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기계 시대 -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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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신하고 획기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접근 방식이냐면, 책이 주제로 삼고 있는 대단히 심각한 이슈에 대해서입니다. 그 이슈가 무엇이냐면, 바로 최근에 심화되어 모두의 이마에 깊은 주름을 남기고 있는 "불평등"입니다.


"불평등"이란 체제의 근본 모순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이의 심각성과 원인, 나름의 처방에 대해 저명한 학자, 전문가들은 한마디씩 하려 듭니다. 그런 저자들 중에서서는 최근 전지구적으로 단연 큰 화제가 된 토마 피케티가 있었지요. 그가 기존 경제학이 발전시켜 온 tool만을 활용하여, 다른 누가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던 기발한 논증으로 이 분야 담론의 신기원을 이뤘다면, 브린욜프슨, 맥아피(기업용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창업주와는 무관합니다) 등의 공저자들은, 문명사관, 혹은 과학사가(史家)의 입장에서 해답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

경제사 공부할 때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산업 혁명 당시 기계와 공장제 시스템이 급속히 확산되자, 길드에 소속된 장인이나 독립 숙련공들은 자신 또는 자신의 가문이 배타적으로 보유하던 일자리가 축소되거나, 이를 상실했습니다. "루드 장군이 배후에서 이를 지휘하신다"는 가공의 믿음 하에, 이들은 공장주가 보유하던 기계와 설비를 파괴하는 대규모의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근현대 들어서 제도적으로 보장 받고 있는 노동자 파업과는 다른, 생존권의 보장과 경제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양상이었는데요.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생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극복이라는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저자들은 오늘날의 불평등 심화 현상과 긴밀한 역사적 연계를 찾습니다. 저 시기에도 시스템은, 일찍이 존재한 적 없던 이노베이션을 통해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을 겪습니다. 생산성이 혁명적으로 개선되었다 함은, 분배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사회 전체의 복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여기서 분배의 문제라면, 세습적 특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결국은 공동체 보편의 잉여 증가로 필연적 귀결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생산성 증가 자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최초 혁신자 - 극소수이겠지요-의 손에 쥐어진 엄청난 규모의 부(富)가, 언제쯤에나 보편적 풍요를 달성할, 아니 체감할 만큼, 빠른 순환이 이뤄지느냐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닙니다. 최초 혁신자-다시 강조하지만 극소수입니다- 가 결과적으로 빼앗아 간 숱한 일자리, 이 때문에 당장 생계를 위협받기까지 하며 한계 상황에 내몰리거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될 평범한 노동자들은, 뚜렷이 감소한 share가 가져다 주는 궁핍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급작스러운 불평등의 심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특이점적 혁신(레이 커즈와일의 규정입니다)을 맞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박에서 기인한 희비극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산업 혁명 당시, 경이적인 생산성의 증가는 보편 대중의 편익과 풍요에 분명 유의미하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광공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나, (앞서 언급한) 숙련공들의 몰락은, 당사자들이 어디서도 보상 받을 수 없는 시대적 비극이었습니다. 최근 물꼬 터지듯 각 산업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의 대열을, 두 손 들고 환영할 수만은 없는 게 이런 딜레마에 기인합니다.

이 책 전반부는 우리 조상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놀라운 규모와 파장의 기술적 혁신에 대해, 전문가들의 눈썰미를 발휘하여 예리하게도 하나하나 짚어 가고 있습니다. 1960년대 무어의 법칙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모바일 혁명까지, 발전과 발견 그리고 그 모두를 뛰어넘는 혁신은, 과거 쿠즈네츠가 지적했듯 최장주기를 지닌 간헐적 이벤트가 아니라, 이제 대세와 추세가 되어 버린 일상 환경, 상수적 팩터의 위상입니다. 이제 눈만 뜨고 일어나면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새로운 진보가 어엿한 현실이 되어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진보가 왜 모두에게 희소식이 되지 못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면, 전통적 방식으로 그 분야 생산에 참여하던 이들은(노동자이든 화이트컬러이든 무관하게) 종래의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평생 직장의 신화가 무너지고 40대의 나이에 직장에서 몰려 목 좋은 치킨집 개업을 알아 봐야 하는 건, 그나마 요식배달업에서는 최초 부가가치 창출 단계에서 혁신이 더디므로,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한 무한 경쟁이라는 요소(이게 더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외에는 아직은 기술적 위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운(?) 기술 진보와 혁신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저자들의 인상적인 인용을 다시 적어 보자면, "인류의 최대 약점은 지수함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수함수는


이런 모양인데요. 생략한 더 오른쪽의 형태는 거의 수직 상승이라 할 만큼 경사가 가파릅니다. 저 역시 인류의 약점을 그대로 공유한지라, 무의식 중에 저렇게 상대적으로 평탄한 부분만 그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느릿느릿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지금까지의 추세를 모두 무시하겠다는 듯 급격히 상승하는 이런 패턴을, 선형적 사고에만 길든 우리들은 이해 못한다는 뜻입니다. 100을 2로, 10000를 4로 치환하는 로그의 도입이 수학자 네이피어에 의해 이뤄지고 나서야, 우리는 지수적으로(exponentially) 증가하는 추세의 공포와 위력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이 누구보다 앞서 지적했지만, 우리는 지금 이 같은 혁신의 폭포, 위험하기끼지 한 이노베이션의 홍수 속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커즈와일이 문명사관적 혁신의 기술적 측면에 주목했다면, 이 저자들은 그로부터 파생되는 필연적인 불평등 추세에 대해 날카롭게 짚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두 가지 효용을 가집니다. 1)우리가 직면하게 될 기술 진보가 어떤 추세적 패턴을 지니고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예견 2)이 불평등의 암울한 물결은 과연 언제 진정되기나 할지의 추측. 저자들은 다양한 논의와 논거들을 분명하고 유용한 프레임에 맞춰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현명한 독자는 그로부터 자신에 필요한 통찰을 알뜰하게 챙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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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4-12-2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