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 박정희 vs 마오쩌둥 - 한국 중국 독재 정치의 역사
박형기 지음 / 알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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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얼핏 들어 참 섬뜩한 말입니다. 제아무리 도덕과 윤리, 사상과 철학적 배경을 강조해도, 정치 투쟁은 결국 어느 쪽이 더 강한 무력과 배짱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뜻이죠. 이 말을 한 마오는 다음과 같은 "명언"도 남겼다고 합니다.

 

"혁명은 디너 파티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가부장적이고 대단히 억압적으로 아이들을 다뤘던 부친과의 투쟁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마오는, 그래서 "무산 대중의 정의로운 복리"라는 극한의 이상을 추구하는 혁명 수행 과정에서도 이런 리얼리즘 스탠스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일본제국주의와 장개석 정권(그 배후에는 미국의 지원, 그리고 때때로 소련의 응원까지 있었던)이라는 가공할 만한 두 적수를 상대로 싸워, 최종의 승리를 쟁취한 사실이었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했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는 세계사 거대 형성 흐름 중 으뜸 변수를 새로이 만들어 낸 엄청난 사건이었죠.

 

한편, 우리는 잘 실감을 못하지만, 이민족의 지배에서 간신히 벗어났다가 내전(이후 국제전화하기까지 한)으로 초토화된 형편에서, 세계 10권 안에 드는 무역 규모와 GDP 수준을 이뤄 낸 한국의 성취 역시, 세계적으로는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나 봅니다. 얼마 전 베링 해에서 침몰한 원양 어선에 타고 있다 큰 인명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가족 측에서, "한국 같은 선진국이 어떻게 해서 그런 노후한 배를 운항할 수 있는가."를 놓고 크게 분개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요. 여기서 저는 해당 사건의 비극성보다 오히혀 "인도네시아인들도 의심 없이 인정해 주는 선진국"이 바로 한국이구나 하는 느낌이 더 빨리 와 닿았습니다.

 

도대체 가망이 없어 보이던 작은 나라가, 이 정도 어엿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과연 어떤 팩터였을까요? 주로 한국의 기성 세대들은, "지도자 박정희"를 그 첫손에 꼽곤 합니다. 물론 이는 논란이 아주 많은 이슈입니다만, 저자분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11월 14일(이날의 그의 생일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김일성의 생일이 4월 15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요), 모든 언론에서 반신반인으로서의 박정희를 언급한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반신반인이라.. 영어로는 DEMIGOD라고 하는 그 말이지요. 한국에 (일부 기성 세대가) 반신반인이라 칭송해 마지 않는 박정희가 있다면, 중국에는 거의 전 인민이 반신반인으로 숭모하는 마오가 있다. 이들은 공통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점도 너무나 많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며, 마오를 섬기는 민족과 박 장군을 섬기는 민족은 어떻게 그 장래가 달라지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모색해 보자는 게,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로서, 저자의 의도가 이것 아니었을까 하고 파악한 테마입니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 교차 편집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 장(챕터)에서 마오를 다루다가, 몇 장 건너 박을 다루다가, 다시 중국의 사례로 돌아오는 식입니다. 이 둘은 인생의 청년기, 장년기, 커리어의 절정기, 깔끔하지 못했던 말년 등등 여러 국면에서 서로 비슷하거나, 반대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점이 있습니다. 저는 과거 이이화 선생의 <한국 현대사의 라이벌>을 읽으며, 이런 서술 방식을 통해 두 feature의 실루엣을 비교, 대조하는 작업이 이처럼이나 인식상의 큰 도움을 주는구나 하고 놀라곤 했었는데요. 이 책은 책 전체가 "두 문제적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있어, 종전의 평면적 인식 한계 몇이 크게 극복된 느낌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두 인물만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제 개인적으로는 박정희를 다룬 한국 현대사 일부보다는, 중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파트가 (굳이 따지자면) 상대적으로 더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마오를 중심으로 한 중국 관련 부분이 알차게 쓰여졌다는 뜻입니다. 비록 반신반인으로서 그토록 중국 전인민으로부터 치켜 세워지는 마오지만, 마오 혼자서는 오늘날의 이 과분한(?) 영광을 절대 누릴 수도, 그리고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분의 생각은 제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책에서 마오 외에도 덩샤오핑에 대한 논의가 이처럼 자세히 이뤄진 것도 아마 그런 배경과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대약진 운동 실패, 문혁의 파국적 결과, 사인방의 횡포 방관, 조장 등 말년의 행적이 크게 어지러워진 채 타계한 마오가, 후계 문제까지 어정쩡하게 마무리한 상황에서, 화궈펑(화국봉)이 그대로 대권을 이어받았다면, 오늘날의 G2 중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브레즈네프 치하에서 활력과 포텐셜을 모두 상실한 소련처럼, 몇 개의 민족 단위로 사분오열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죠. 이 책의 저자가 뚜렷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덩샤오핑이라는 걸출한 후배(저자의 표현입니다)가 아니었으면 이 모든 번영도, 그리고 반신반인으로서 숭배 받는 마오도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명 제국을 망하게 한 농민반란군 이자성 정도의 인물로 기억되는 게 고작이었겠죠.

