다스리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덩치를 지닌 볼리비아 대통령이, 이상득 씨와 나눈 그 찐한 악수와 공동 회견이 끝난 후 1년여, 바로 리튬 광산 국유화를 단행하는 그 모습. 아마 지금도, 그 대통령은 이 씨와 인간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는 하고 있을까요? 민주화 여정 때문에 아련하고 막연하나마 동질감 유대감 비슷한 걸 갖고 있는 5천만 지구 반대편 국민들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상의 벽을 쌓고도 말입니다. 책에 실린 사진은, 보면 볼수록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다른 하나는, 제발 TV나 신문에서 설레발 좀 치지 않았으면 하는 주문입니다. 이건 이명박 정부 때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 예전 전두환 정부 당시 마두라 유전 개발 건도 그렇고,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노무현 정부 초기 국가보안법 폐지 이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설익은 정책을 홍보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지극히 올바르다 싶은 대의명분이 깃든 과제를 추진할 때도, 방송이나 신문이 여론몰이의 도구로 악용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루어지지도 않은 일을, 대중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경제활동이나 일상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습니까? 그로 인한 신뢰의 배반, 구체적 손해는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4대강에 대해서는 그간 수해 상습 침수 지역이 많은 혜택을 보았다는 반론도 있고, 특정 지역은 (제가 직접 다녀 봐서도 압니다만) 교통 노선이 말끔히 정리되어 도시 순회에 소요되던 시간이 엄청 단축된 순작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새로운 팩트까지 추가되어, 신중론에 선 이들의 입지조차 용색하게 축소하는 주장을 펴고 있더군요. 홍수 방재 효과에 대해선, 4대강 사업 완료 후 실제로 발생한 국가, 지자체 작성 통계에 의한 손해액이, 이전보다 몇 배는 늘어났다는 팩트 제시 앞에, 다른 옹호나 변명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홍수라도 해결이 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도 못하다는 결과니 이 얼마나 아연할 일입니까?

다만 이 책의 기술 중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 부분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의 "대단히 예외적인" 피해액을 기준으로, 사업 타당성을 부풀리고자 수치를 과다 계상했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태풍은 우선 직전 5년에 집중적으로 몰려오다가, 당기 5년에 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5년, 그 다음 5년에는 또다시 무서운 강도로 한반도를 스쳐 간 후 끔찍한 피해를 안길 수 있는 재앙입니다. 이런 재앙은 10년, 아니 30년 주기로 찾아온다고 해도, 또 국민 중 소수가 입는 피해라 해도 상시적 변수로 간주하고, 국가적 차원의 위기 대비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본문 중 "빈대 잡으려고 초가 삼간" 태운다는 말은, 물론 "초가 삼간"에 비중이 놓여 있기는 하나 자칫 태풍피해를 "빈대" 정도로 본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왜 MB 정부가 비판을 받습니까? 국민의 이익과 복리를 경시해서가 아닙니까? 하물며 그를 비판하는 논리 안에서, 행여 표현 하나의 사소한 구절이라도, 자신이 지금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반대편의 악덕에 기승하는 결과를 행여 낳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업비리.... 이 책에는 세 기업이 나오는데, 완전 사기업인 롯데와, 아직 공기업인 양 착시를 부르는 KT, 그리고 포스코(주제는, 포스코가 아닌 포스코 그룹이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가 나옵니다. 롯데는 사실 특혜 논란이, 이 정부 뿐 아니라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안 불거진 적이 없습니다. MB 정부를 비호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롯데를 까는 취지입니다. 롯데는 업종이 업종이다 보니, 부동산 요지 확보, 토지 용도 변경, 그리고 각종 사업 인허가 취득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보면 로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까다로운 곡예를, 일생을 두고 벌여 온 신 회장의 수완에 대해서는, 공포와 감탄을 동시에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특히, "보수 정권에서 사기업의 이익을, 안보에 우선했다"는 지적은, 지지난 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찍은 많은 이들이 대단히 아프게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술과 출간이 시차가 좀 나다 보니, 최근 불거진 씽크홀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결을 짓는 논의가 좀 부족합니다만, 뭐 이 정도로도 경악을 안기는 데에는 충분하죠.



KT에 대한 논의도, 그저 중립적 입장에서 봐도 다 타당한 지적입니다. 다만 이석채 사장의 자격 문제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한국에서 몇 손 안에 꼽은 최고 수준의 정통분야 전문가라는 점에서,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외이사는 사실 핵심이해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양반이 KT에서 이해상반행위를 벌일 위험은 거의 0입니다. 오히려 융통성없는 법규정이 문제였다고 봐야 할 텐데... 문제는, 부임이 아니라 부임 이후 이분이 벌인 각종 행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야심차게 추진한 야구단 창단도, 해당 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자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정치적 제스처일 수도 있고). 저는 이 책이, 취임시점보다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 더 많은 비중을 두었어야 하지 않았나 봅니다. 현재 이분에 대해서는 공법상의 절차가 진행 중이므로, 귀추는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포스코가 그 우량기업이던 과거를 뒤로 하고 소위 "투자 주저 등급"으로까지 추락한 건, 정 회장 재임 당시의 결과이므로 사실 옹호가 힘듭니다, 누구라도요. 그런데 정준양씨는 낙하산은 아니고, 포스코에 거의 평생을 몸담아 온 정통 기업인입니다. 그 점은 오해가 없어야 하겠구요. 또, 아무래도 프레시안에 연재되던 시점과 지금이 차이 나니 벌어지는 문제인데, 현 회장은 정준양씨가 아니라 작년에 권회장이 새로 취임을 했습니다. 호칭은 그래서 "정 전 회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파이시티는 제가 양재역 터미널 부근을 자주 지나다 보니 이게 아주 개인적으로 밀접한 이슈이기도 한데, 이 대목은 읽을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파오는군요.



2부는 "실정'입니다. 이 파트는 주로 유종일 교수님, 그리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같은 (별 주제와 관련 없을 것도 같은) 거물급 전직 관료 등 전문가들이 나와 밀도 있는 대담을 나눕니다. 1부가 팩트의 제시라면, 2부는 비판과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최고 수준의 패널들이 나와서 벌이는 토의이니만치, 어느 입장에서도 경청할 만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책이 왜 완독 후 뿌듯함을 주냐 하면, 정치적 화젯거리 말고도 읽는 이이에게 "공부가 되는 과제"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입니다. 주제는 MB의 패착에 대한 비판이지만, 부수적으로 한국이 처한 상황과 각종경제지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