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의 자전거 세계일주 1 : 중국편 - 너와 나, 우린 펑요 찰리의 자전거 세계일주 1
찰리(이찬양) 글.사진 / 이음스토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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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처음의 제목은 <찰리의 자전거 여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받아 본 책(공을 많이 들인 책이라서 그런지, 겉도 속도 참 예쁩니다)의 제목은 <찰리의 자전거 세계 일주>네요. 물론 저자 이찬양씨의 이름이 "찰리"이며, 이 책 제목 그대로 자전거 하나로 세계 일주를 하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냉정히 말해 환경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어난 환경 그대로에 머무르면, 갖고 자란 기질, 천성의 한계, 그리고 낳아 주신 부모님에게 받을 수 있는 미덕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지금보다 나은 인생으로 거듭나려면, 배우고 익혀서 정신의 눈을 키워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육체의 성숙,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의 차원까지 높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간접 체험의 폭을 넓히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직접 체험의 수단으로 여행을 시도합니다.

 

책은 사람에 따라 그렇게 잘 맞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만약 아니라면, 출판계가 이처럼 불황에 시달려 할 이유가 없을 테죠). 하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 유람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다녀오는 분들도 있을 테고, 저처럼 막 모종의 여정을 일 관련으로 마치고 온 처지도 있을 것입니다. 매번 보고 스치는 것만 접하다, 타지에서 확 다른 풍광을 몸에 끼얹고 돌아 오면 기분전환이 되는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 각성의 느낌을 받습니다. 여행은 그래서 일개 도락이 아닌, 교육의 일환이자 거듭남의 방편입니다.

 

저자 이찬양씨가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합니다. 약력만 보아도(책을 읽기 전부터 약력을 읽을 수 있었고, 참 대단한 분이다 싶었습니다) 그는 소위 글로벌 마인드를 지닐 수 있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더군요. 아마도 그 끼를 주체 하지 못하고, 혹은 배움에의 강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자전거 한 대에 몸을 싣고(사진을 보니 확실히, 패셔너블보다는 내구성에 주안을 두는 분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세계를 그저 몸뚱아리 하나로 일주하겠다는 포부로 무작정 나섭니다. 대단합니다. 자신의 말대로,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도 말입니다. 여행의 기쁨이 있으면, 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었던, 혹은 가시적으로 희생한 그 무엇이, 그로서는 작지 않은 것이었을 텐데도, 그는 감연히 여행길에 나섭니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왜 "빛과 소금"이라는 말이 나오듯, 소금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 그 부존재를 감당할 수 없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일개 소금장수에 불과했던 황소가, 그를 통해 축적한 부(富)를 기반으로 난을 일으켰고, 그 부 축적 활동 와중에 쌓았던 인간 관계와 나름 터득한 지혜에 기대어 감히 천하를 갈무리하려 했던 그 행적에 비추어서도, 이 소금이라는 물질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찬양씨는 중국 여행(말이 중국이지, 얼마나 광대한 곳인가요! 이 책이 전 중국을 다 커버한 것도 아닌데, 책 두께가 이처럼 두꺼운 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더군다나 사진도 많지만, 다른 여행 서적에 비해 텍스트 양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요)의 시발점을, 장쑤 성(강소 성)으로 잡고 있습니다. 옌청의 "옌"은 소금 염(鹽) 자입니다. 장쑤 성 밑의 저장 성(절강 성)에, 5대 10국 시절 오월(오와 월의 합칭이 아니라, 그냥 나라 이름이 오월입니다)이라는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를 세운 시조 전류가 바로, 소금 장사로 큰 부를 모은 경우죠.

 

보통 여행 서적을 보면 인문적 통찰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은 채, 간단한 느낌이나 흔한 통념만 적고 예쁜 사진만 가득 채우는 일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어딜 여행 갔다 하면 "남는 게 사진이다"며 이런 태도에서 거의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 책은 사진도 많지만, (앞서 적은 것처럼) 텍스트가 참 많은 편입니다. 지명을 한자(漢字)로 일일이 같이 적어 주는 태도도 친절하고, 저렇게 "소금 염"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깊이 있게 언급하는 것(그러나 이 서평에서 5대 10국 운운은 제 생각이고 작가분의 언급은 아닙니다)도 돋보였습니다.

 

책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넘쳐납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 그 중 며칠을 같이 머무르며 친분을 쌓은 이들, 재래 시장에서 물건을 사며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지만 그새 깊은 공감을 주고받은 이들... 사진에 잘 담겨진 풍광도 보기 좋지만,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 못나든 잘났든 구질구질하든 산뜻하든 저마다의 정과 깊이와 색깔을 간직한 사람, 사람,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사진상의 모습으로는 그런 인상을 안 받았는데(죄송합니다 ㅎ) 작가분은 신신실한 기독교 신도이신가 봅니다. 성함이 물론 이찬양이시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속단할 수 없는 문제인데, 작가는 여행 곳곳에서 큐티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힘을 얻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작가분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느 곳에서나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예: 재래 시장의 음식은 싸고 맛있다)." "겉으로 모든 걸 판단할 게 아니다. 누가 중국 땅에서 영어로 능숙하게 말을 걸어 오는 노인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겠는가?"

 

반면 자신의 지식, 그리고 인식상의 한계를 쉬이 인정하고 반성에 잠기는 모습도 엿보입니다. 지금 이곳은 중국 남부라서, 장쑤 성, 저쟝 성, 그리고 광둥 성까지 죽 내려가다 보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이 나오죠. 현지의 지도를 보니 대만은 중국의 성 중 하나로 표시된 걸 보고 놀라는 모습이 나옵니다. 현지인들의 인식 역시 "당연히 중국의 성(省)인 것을 무슨 소리인가?" 같은 반응입니다. 여기서 하는 말이 걸작이죠. "나도 중국에 태어났더라면, 당연히 그렇게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아는 대로, 대만은 중국의 행정력이 미치지도 못하고, 진입하려면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 별개의 주권 영역입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여행은 분명 나의 한계를 깨치고, 더 나은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나 아닌 다른 사람, 내 겨레가 아닌 이족의 생활과 풍습을 보고 더 나은 미래와 비전을 도모함은, 우리 누구라도 작은 가슴에 품어 온 하나의 소망입니다. 신중하게 쓰여진 이 책(앞부분은 2007년에 쓰여진, 즉 2007년에 답사한 기록이더군요. 그는 장장 7년 동안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서 세계 일주를 마치고 이 책을 이제 펴내기 시작한 겁니다.....)을 통해, 우리는 그 대리만족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여행을 대신 떠나 주는 이찬양씨의 후속작, 정말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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