 

사실 마오와 박은 같은 논의의 선상에 서기가 좀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박은 건국의 리더 혹은 국부 비슷한 존재가 아니며, 파산 직전에 몰린 국가의 거시 경제를 잘 핸들링하여 회생시킨 유능한 관료형 인물에 가깝습니다. 단지 그 권력을 장악한 과정이 군사쿠데타였고, 역시 무력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마오와 겉모습상 유사점이 있다는 것 뿐입니다. 굳이 박을 중국의 어느 지도자와 매칭시키자면, 마오가 아닌 덩이 되어야 그나마 균형이 맞죠. 물론 인구나 영토의 규모로 보나, 현재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위상으로 보나, 한국과 중국이 비교선상에 오르는 것도 어찌 보면 무리입니다. 여튼 "그 가진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왔던 두 사람"을 주제로, 이 책은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펴 나가고 있습니다.

 

마오의 생애 전반기 이력은 마치 수호전이나, 잘 쓰여진 일류 무협지의 주인공의 그것처럼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입니다. 이 책에는 저우(나중에 "영원한 총리"가 되는 바로 그이)와, 마오가, 대장정 도중 망중한의 모습으로 한 컷에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저우는 촌스러운 상관, 주군 마오와는 극히 대비되는 세련된 매너와 외모로 잘 알려진 국제 신사이지만, 이 사진에서의 젊은 모습은 그의 노년기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그만큼 곱게 늙었다는 의미도 됩니다만). 반면, 사진 속의 젊은 마오는 얼굴선이 갸름하고, 다소 수줍게 보이는 미소까지 머금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제가 알던 마오가 아니라서, 몇 번을 두고 거듭 들여다 보았는지 모릅니다. 이런 미청년이, 어쩌다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투박한 모습으로 바뀌었을까요? 흔히, 마오안잉(한국전에서 전사한 그의 맏아들)을 두고, "어떻게 저런 아버지한테서 저런 아들이 나왔나"며 의아해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 사진에 나온 마오의 미모(!)를 한번 봐야 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불러 줘도 지나칠 것 없습니다.

 

