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아무리 같은 조직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 온 팀원 사이라고 해도, 회의나 의견 조율을 할 때마다 항상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고 잘 마무리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마무리가 잘 되는 때보다, 그렇지 않고 분위기가 험악해진 채 간신히 봉합되거나,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까지 감정의 앙금이 남아 폭발하는 수도 있죠. 원활한 소통은 조직의 작둉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이치는 비단 조직(2차 집단)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사랑과 애정만으로 모든 다툼과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고, 합리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의사의 교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토킹 스틱 하나로 기적이 이뤄질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하면 그건 과장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한 마디 하려고 할 때 괜히 끼어들어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한다든가, 다른 사람의 말을 곡해하여 차라리 아무 반응도 안 보이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 온다든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다 바람직한 소통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면, 그건 눈에 확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작은 기적이라 불러 줘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이 남기신 서평을 찬찬히 훑어 보았습니다. 대체로 토킹 스틱의 효용, 그리고 이 토킹 스틱이 활옹되는 자리에서, 그 분위기 형성의 전제가 되는 "주술적 상징"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p48에 보면 "방위의 노래"라고 해서, 우리의 상상이나 선입견을 훨씬 뛰어넘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관념과 상징 체계가 아주 자세히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대화와 소통을 위한 실용적 메커니즘 문제를 넘어, 인문학적 시야에서도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아메리카 토착민이 이 체계를 활용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백인 못지 않게 호전적이고, 싸움에 일단 임했다 하면 물러설 줄을 모르는 용감한 종족이었죠. 그런데, 이런 그들이 모여 살다 보니, 아무리 넓은 대륙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 상황이었다고 해도, 자칫하다간 전쟁으로 절멸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을 과연 당사자들이 실제로 가질 만큼 분별이 있느냐인데, 그들은 이런 소통 체계를 실제로 고안해 내었으니 충분히 현명했다고 하겠습니다.

 

제게 큰 인상을 남긴 건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사항이었습니다. 하나는, 대화에 참여하는 성원들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반드시 그 자리가 상징하는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성향이며, 어떤 처지이냐에 무관하게, 그 사람이 현재 맡은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의무로서 이 과업은 그에게 부과됩니다. 공(公)과 사(私)를 준별하는, 대단히 엄중한 룰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차지하는 자리는 다음 순번에는 반드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문자 그대로 역지사지의 원칙 구현이며, 이번에는 타인의 입장에서 열심히 그 입장을 대변해야 하니, 그 사고와 태도가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스틱을 넘겨 받은 사람은, 바로 앞 사람의 발언에서 나온 표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받아서 반복한 다음, 자기의 말을 해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이때 괜히 다른 말로 대체한다거나(paraphrasing), 더 강한 의미로 강조, 과장하면 그건 규칙 위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대가 거의 천 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통용되는 토론, 토의 규칙을 오히려 앞서 나가는 면마저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다 동조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절차와 체제를 갖추고 있던 그들은, 왜 백인의 손에 망하고 말았을까요? 단지 백인이 악하고 비도덕적이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뭔가 그들의 문화에 자체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패배를 겪은 것입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와 상징, 신념, 가치 체계가 완벽했다고는 생각이 안 됩니다. 미국 헌법 제정과 독립 당시, 건국 선조(파운딩 파더)들이, 이 토착민들에게서 강한 영감과 영향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을 유럽 문화권에 대한, 일종의 과시적 선언 의도로서 이를 끼워 넣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토착인들이 완전히 축출된 건 미국 독립 후 거의 반 세기가 지나서의 일입니다. 조지 워싱턴 시절의 미국 백인 문명은, 원주민을 완전히 몰아낼 만큼 위력과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아무튼 제가 그간 읽었던 미국 건국 초기(혹은 그 이전의) 문헌에서. 왜 그토록 "이로쿼이" 등 특정 토착 부족에 관한 언급이 잦으며, 또 좀 별다르다 싶은 외경심이 살짝 입혀진 말투로 언급되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토킹스틱 회의, 소통"을 자기 일상이나 업무에서 실천해 보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전 좀 쑥스러울 것 같군요. 그러나 그들의 대화 정신만은, 앞으로도 회의할 때나 각종 모임의 절차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고 인상 깊은 지침으로 계속 남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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