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 외교를 통해 본 김대중 대통령
김하중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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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대통령의 개방 의지는 확고했다. 한민족은 독창성을 가진 문화 민족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 문화권에 있으면서도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중국 문화를 우리 문화로 재창조했다고 하면서, 일본에 (대중) 문화를 개방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니 문화를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 p122: 5


민주 투사로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 그 행적이나 이미지는 우리들에게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대통령 재임 시절 대외관계에서 어느 정도나 두드러진 행적을 남긴 분인지는 깊은 인상이 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객관적 성과가 얼마나 남아 있느냐와는 관계 없이, 우리 인식 용량에 한계가 있어서일 뿐이어서일 때가 많죠. 역대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외교 분야에서 가시적인 족적을 남기려고 애를 썼고, 때로는 무리수를 둬 가며 (그저 기록에 남기는 과시를 위해) 실속 없는 프로젝트 발주를 남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의 정치적 지형이 급변하던 무렵이었으며, 특히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움직임을 갓 드러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싸고 일-미-남북 사이의 미묘한 갈등이 수면위로 처음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어땠을까요? 누구나 다 기억하시듯, 직전 정부에서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혼란을 빚은 대실책을 저지른 탓에,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인(당시 표현으로 "당선자") 시절부터, 나쁘게 말해서 "구제자금을 구걸하러" 해외를 순방해야 했습니다. 동행 기자들이나 해외 교민들도 이 표현("구걸")을 그대로 사용하며, "국운의 형세에 비통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심회를 토로하던 기억이 나네요. 정치적 스탠스의 차이를 떠나, 누가 국가 존망의 위기를 불렀고 누가 이를 수습했는지는 국민 모두가 뇌리에 깊이 새겨야 할 일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튼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시기부터, 식물인간화한 현직 대통령을 제껴 두고 국가 살림, 대외 관계 수습의 총책임자로 등장했지만, 그의 여정은 등등한 위세나 화려한 빛깔로 채워지기보다는, 고달프고 처량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가치와는 무관하게, 준(準) 망국인의 신세란 그래서 참담한 것입니다. 위기가 극복이 되고 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는 듯 또 과거의 행태로 복귀하는 모습은, 그래서 개탄과 우려를 부릅니다.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이 당선자 시절에 대해선 아주 심도 있는 회고가 자주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저자 김하중 전 장관이, 이 시기 동안에는 지근거리에서 보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하중의 회고록"인 이 책에서 직접 언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겠죠,. 그러나 저자분이 의전비서관으로 취임한 시기가 충분히 이르기 때문에 "국난 극복의 과정"에 대해서도 개략적 회고 사항을 이 책에 다루고는 있습니다.

저자가 의전비서관으로 재직하던 무렵, 김대중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청와대 면담 신청은 의전비서실을 통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 책에 나와 있지는 않으나, 종래 이런  일에 대해서는 별도의 "직행" 비선 라인이 있거나, 부속실, 정무수석실 등 비정상적 통로로 수상쩍은 접촉이 시도되기 일쑤였습니다. 김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국가 공무의 상궤를 바른 모습으로 북귀시켰을 뿐 아니라, (범위를 좀 좁혀서 보자면) 바로 이 책의 집필자가 이런 두꺼운 회고록을 집필할 수 있었던(다시 말해, 김 대통령의 중요 행보를 측근에서 지켜 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해외를 방문하면, 그 국가의 교민들이 "열렬한" 환영을 위해 거리에 대거 도열해 있고, 국기를 흔드면서 과장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흔히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이 행사가 끝나면, 교민들은 인근 호텔로 초청되어, 비싼 비용을 치르고 마련된 리셉션에서 소위 "환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이런 "관행"에 대해 전면 재고할 것을 지시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환영을 구태여 "동원 과정"을 거쳐 (현지인들에게 볼썽사납게) 치를 것이 무엇이며, 더군다나 국고 지출을 감내하며 호화 만찬장을 차리는 게 무슨 긴절한 필요가 있겠느냐는 취지에서였습니다. 게다가 해당 시기가 국난 극복의 지난한 시련을 치르는 동안이었으니, 재외국민들에게건 외국인들에게건 뭔가 모범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게 대통령의 취지였습니다. 어떠신진요. 이런 일화는 마치 중국 고전 역사서에나 나올 법한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요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보이지 않으십니까. 큰 인물의 족적에는 이런 가슴 울컥하는 공통의 에센스가 반드시 포함되기 마련입니다.

김하중 씨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은 의전비서관 시절/외교안보수석보좌관 시절로 나뉘어집니다. 전자와 후자는 각각 이 책의 1부/2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가 한국 현대사에서 워낙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굵직굵직한 사건과 (겉으로 보이지 않는) 중차대한 외교사(外交事) 역시 많이 처리되어야 했던 시기였는지라, 1부, 2부 가릴 것 없이 독자에게는 엄청난 비중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혁명 1세대들 중 마지막 최고실력자였던 덩샤오핑 사후, 차세대 중국을 영도한 최초의 인물이었던 장쩌민 주석과 같은 시기에 인접국의 국가 원수로 재임하였습니다. 장 주석은 특히 김 대통령에게 인간적으로 큰 호감과 존경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책에도 흥미로운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장 주석은 1990년대 후반 일본 와세다 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학생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대해 땀을 뻘뻘 흘리며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장면을 노출하여, 현장에 있던 이들과 TV 생중계로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시청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노련하고 유능한 테크노크라트였지만, 세련되고 국제 감각 넘치는 지도자의 풍모와는 거리가 있지 않았느냐는 게 제 생각인데요. 김 대통령은 이분과 함께한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다 실수한 그에게 "한 옥타브만 낮춰서 부르시면 어떤가"라고 제의하여, 정말 자신의 지시대로 음을 낮춰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다시 살리고선 김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장 주석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김 대통령은, 자신도 노래 한 소절을 약간 매끄럽지 못한 솜씨로 부르고는, "노래 실력은 내가 장 주석에 못 미치는 것 같다"는 멘트로 끝까지 장 주석을 추어주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장 주석 같은 대국의 지도자보다 몇 수는 위였다는 느낌입니다.

정권 후기로 갈수록 김대중 정부에선 시련도 많이 겪게 되었는데, 이는 대외적으로 조지 W 부시가 취임하고 미국 외교 정첵이 보수화, 강경 드라이브 선회 움직임이 뚜렷해지는 외부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무장관 콜린 파월을 눈짓으로, 대담장(정상 회담 장소)에서 급히 나가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파월이 이에 따랐다는 일화를 소개하는데요, 파월은 당시 정부(즉 부시 대통령이나 체니 부통령, 무엇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성향이 달랐고, 몇 년 후 급작스러운 사임으로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에피소드는 실로 의미심장합니다. 외국 책에서도 잘 다루지 않았던 팩트인데, 외교사에 관심 많은 분들은 꼭 한번 챙겨 읽어 볼 만한 부분입니다. 볼륨이 두껍지만 폰트가 크기 때문에 완독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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