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민심서 - 상
황인경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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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다산 탄생 250주년이 된다는 건 이 책 뒤표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아마도, 성리학 그 지구 최후의, 그리고 유일한 보루로 조선 반도를 지키고 있을 무렵, 그 땅에서 용감하게, 그리고 외로이, 그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땅에서 굶주리고 수탈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대안(代案)의 사상을 궁구한 분입니다.

공자는 일찍이 학문의 바른 길을 올곧이 걷는 이들을 두고 실학(實學)에 몸담는다며 규정한 바 있었지만, 주희가 유학을 하나의 도그마로 만든 이래 현실과 유리된 무익한 논의만 일삼는 풍조를 결과적으로 조장한 후, 조선의 성리학은 허학(虛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산은 명문가의 소생이고, 금상(今上)의 총애를 받았으며, 용모도 준수했고, 타고난 재능도 출중했기에, 당대 사대부들이 선택한 표준적인 경로만 밟았어도 입신과 출세에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편한 길, 넓은 문을 마다하고 구태여 가시밭길 걷기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다산의 대(代)에 이르러 그 총명한 자질을 높이 산 정조대왕이 젊은 그를 아끼고 요직에 등용했기에 벼슬길에의 전망이 비로소 트이기는 했으나, 소속 당파가 남인이었기에 여전히 주위의 견제와 압박이 심했습니다. 정조 같은 걸출한 임금이 등장하여 실질적 탕평책을 펼쳤지만, 노론의 굳건한 인맥이 곳곳에 심어 둔 인의 장막을 걷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던 셈이죠.

 

남인 진영의 젊은 인재들이 하필 당시에 쉬이 경도되었던 흐름이 천주학, 즉 가톨릭이었습니다. 괴력난신을 논하는 걸 금기로 삼았던 유학과는 달리, 서양의 이 신선한 종교는 태초에 어떤 원인이 작용하여 만물이 생성(창조)되었고, 그 창조주의 모습을 따라 빚어지고 입김에 의해 영혼을 갖게 된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평등한 존재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이벽과 그의 부친이 벌이는 짧은 논쟁처럼, 존재와 이치의 근원을 논하는 서양 종교의 가르침과, "영원 따위가 어디 있냐"면서 눈 앞에 보이는 인륜과 질서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전통의 입장이 서로 맞서고 있었습니다. 다산의 형 정약전은 동생과 거의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한 인재였는데, 이 천주학에 대해 동생보다 더 경도된 입장이었습니다.

 

능력은 떨어지지만 출세욕, 과시욕은 그 누구에 못지 않게 발달한 이들이 많죠. 간신히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성적이 낮고 업무에 미숙하며 글재주가 부족하다 보니, 각별히 영명했던 임금의 눈에 들 길이 없어 절치부심하던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기경 같은 이는 처음에 다산의 좋은 벗이었으나, 그의 끝없는 총기와 기억력, 바른 마음, 심지어 번듯한 용모 등의 장점에 깊은 열등감을 느낀 나머지 홍낙안 같은 간교하고 사악한 무리의 모략에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이처럼, 노론과 남인의 대립이라는 익히 알려진 프레임을 통해 다산의 고초를 분석하지만은 않고,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에 언제나 있기 마련인 뭇 인간들 사이의 시기, 질투, 모략, 중상 등을 잘 묘파하고 있습니다.

 

작가분은 이 시대 양반층에 대해 자주 처분되었던 "유배형"에 관하여, "요즘 식으로는 집행유예에 해당한다 할, 편의를 좇은 조치"라고 평가합니다. 천주학이 분명 체제 윤리와 원칙에 반하니 여론(양반 지배층의)에 따라 처벌은 해야겠고, 살펴 보니 아까운 인재인데 신체형(곤장 등)을 내리기는 망설여질(이 책에도 자주 나오지만, 장형은 대부분 상처가 악화되어 목숨을 잃는 지경까지 이르릅니다. 사실상 유예된 사형 집행이나 마찬가지였죠) 때 이런 선택이 쥐해졌습니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면 (이 시대로부터) 삼백 년 전의 상황처럼, 도적이 들끓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도 박만덕이라는 자가 등장하여, 탐관오리 김양직에 대한 성토를 늘어놓고, 당시 정조에게 암행어사직을 부여받아 지방 행정 감찰에 나섰던 다산은 이 불학무식한 악민(惡民)의 사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남다른 귀골과 태도에서 배어나는 배짱에 이미 이 젊은 선비가 이인(異人)임을 눈치챈 만덕, 그리고 그 졸개들과 다산이 서로 소통하는 장면도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재미입니다.

 

빼어난 학자, 관리가 다른 이들이 채 보지 못하는 바를 보고, 태연히 자행되는 기만과 비위를 있는 그대로 그르다고 지적하면, 이를 역으로 타매하여 구린 속을 감추고 도명하려는 악당들이 흔히 있기 마련입니다. 학문이 부족한 자는 열등감 때문에, 부정을 저지른 자는 추급 , 사정에의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고 옳은 이를 도리어 매도하게 마련입니다. 다산은 이로 인해, 벼슬길에 머물 때보다 더 많은 기간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유배지에서도 저술 작업에 몰두하고, 평민과 토착민 사이에서 능력 빼어난 이를 뽑아 제자로 기르는 등, 가장 어려운 시절에도 애민과 애국에 실천으로 나선 인물이었습니다. 민족의 스승으로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다산의 생애에 대해, 재미있는 소설 형식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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