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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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과목이 절대 평가로 전환된다든지 하는 조치로, 앞으로 학생들은 입시 지옥으로부터는 점진적인 해방을 맞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사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입사 전형에서도 대학 간판을 잘 보지 않는 추세라, 이 책에도 나오는 표현처럼 과연 명문대 졸업장이 당사자에게 과연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과거에는 고3 시절 열심히 공부하다 좋은 대학 진학 후엔 (특별한 일 없으면) 무난히 졸업해서 좋은 직장 얻는 게 정해진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평생 직장 신화가 무너지고 나서는, 중간 간부직 이상으로 승진한 후에도 공부 안 하면 하루도 못 버티는 형편이 되었죠. 오죽하면 삼전에 근무하는 이들이, 라이벌 모 전자 직원들을 두고 "너희들이 여기 오면 얼마나 버틸 것 같냐?"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아주 어색하지만은 않은 반응을 얻습니다. 그 모 전자 역시, 입사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곳입니까.

 

입시를 앞둔 아이들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접한 후 이른 시간 안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업은, 이제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 모두의 미션이 되어버린 현실입니다. 일단 현장에서 바로 써먹어야 하기 때문에, 신속히 습득하는 것도 문제이고, 이 습득한 지식으로부터 2차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의 머리 속에 진득히 장착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가면 갈수록, 그저 무난한 직장인 정도로 사는 것조차 힘들어지는가, 그건 (역시 이 책에도 나와 있듯) 지금 세상이 유난히 지식 폭발, 신기술 이노베이션이 인류 역사상 초유의 모드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앞 세대들은 이런 곤란을 겪은 적이 없고, 은퇴한 지금은 노동 능력이 부족하니 기득권에 집착하고, 요즘 세대들은 일은 일대로 힘들고 손에 떨어지는 건 더 빈약하니 세대 간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죠. 그렇다고 개인 차원에서 당장 구조를 뒤집을 힘은 없으니, 현 직장이 요구하는 바 과업을 충실히 해 내는 게 그나마 최선의 선택입니다.

 

사회의 실정이 이러니, 아이들에게 현실을 들려 주면 "이 지옥을 통과해도 더한 지옥이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깊은 절망에 시달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실 도피, 왜곡이 정답일 수는 어느 경우에도 없는 법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결국 평생 공부하는 길만이 생존의 비결이라면,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죠. 흔히 하는 말로, 물고기를 먹이지 말고 그 잡는 비결을 가르쳐 주라고 합니다만, 거액의 유산- 그 형태에 따라 시세의 변동, 혹은 경솔한 판단으로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을 물려 주는 것보다, 배운 후 평생 재활용, 변형 응용이 가능한 지식을 아이의 머리에 깊이 심어 주는 게 더 고마운 부모의 은혜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충격을 선사하는 내용을 가득 담고 있더군요. 저는 제 나름대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자님의 그 유명한 학이(學而)편 서구(序句)처럼,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만한 공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말이죠, 지금 이 책에 따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더군요. 그것 참....

 