저 사진이 잘 상징하는 것처럼, 마오의 대장정은 그저 정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추악한 투쟁이나 살벌한 아귀다툼이 아니었습니다. 마오가 이끄는 홍군은 가는 곳마다 토지 개혁, 엄격한 군율이 바탕이 된 치안 유지 등의 시책으로, 기층 민중의 환영과 지지를 확보했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도덕과 정의의 실현이었고, 그렇다고 전투 능력이 취약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맹장 밑에 약졸 없다고, 마오의 휘하에는 주더(주덕), 펑떠화이(팽덕회), 임표(린뺘오) 등 쟁쟁한 영웅, 지략의 천재들이 즐비했습니다. 장군 한 사람이 원맨쇼를 한 게 아니라, 이처럼 신화의 전형적 패러다임에 속속 아귀가 맞는 아름다운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었던 게 바로 마오, 아니 홍군, 아니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고아한 십자군(물론 진짜 중세의 십자군은 말할 수 없이 타락한 강도떼들이었습니다만)의 캠페인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 그런데, 그 이후는 어땠습니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어도,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던 육가의 말도 있습니다만, 마오는 일단 천하를 얻고 난 후에도, 동란과 내전시에 통하던 방식으로 대륙을 다스리려 했습니다. 대약진운동은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뒤바뀐, 권력자의 치적과 자기 만족을 위한 광기 어린 정치 쇼였습니다. 쟁기를 녹여 저품질의 철강을 생산하려 든 탓에, 농기구가 없는 농민들은 일제가 남경에서 학살한 수에 맞먹는 규모로 아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찌해서 권력을 잡기 전과 후가 이렇게도 달라질 수가 있는 건지요. 이런 참사는 지도자가 무능해서 빚어진 일이 아닙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대장정 당시의 제스처가 거짓이 아니었을진대!)이 조금만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어이없는 인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터입니다.

 

문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아까운 인재, 그리고 공산당의 영걸과 국부들이 죽어갔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이 책에도 잘 나와 있지만, 펑 원수는 손자뻘도 안 되는 홍위병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모욕을 당하며 조리돌림을 당했습니다(저자분은 이 대목에서 팽 원수가 팽 당했다는 재담을 하시던데, 저는 그게 그리 좋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류사오치와 그 영부인 왕광메이의 사진을 보십시오. 악의라고는 조금도 없는, 동양인이 보여 줄 수 있는 모습 중에서 가장 안온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건국 이후 마오의 모습은, 대머리가 벗겨진 채 탐욕과 야심이 기름기로 가득 배어 나온, 누가 봐도 그리 좋은 인상이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랄까요. 인상이 그렇다는 것뿐 아니라, 그가 실제로 남긴 행적만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유능한 지도자 덩을 후계에 점찍고 물러나기만 했었어도, 마지막에 자신의 과오를 일점이나마 회오하는 바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이어나갔고, 그가 죽는 즉시 끈 떨어진 인형 신세가 될 4인방을 미리 척결하지도 않고 어정쩡한 무마형 지도자인 화 원수에게 자리를 물려 주었습니다. 덩이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자신의 능력과 의지, 책략에 의함이었지 마오가 도와 준 바 하나 없습니다. 4인방이 그대로 폭주하다 망했을 법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천행으로 덩 같은 지도자를 만나 오늘날의 G2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역사 인식의 면에서 "중국분, 한국인, 일본놈"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간악한 일본놈 이야기는 할 것도 없고, 문제는 과연 저런 폭력적인 지도자를 내내 "반신반인"으로 섬기는 중국인의 역사 인식이 동아시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돈은 나중에 벌면 되는 거고, 그는 체면을 살려 주었다." 그렇다면, 대약진운동과 문혁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요? 마오가 한 일은 마오가 한 일이고, 덩이 한 일은 덩이 한 일입니다. 덩이 사후 땜질을 잘하고 제 2의 건국을 이뤘다고 해도, 그 때문에 마오의 과오가 덮이는 건 결코 아닙니다.

 

