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경제
토마 피케티 지음, 유영 옮김, 노형규 감수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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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본디 "정치경제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범한 학문입니다. 이는 애덤 스미스 때도 그러했고, 리카도와 맬서스의 시대까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던 것이, "순수"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란 존립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다기보다, 그 존재 이유가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이며, 따라서 정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아니면, 계량적 분석 방법이 채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상황의 한계도 작용했을 터입니다.

 

물리학에서나 쓰이던 고등 수학의 방법론이 경제학에 도입되고 난 후, 이 학문은 이제 가치 판단이나 계급 간의 (추한)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이론 세계가 구축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과도한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적 세계관을 바탕에 둔 비주류는, "어차피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했음"을 명분으로, 이론적 통합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제 갈 길만 가는 모습도 보였지요. 그나마 최근의 모습은, (주류로부터 "경제학을 파괴하려는 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로빈슨 부인 같은 경향도 다소 완화되고, 주류 내부에서도 "비등하는 대중의 분노와 모순을 가뜩 노정하는 엄연한 경제 현실"을 이론이 반영해야 한다는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피케티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벼락출세자가 아니라, 18세때 파리 고등 사범에 입학한 수재였으며, 학부 시절부터 "불평등 이슈" 쪽으로 파고들어 美 MIT에서도 이 분야의 경력을 혁혁히 쌓았으며,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21세기 자본>이 최근에 학계는 물론 미디어의 주목까지 받으면서 대중에 유명해진 것 뿐입니다. 당장 이 책만 해도 일찍이 1997년에 그 초판이 나온 것인데, 이 책에서 그는 이미 "될성부른 나무"의 싹수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상당히 젊은 나이에 집필한 이 책은, 짧은 분량(본디 교과서라는 게, 각론에서는 분량이 많지 않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무게로 다가옵니다. 흔히 갖는선입견대로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나 털어 놓는" 대중서가 아니라, 학생들 공부하라고 지어 놓은 교과서의 성격이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는 여기서 기존 학문적 성과를, 굳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출처를 밝혀 가며 인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그것도 주로 자신이 반대하는 주장의 소스까지 성실히 끌어오며 꼼꼼하고 치밀한 논변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극복해야 할 테제에 대해, 먼저 그 진의를 파악하고 성실한 인용을 베푸는 것이, 피케티와 같은 수재들이 언제나 잊지 않는 기본적인 아카데미즘 스탠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는 주로 프랑스의 현실에 주목하여,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사이에서 두드러진 건 임금 소득의 재분배 부분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위 계층은 사회 보장 섹터에서 지급, 보조 받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차이를 가르는 건 기본적으로 근로 소득이라는 것입니다. 세습 부문(그는 굳이 이 용어를 쓰네요)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나, 다만 그 분배의 불공평이 극심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했던, 상속-증여와 이전 소득에의 과세 통합을 주 내용으로 하는 부의 소득세(물론 우리 나라 경제학 교과서에도 소개되는 개념입니다. 재정학이라든가 타 분야에서도 익숙하죠. 이 책은 아무래도 프랑스어 원문이라서, 피수식어가 수식어의 앞에 위치하는 이 같은 어휘가 난무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원 없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impot negatif. 영어라면 네거티브 인컴 택스라고 하죠)를 다시 환기합니다. 프리드먼이라는 이의 족적을 아는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구태여 이 이름을 들고 나온 피케티의 의도를 눈치 채고 미소가 씩 지어졌을 만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생전에 이미 이 이야기를 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이미지만 기억하고 디테일을 생략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아마 잊고 있었을 텝니다.

 

그는 여기서 다시 쿠즈네츠의 법칙을 "까기" 시작합니다. 사실 왜, 세이의 법칙 이래 아름다운 경제학 법칙들은 도통 현실에서 실현될 줄을 모르고 책 안에서만 폐쇄적 유희를 즐기고 있는 걸까요? 경제학의 거의 관성적 진리에 의하면, 선진국의 생산성은 하락하고, 개도국의 역동적 성장은 이와 대조되듯 각국의 자본을 끌여들여야 마땅합니다. 이로서 궁극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실종되고 공평한 부의 향유로 수렴해야 마땅하나.. 그 현실이야 우리가 보는 바대로입니다.

 

피케티의 결론은, "완전 균형 완전 시장 청산"이 신화에 가깝듯, 불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어 항상적 특질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왜 인도의 한계 생산성이 그리 높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본은 인도를 향해 러시하지 않는가? 그는 예리하게도 "생산 수단의 불공평한 분배가 아닌, 인적 자본의 공평성 척도"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충실한 기존 성과의 인용에 이어, 이처럼 자신만의 독창적 견해를 치밀한 분석과 함께 클리어한 명제로 척척 이어가고 제시하는 솜씨, 과연 프랑스가 낳은 엘리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탁월한 재주입니다.

 

피케티의 주장 말고도 예컨대 가족 계수(quotient familial) 같은, 프랑스에만 특유한 제도나 개념, 기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책 말미에는 용어 사전도 나와 있어서, 경제학 개념이 생소한 독자들을 배려하고, 쉽지 않았을 텐데도 일일이 참고 문헌 목록을 싣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직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내용인데, 한국에서의 피케티 열풍을 감안하여 거의 세계 최초로 외국어 번역본이 나온 셈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피케티의 "리즈 시절"을 이 책을 통해 머리에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오타
p105: 5 시경경제 → 시장경제
p228: 밑에서 10번째 신라카도 → 신리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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