먼저, 무작정 기계적으로 행하는 복습은 아주아주 해롭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입니다(이 책은 단일 저자가 쓴 게 아니라, 학습 방법론과 심리학에 정통한 여러 학자들의 콜라보, 그리고 실증적 실험과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사실은 본인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보기만 보다 보니, "모르는 걸, 혹은 깊은 이해도 이뤄지지 않은 걸, 안다고 착각"하고서는, 약점을 보충하거나 깊은 내용으로 파고들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지적은 정말 너무도너무도 타당한 사항입니다. 제가 현재 실무에서 자주는 아니라도 종종 겪는  일이거든요. "아니 그게 그런 뜻이었어?" 마치... 뭐랄까요. 와이프의 고마움을 모르고 그녀의 진가를 평가하지 못한 채(와이프 좋은 일 시키는 게 아니라, 내 아내가 이런 사람이었어?를 먼저 알고 그녀를 즐겁게 해 주면 그건 나에게 좋은 일이라고 상무님이 그러시더군요 ㅎㅎ) 맨날 보는 여자라면서 심드렁하게 대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습관의 반복은 권태기로 이어지고, 뜻하지 않게 "위기의 부부"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죠.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즉 메타적 재귀적 비판 없이, 반복적으로 그저 보다 보니 내가 아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겠다 착각하는 건, 누적이 되어 치명적인 업무 실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건, 처음에 좀 고생이 되더라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을 확실히 짚어 가며, "이 모호한 설명은 진짜 의미가 뭘까?", "이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라며 물어가고 검색하고 여러 권의 책을 찾아 보는 노력이, 그 지식을 진짜 머리 속에 오래 남게 하는 비법이더라는 겁니다. 이건 제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분입니다. 엉터리로 의대 공부 마친 놈팡이가 평생 돌팔이 노릇하는 것이나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런 의미에서, "배우고 (기계적으로) 때때로 익히"는 건, 만약 그 "습(習)"의 의미가 종래 피상적으로 이해한 바의 확인에 불과하다면, 아주 치명적으로 해로운 방식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러면, 그 구절의 앞부분, 즉, "배우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니, 무엇이어야 할까요?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자기 주도 학습법"입니다. 누구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 나가는 방법이야말로, 이상적인 공부 패턴이요 자립형 인격의 완성이기까지 한 의의를 지니고 있겠죠! 누가 감히 동의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위에 제가 스스로 찾아 나가는 학습법의 미덕을 적어 두기도 했습니다. 아닌게아니라요) 이 책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도 문제가 크다는 말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기 주도 학습의 크나큰 맹점은, 말 그대로 자기가 주도하다 보니, 크로스 체크, 혹은 메타적 시선에서 자기 반성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 틀린 게 있어도 자기 확신에 빠져(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틀린 줄을 모르고 그대로 프로세스를 진행해 나간다는 거죠. 이게 예를 들면, 단어 뜻을 잘못 알고 있거나, 수학 문제를 잘못된 방법으로 접근해 나가도, 내가 본래 잘하는 사람이니 내 방식이 맞겠거니 하고 고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 방법이 안 통하는 문제에 처음 직면하고서야 큰 낭패, 회복 불가능한 실패를 겪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타이거 우즈 같은 천재형 스포츠 선수도, 우수한 코치를 언제나 곁에 두는 팩트를 지적합니다. 우수한 인재일수록, 매너리즘에 빠져 어느 순간 잘못 들어선 경로를 수정하지 않기 때문에, 곁에서 쓴소리를 하는 멘토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역사의 예를 들면 당 태종 이세민 같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은 머리도 좋았고, 무예도 뛰어났으며, 전술 전략의 판단도 아주 명쾌하고 신속하게 내리는, 한마디로 사기 캐릭터였습니다. 위징은 반면 자신의 정적이었던 형의 최측근 모사였고, 형의 세력이 완전 파멸한 후에도 (이미 최고 실력자가 된)자신 앞에서 죽을 각오로 할 말은 하는 위인이었죠. 그러나 이세민은, 메타형 자기 체크를 언제나 곁에 두고행해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뚜렷한 자각이 있었기에, 위징을 죽이지 않고, 아니 죽이기는커녕 지근거리에 중신으로 대접하며 그의 쓴소리, 멘토링을 경청했습니다.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더 코칭이 필요하다는 건 이를 두고 이름입니다.

 

저자들은 그런 주장을 합니다. "요즘은 뛰어난 학습자일수록, 그리고 머리에 더 정돈된 지식과 판단 체계가 구축된 사람일수록, 자기 교정 작업에 능숙하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일이 안 풀리고 성과를 못 내는 사람일수록,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비뚤어진 보상 심리로 오히려 자기주장의 고수에 더 맹목적으로 집착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본업에 몰입하기보다, 도피 심리에서 거대 담론에만 빠져들기 쉽기도 하고요. 일이 안 풀릴 때, 귀인(歸因)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나의 학습 방법이 잘못된 바가 없었는지 먼저 반성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참으로 유용한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읽고, 공부가 잘 안 되는 아이에게 마음을 터놓은 대화를 시도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이런 방법론을 주제로 하고, 기존의 통념을 다 뒤집고 실무에까지 도움을 주는 책을 극히 드물게 보았기에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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