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레터스
헌터 데이비스 지음, 김경주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의 시대가 본격 개막한 이래, 비틀즈만큼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예인 집단은 아마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밴드를 이룬 4인 중에서도, 특히 사실상의 리더였던 존 레넌은, 뮤지션으로서 이룬 음악적 성취와, 인도주의자, 평화애호가, 그리고 뚜렷한 개성을 지닌 한 인간의 행적, 이 두 가지 면에서 강력한 인상을 당대인, 그리고 후대인에게 남겼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한 정신이상자의 습격을 받아 유명을 달리한 충격적 사건 때문에, 존 레논은 그를 사랑하던 이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그를 딱히 사랑하지 않았거나, 무시로 그가 대중을 향해, 정치인들을 겨냥해, 타락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두고 던지던 메시지 때문에, 그를 꺼리기까지 했던 이들에게조차, 깊은 인상을 주었고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신해철 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아직 때가 아닌데 일찍 갔다"고 여겨지는 이들, 특히 예술인들은, 더 각별한 의미로 동시대의 살아 남은 자들 그 뇌리에 새겨지는 지도 모릅니다. 그 죽음의 과정이 안타까울수록, 혹은 불의스러움이 더 깊이 개입했다고 여겨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 충격적인 죽음을 통해, 일종의 신화로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존 레논은 물론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그가 남긴 노래들을 지구촌 곳곳의 누구라도 애송, 애창하는 그 범위와 실태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인류가 배출한 뮤지션 중 단연 첫째, 둘째의 왕좌에 놓여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음악성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논자에 따라서는, 음악적 역량으로만 따지면 같은 팀의 폴 매카트니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하는 이도 있습니다(물론, 예인의 능력치 순위를 매기는 것만큼 미성숙하고 불필요한 소동도 없다는 점에서, 누구 사이의 무슨 우열을 따지는 일은 진정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매카트니의 그것에 비해, 존 레논의 현재 위상이란 단순 비교가 좀 어려울 만치 높아져 있습니다. 그는 거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어떤 위격을 가진 반신(半神)적 존재나 아닐까 때때로 착각될 만큼입니다.

이 책은 존 레논이, 그의 지인들과 연인, 그리고 다양한 관계자들에게 띄운 서신을 모아 놓고, 이를 비평적으로 분석하거나 회고하는 책입니다. 제목이 저렇게 되어 있어서 정말 편지만 모아 놓은 책인가 보다 하고 잘못 생각했더랬습니다. 존 레논의 노래들을 평소에 흥얼흥얼 읊는 이들이라고 해도, 그가 보인 후년의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이라면, 그가 남긴 편지에 대해서도, "또 무슨 설익은 평화주의자 특유의 몽상적 푸념이나 잔뜩 담겨 있을 듯" 같은 오해나 부르기 쉬울 것 같은 겉모습이었죠.



사진에서 보시듯, 책은 제법 큰 사이즈에 두껍기까지 합니다. 펼쳐 보면, 고급 백상지에 천연색 인쇄더군요. 이런 책치고는 값이 비싸지 않은 편이라(비슷한 사양에 3만원대 후반~ 4만원대 초반까지 매겨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서요), 아 내용은 그냥 레논의 편지만 줄창 나오겠구나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저자들의 설명과 분석, 주석, 평가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네요.




그가 보낸 엽서(위에 적었지만 천연색 인쇄라서, 당시 이런 예쁜 엽서가 발행되었구나 같은 눈호강을 독서에 겸할 수 있습니다. 우표도 아니고 민간에서 자유로이 찍을 수 있는 엽서야 하긴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이것이 존 레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실물이 아니라 책에 인쇄된 모습으로도 참 귀하게 여겨지던데요), 편지 여백에 남긴 재미있는 낙서, 그리고 존 레논과 그 주변 인물들을 담은 다양한 시기의 사진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도판의 양이 꽤 많습니다. 거의 두세 쪽을 넘길 때마다 두어 컷은 꼭 나오는 비율입니다. 솔직히 보기 드문 이런 컨텐츠를 구경하기만 해도 책 읽기의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고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책값이 싸다"는 생각, 다 읽은 후인 아직도 떨칠 수 없습니다. 흐뭇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존 레논에 대해 아는 게 없었구나"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데뷔하기까지 거쳤던 이런저런 업계의 실력자들, 신인 시절부터 전성기, 그리고 사회활동가로서 사실상 전업하기까지 계약 관계에 있었던 업자들과의 사연은, 다른 책이나 신문 특집 기사에서 피상적으로나마 접해 왔었지만, 이 책에는 그보다 훨씬 풍성하고 심도 있는 에피소드, 아니 역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었네요. 그래서 이 책은, 인물 평전이자 한 예인을 통해 바라본 단대사라고까지 여겨졌어요.




번역도 세심합니다. 아시다시피 존 레논은 그 무수한 히트곡(이렇게 부르자니 너무 그를 세속적으로만 평가하는 것 같아 좀 삼가지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일종의 경전이 되기도 한 셈인데요)의 가사를 손수 지은, 시인을 겸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짤막한 글귀, 엽서에 적은 소회 등은, 그가 유명인(셀러브리티)이라서 값지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문학적 가치까지를 부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간단한 느낌을 친우들과 나눌 때도 예사롭지 않은 감각으로 어휘를 골라 썼습니다. 쓰는 말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 그 단어를 이런 문장과 맥락에 사용하는구나 하는 생경함, 그리고 감동 같은 느낌이 들게 말입니다. 1960년대 극심한 인종 차별과 사회적 갈등 때문에 사분오열된 미국을 두고(오죽했으면 196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공화당의 닉슨이 "TO BRING US TOGETHER"를 모토로 내걸었을까요), the disunited states라고 비꼰 대목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식 국호인 the United States를 뒤튼 것입니다. 이 문구를 역자는 "비(非)합중국"이라 옮기고 있습니다.  흐뭇한 웃음이 나왔고, 책 한 권을 꾸려내는 출판사의 성의와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네요. 독자로서는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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