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스쿨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한창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고등생명체인 인간에게 특히 중요한 활동은 휴식이고, 그 중에서도 수면은 활력의 회복에 있어 중추적이라 할 만한 비중을 지닌 프로세스입니다. 저는 예전, 김대중 대통령이 야인으로 지내던 시절, 수사기관에 연행되기 전 그를 끌어가려고 온 수사관들에게 단 한 가지를 부탁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탁인데 단 15분만 자게 해 주시오."

수사관들은 차마 거부할 수 없었고, 그는 양해를 얻은 후 잠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거짓말처럼 15분 후 정확히 깬 후 수사관들과 동행했는데, 더 놀라운 건 불과 15분 동안 수면을 취하고 일어난 그의 얼굴이, 다른 사람처럼 달라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15분간의 수면만으로 저처럼 원기가 회복될 수 있을까?" 비슷한 경우로, 전(前)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씨 역시, 바쁜 스케줄 때문에 항공 여행이 일상이 되다시피한 터라,  기내에서의 수면이 에너지 충전을 위해 필수적이었다며 여러 매체를 통해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왜 어떤 사람은 그토록 단잠을 잘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잠을 못 자서 그처럼이나 고생을 하는가?"에 대해, 체계적이고 풍성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수면제의 적절한 처방을 받기만 하면 무리 없이 수면을 이룰 수 있는 이가 따로 있고, 수면제가 잘 듣지 않거나, 건강에 큰 지장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잠을 못 이루는 원인과 해결책이 천차만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잠을 잘 자려면 이러이러한 방법을 쓰면 된다"는 안이한 팁, 요령은, 대개 효과도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잠이 안 와 고생한 게 아주 오래 전 일일 뿐입니다. 한 2년 정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제법 속을 썩였는데, 그때마다 의존한 건 대학원 과정 실해석학 교과서를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머리를 한창 혹사하고 나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잠이 쏟아지더군요. 요즘은 "머리만 대었다 하면 자는" 스타일로 바뀌어서, 가벼운 소설책을 읽다가도 곯아떨어지기가 예사입니다. 물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 숙면이 가능한 쪽이겠죠. 잠이 안 와서 다음날 스케줄을 걱정해야 할 때의 그 초조함이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이 책은, 수면 부족이라든가, 질(quality)가 떨어지는 수면이, 얼마나 당사자의  활동과 (심지어는) 운명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경고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잠을 잘 못 자는 처지라 해도, 그저 "스트레스 과다나 컨디션 저하, 슬럼프" 정도로 가볍게 넘어갈 뿐, "존재의 위기"까지를 떠올리고 경각을 갖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는, "어제 자지 못한 잠은, 오늘 당신의 직장과 명성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려버릴 수 있고, 내일 당신이 가진 모두와 다른 사람의 이익까지 무(無)의 상태로 돌려 놓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잠은 이미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단정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잠이 안 오거나 할 때, 인터넷에서 간편한 요령을 검색하는 게 보통이고, 위험 부담이란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그 지침(?)들을 쉽사리도 행동에 옮깁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이치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근본적 효과가 나올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왜인가. 당신이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면, 그에는 당신 고유의, 생활 습관이든 타고난 체질이든 인생에서 겪은 어떤 체험의 기억이든, 무언가 강한 연결 고리를 지닌 원인이 있기 때문이죠. 이 책은 제법 두꺼운 볼륨 안에서, "잠을 못 자게 되는, 체계적이고 심리학적이며 심지어 인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나 애로에 봉착했을 때에는, 그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다방면에서의 접근을 해 봐야 합니다. 저는 이전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을 읽고 큰 각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기력"이란 얼마나 모호하고 막연한 "병명"이겠습니까. 보통 누군가가 무기력의 고통을 호소하면, 그 사람은 "한가한 소릴 한다"며 주변으로부터 면박이나 듣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제목의 그 책은, 무기력이 얼마나 치명적인 질환이며, 만만치 않은 이 늪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한지,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위험을 두고 과잉대응하는 것도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될 불길한 재앙을 두고 그 위험의 중차대함을 간과한 채 "패기"만으로 맞서는 것 역시 피해야만 합니다.




이 책의 분류에 따르면 저는 "슈퍼 슬리퍼"인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잠 때문에 다음날 제 일정에 지장을 받은 적이 최근에는 없었으니, 이 책을 읽어 내었을 필요나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잠이 안 와서 그렇게 고생하시는 이들보다, 오히려 저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케이스였습니다. 암환자라고 해서 여태 인생을 암과 투병만 하며 살아온 게 아닙니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그도 평생 암이란 녀석과 인연이 없을 줄로만 낙관해 왔을 것입니다. 암에 비길 건 아니라고 하나, 불면증도 언제 어디서 (현재 슈퍼 슬리퍼인) 당신을 엄습하여, 결코 만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재앙을 당신 코 앞에 들이댈지야 누가 알겠습니까? 이 책의 존재가치는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불면은 선명한 원인을 지니고 있는 병이니, 당신의 경우에 맞는 처방을 찾아 바로 치료하라!" 하물며 저 같은 경우, 오래 전이라고는 하나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으니 "병력"도 보유한 셈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보시다시피 <나이트 스쿨>입니다. 왜 "스쿨"이 붙냐면, 첫째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불면"에 대한 종합적, 망라적인 설명과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다음으로는 이 책의 형식이, 마치 학생들에게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나, 문센에서 주부님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명강사처럼, 경어체의 자상한 말투를 쓰고 있기 떼문입니다. 당신은 올빼미형입니까, 아니면 종달새형입니까? 책은 독자, 아니 청중에게 이 두 유형의 분류를 제시하고, 스스로 범주 진단을 한 다음 각각 그에 알맞은 상세한 솔류션을, 제법 두꺼운 책 안에 담아 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또한 "꿈"의 기능과 본질에 대해서도, 참신하면서도 현실 설명력 높은 탐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건강 이슈에 한정된 게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해명 영역에 대해 한 발 들여 놓는 대담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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