저자는 부친과의 대화를 책 중에 적어 두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밥 먹여 주냐?" 이제는 대답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예, 민주화는 밥 먹여 줍니다." 민주화가 밥을 먹여 주든 말든, 민주화는 그 자체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으므로 이런 논의는 어차피 무의미합니다. 문제는 말입니다. 왜 이 말을 중국에 대해선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마오는 근 백년 간 서양 제국주의에 유린되고, 최근세사에는 왜놈들에게 능욕을 당한 민족의 자존을 지킨 공적이 있습니다. 경제 발전은 마오가 아닌 덩의 치적입니다만, 여튼 이 둘을 백보 양보해서 세트로 볼 수도 있다고 합시다. 민주화는 어디로 갔습니까? 중국 국민들은 대학생, 아니 대학 교수라고 해도 인터넷도 제 맘대로 쓰지 못하는, 철저히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국가입니다. 영화배우 주윤발(그는 관화로 "저우룬파"라 하지 않고, 광둥어 "초우 윤 팟"이란 발음을 고집하죠)은 최근 홍콩 정세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 몇 마디를 했다고 바로 대륙 활동 금지를 당했습니다. G2면 뭘합니까. 몇몇 슈퍼리치가 호사를 누릴 뿐, 절대 다수 국민들은 입에 풀칠을 할 수 없어 남의 나라 바다에까지 와서 해적질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나라가, 과연 세계의 표준을 정할 자격이 있을까요. 과거 중국은 공맹의 가르침으로 세계를 교화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명나라, 심지어 병자 호란 이후의 청나라도, 적당한 예의만 갖추면 속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우의를 도모하는 쪽으로 정책을 잡았습니다. 지금의 중국은, 마오의 광기어린 책동으로 유교 도그마를 모조리 파괴한 적도 있는, 과거와의 전통이 단절된 국가입니다. 중국과 마찰을 빚는 건 일본뿐이 아닙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그리도 끈질기게, 대국답지 못한 좀스러운 영토 분쟁을 이어나가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이런 폭력적인 노선을 이어가는 것도, (저자분 자신이 이야기했듯) 폭력의 화신이었던 마오를 반신반인으로 떠받드는 중국인들의 인식이 미개해서가 아닐지요. 마오가 민족 자존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것과, 통일 후 국민들의 진정한 존엄과 복리를 위해 과연 뭘 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박정희 따위가 무슨 반신반인입니까. 반신반인이라는 개념도 기준도 필요 없습니다. 박정희가 자격이 없다 해서, 반대로 마오가 그만큼 더 위대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자는, 그 원죄와 업보를 영원히 안고 가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하고 그 자리에 올랐다면, 마오는 스스로 수립한 헌정 가치 체계를 파괴한 자라고 해도 됩니다. 사람이 대체 얼마나 죽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박정희가 딸 뻘되는 연예인, 여대생을 술자리에 불러 희롱했다면, 마오는 손녀뻘 되는 미성년자를 떼로 불러 환락의 난장판에서 노리개로 써먹었습니다. 도찐개찐이지 둘 사이에 무슨 우열을 가른단 말입니까.

 

우리 민족이 위대한 이유는, 그런 박정희에 대해 우상화의 더께를 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줄도 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마오를 그렇게 보는 이가 누가 있습니까? 저자가 말씀하신 대로,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국민은 애초에 논의의 장에 나서질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아닌 남의 노예로 사는 자가 무슨 기준을 정하고 세계 정세를 논할 발언권이 있단 말입니까.

 

枪杆子里面出政權

枪杆子는 총자루라는 뜻입니다. 里面은 우리식 한자로 쓰면 裏面, 즉 "속" 정도의 뜻입니다. 政權은 말 그대로 정치 권력이죠. 그래서 "총구 안에서 권력은 나온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중국어에는 과거, 현재, 미래 하는 시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오의 이 유명한 말은,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불변이 진리라는 오만한 선포로 들립니다. 마치 아돌프 히틀러가 "거짓말은 크게 떠들어야 대중이 속는다"고 공갈을 친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누가 들어도 이게 좋은 뉘앙스를 안 풍깁니다.

 

저는 "박정희의 경제 치적은 인정해야 한다."는 저자의 평가도, 그 전후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괜한 구색맞추기로 들립니다. 저자의 논리대라로면, "경제 발전 역시 그 시대에 땀흘려 열심히 산 민중의 공이다"가 되어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요? 반신반인이라는 건 없습니다. 역사는 객관적, 과학적으로 판단해야지 신적인 지도자라는 게 어디 있단 말입니까? 박 장군이든 마오든 반신반인은 결코 아니고, 그 이전에 반신반인이라는 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권력이 과거에 총구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는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습니다. 헌법 제 1조 2항을 보십시오.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외에 어떤 정답이 필요합니까?

책 제목은 묘하게도 과거형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저자분의 의도가, 총구에서 구권력이 나오는 비극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 있다고 새기고 싶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국에 있어 가장 필요한 건 반신반인 같은 게 아니라 민주화입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민주화는, 밥보다 중요한 인간 존엄 본체에 해당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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