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옥과 함께하는 클래식 산책 - 영혼을 울리는 클래식 명작, 그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
최영옥 지음 / 다연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어떤 이는 말하기를, 서양인들이 빚어 낸 가장 멋진 발명품이 바로 그들의 고전음악이라고 합니다. "정격(正格)"이란 의미에서의 고전, 클래식은 특정 문화권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우리에게도 우리 나름의 "고전 음악"은 어엿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속물 근성이나 사대주의의 발로가 아닌, 솔직하고 냉철한 접근을 통해서도 저들의 음악에는 뭔가 모호함을 걷어낸, "논리"와 정교함, 명징한 의식의 계획적 활약 같은 요소가, 우리 동양의 음악보다 더 많이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음악 뿐 아니라 저들의 모든 문화가 그러하지만, 그것을 만든 이에게 정당한 크레딧을 부여해 주는, 건전하고 깔끔한 개인주의 문화가 위대한 성취를 조장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무엇을 한다 한들, 그 공이 어느 위대한 분(군주나 세력가)의 몫으로 돌려진다면, 기술적인 의욕이 생기지도 않을 뿐더러,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이란 숭고한 내적 동기가 십분 발휘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윗분 마음에 드는 선에서 적당히 하고 그만두는 분위기와, "내 작품은 위로는 신(神)이 보고, 아래로는 후대인이 두고두고 가치를 평가할 것이다" 같은 생각을 언제나 염두에 두는 예술가 중, 누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요.

 

이 책에 소개된 32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뚜렷한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것이 개별 작품이건, 작곡가이건, 연주자이건, 대지휘자이건, 재능 있는 개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들의 역사부터가 개인 중심으로 무슨 스토리건 짜여지게 아예 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종묘제례악은 누가 작곡했는지 모릅니다. 수백 년 간 개량을 거듭해 오다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이라 해도, 최초에 틀을 만든 이가 있을 테고, 완성된 꼴을 갖추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이가 분명 있었을 텐데, 왕실의 존엄과 엄숙한 공맹의 도를 강조해 왔을 뿐, 악곡을 빚은 개인의 공은 간 데가 없습니다. 이런 풍토에서 예술 뿐 아니라 학문으로서 체계를 갖춘 과학 따위가 발전을 할 여지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고전 음악은 그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저자분 같은 이가 이처럼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엮어 낼 수 있을 만큼(이 아니라 그 훨씬 이상이죠), 개인과 작품에 얽힌 사연이 무궁무진 이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눈으로 보는 음표와 귀에 익은 선율 뒤에 숨은, 인간과 인간의 사연, 감정과 의지의 충돌 등을, 시공을 초월하여 불멸의 독립적 자태로 남은 그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모른다고 해도 작품의 가치가 감소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어려서부터 자주 접하고 많이 듣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지식을 알고 곡(작품)을 들으면(감상하면) 서양 고전 음악에 평소 낯섦을 느껴 오던 이도 이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헨델"이지만, 정말 그를 여성으로 착각한 사람이 있을까요? 저자분의 말씀에 의하면 엄청 많다고 합니다. 여성이 음악 창작에 종사할 수 없었던 그 오랜 차별적 풍토를 생각하면, 오히려 그런 착각을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여튼 저는 처음부터 이 <Lascia ch'io pianga>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영화 <파리넬리>의 그 분칠한 천박함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모습으로 감상한 후에는 더욱 멀리하게 된 곡입니다. 당시에 영화 제작진 측에서 "최첨단 과학으로 빚어낸 당대 카스트라토 음색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요란하게 선전해 대었지만, 저자 최영옥 씨는 이에 대해선 "두 성악가(카운터테너와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디지털로 합성"한 것 정도로 담백하게 서술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저자 추천의) 유니버설에서 낸 두 음반 중의 해당 작품 연주는 누구에게도 권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전 예전에 저 제목에서 ch'io 같은 낯선 단어가 끼어 있길래, 이게 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이태리 어디 방언이기라도 한가 궁금해했었습니다. 이게 che io의 단축형입니다. io는 영어의 me겠구요. 이런 간투사가 붙으면 뉘앙스가 더 간곡해지고 더 우아한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겠지요.

 

저자는 프란츠 리스트에 대해 1장과 2장 두 꼭지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마 어느 전문가라도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생애를 다룬 영화도 있는데, 1960년작 미국 영화 <Song Without End>가 그것입니다. 리스트 역은 더그 보가트가 맡고 있는데, 그가 <베니스의 죽음>에서 (사실상) 구스타브 말러 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꽤나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언제나처럼 그의 연기는 최고입니다. 제목이 "나치에 유린된 참혹의 선율"인 이 장에서 저자가 추천한 음원 중 상위권 두 개가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의 그것입니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숭어"나 "송어"냐의 문제는 제기된 지 상당히 오래되었고, 정답도 일찌감치 나왔었습니다. 다만, 슈베르트의 시대라면, 오스트리아는 내륙국이 아니었죠. 합스부르크 황실은, (이 책 중 다른 장, <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파트에서 잠시 설명하는 것처럼) 왕년의 유럽 열강 베네치아를 조공국으로 거느린 대제국의 주인이었습니다. 펄떡거리는 숭어를 굳이 구경하고 싶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텝니다. 그렇든 아니든 답이 "송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습니다만. 이 문제는 "왜 송어인 줄을 모르냐?"라기보다는, "틀린 줄 알면서도 다들 왜 아직까지 안 고치고 있는가?" 때문에 심각함을 더하는 이슈입니다.

 

<오 솔레 미오>는 제목부터가 시칠리아 방언이라는 설명은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 것입니다. 시칠리아는 사실 초기 역사에 그리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 방언의 형성 과정에서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았지요. rough breathing의 o가 그리스어에서는 ho에 가까운 발음이지만, 어두의 h가 탈락하며 남성형 주격 단수 정관사가 현재의 모습으로 굳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일 미오 솔레"가 표준 이탈리아어라고 하시지만, 어순은 두 다이어렉트가 서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일 솔레 미오"가 무난합니다.

 

서양 고전 음악을 다룬 책이지만, 한국인의 기여에 대해서도 적지만은 않은 비중이 주어지고 있네요. 신예 성악가 새뮤얼 윤(윤태현씨)는 두 장에 걸쳐 등장하고, 저자는 그의 기량과 장래성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명태>, <사월의 노래>, <보리밭>, <향수> 등의 네 곡에 대해선 독립된 장을 할애하여, 저자의 애정이 듬뿍 담긴 설명으로 독자의 가슴에 와 닿게 합니다. 나탈리 드세이(이름 철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유익했습니다. 전 몰랐던 내용인지라)가 프랑스 현지에서 "조수미의 라이벌"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니 뿌듯하기도 했구요.

오타가 좀 자주 보이는 것 말고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