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청문회 1 - 독립운동가 김구의 정직한 이력서
김상구 지음 / 매직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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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의 권화였는가?
김구 선생은 애국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는가?
김구 선생은 통일의 화신이었는가?
김구 선생은 (심지어) 진보 세력의 아이콘이기도 한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저는 현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거의 거리낌 없이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심지어 저는, 애국심이다, 독립운동이다, 통일 운동이다, 하는 개념을 배우기도 전에, 백범의 생애와 인격을 먼저 배우고, 그를 통해 "아 애국심이란 이런 것이구나, 독립 운동가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백범이 먼저고 애국심 등 추상적 덕목은 배우는 게 오히려 나중 순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최소한 저희 세대는 그랬고, 지금 어린 세대도 대체 그들이 애국심, 민족애라는 관념을 최소한 마음에 품고나 있다면 그러하리라고 다소 성급한 추측마저 합니다.

그런데 저자 김상구 선생(백범과 이름마저 비슷하죠?)은, 제가 위에 적은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인 답을 내어 놓습니다.
1) 백범은 자신의 독립 운동에 대해 스스로 과장하기도 했고, 그의 미화에 친일파들이 앞장서기도 했다.
2) 일신의 안녕과 체면을 위해 대의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기도 했으며, 경무총감이나 주석으로서 그가 내린 조치에는 월권, 반인륜적인 것이 상당했다. 귀국 후에는 일종의 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힘에서 밀려 좌절되었다.
3) 통일운동은커녕 반탁운동에 무분별하게 나섬으로써, 이승만의 단정 수립 운동에 결과적으로 기여하고 말았다. 그의 행보에는 일관성이 없고, 지켜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노선 변경이 잦았다.
4) 진보는 고사하고, 평생을 두고 반공 노선을 유지한 극우분자다. 심지어 독립 운동 도중 공산당에게 입은 은혜마저 배신한 적이 있다.

1권은 주로 백범일지에 대한 비판과 분석, 검토가 주종을 이룹니다.  특히 치밀한 역사 고증을 시도하고 있어, 백범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독자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 리가 어려서부터 잘 아는 내용이, 어느 주막에서 일본인 하나를 구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내용입니다. 이른바 치하포 의거라는 것인데, 사실 어린이용 전기에서도 이를 두고 마냥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백범일지>에서도 이를 두고 그저 자랑하거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투는 아닙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이며, 다만 아직 젊은 나이라 생각이 미숙했을 수 있고, 여튼 방법상 옳지 못했다는 것 뿐이지 애국심의 절절한 표현이라는 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당시의 인권 의식이 아주 낮은 수준이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습니다. 잘했다는 게 아니라 이방인이 타지에서 시비 끝에 목숨을 잃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지적하는 건, 옥중의 백범이 <황성신문>을 통해 자신의 사형집행 예정을 알게 되었고, 집행 직전에 고종의 전화 한 통으로 중지되었으며, 그 전화는 조선에 갓 가설된 문명의 이기였다는 점에서 실로 극적인 사건이었다는,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신화"의 허구성입니다. 이 이야기는 "최초의 통화"와 "독립운동의 레전드 백범"이 한 에피소드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꽤나 인기가 높았습니다. 저자는 <황성신문>의 창간과 최초 전화 부설 시점이, 백범 석방 이후라는사실을 들며, 이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임을 증명합니다. 더군다나 이 일화는 백범이 자신의 책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백범일지> 자체의 신빙성에 결정적 의문을 제기하는 증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백범이 치하포 사건 당시 공초를 받으며 소위 "좌통령" 직함에 대해 출처를 중국인으로 댄 것(일제의 기록)과, <백범일지>에서 스스로 술회하는 내용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들며, <백범일지> 집필 당시 그가 품었던 의도에 꿰어맞춘 조작 내지 은폐의 시도라는 주장을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백범일지>를 여러 차례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저로서는, 저자의 이런 분석과 지적이 실로 흥미롭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토록 큰 신뢰와 존경으로 접해 왔던 텍스트가, 날카로운 분석 앞에서 모순과 약점을 노출하며 (그 일부라도)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언제나 당혹감과 비애를 유발할 수는 없습니다. 특정인에 대한 존경과 경모감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실 그 자체니까요.

저자는 백범일지에 대해, "이처럼 오류와 거짓, 허위로 가득한 기록을 두고 1차 사료로 평가하는 건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단정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을 말하자면, 모든 사료는, 크로스체크, 교차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심지어 사마천의 <사기> 역시, 그 단독으로 진실의 보증이 있는 절대 무류의 기록은 아닙니다. 개인의 기록, 수기가 개인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설사 메모가 있다 해도 말이죠)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백범이 아니라 그 누구의 증언도 타 기록과 대조하여 그 진위를 평가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죠. <백범일지> 아니라 그 누구의 책에 대해서도, 저자분이  지금 이 책에서 이렇게 성실하고 치밀한 비판을 가하시는 것처럼, 한 톨의 의심도 남지 않게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합니다.

오히려 저자분이 그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오류 지적과 진실 규명에 쓰셨다는 자체가, 이 <백범일지>의 기록적 가치와 중요성을 (반대로)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제아무리 이 책이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 해도, 이 책을 두고 1차 사료로까지 평가하는 입장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백범기념사업회 같은 특수한 처지의 단체야 또 생각이 다르겠습니다만. 그저 평균적인 독자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쓰셨으면 될 것을 너무 과민한 스탠스를 잡으신 것 같습니다. 책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붙툭정 시민, 독자가 읽는 게 원칙인 데도요.

백 범의 상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저자는 깊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일본에 항거한 흔적보다는, 그 죄상이나 평가가 애매한 같은 동포를 적으로 몰아 생명을 앗은 예가 더 많지 않느냐는 겁니다. 특히 어느 17세 소년을 두고 부역으로 몰아 사형을 집행한 건, 그 비인간성과 냉혹함에 전율이 느껴진다는 정도의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관념으로, 눈감으면 코베어갈 살벌한 국제 도시 상해의 조계에서 나름 자기 사업(?)을 벌인 17세 소년이 과연 요즘 철없는 고등학생들과 같은 모습이었겠는가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기록이 워낙 미비하고, 별 물리력도 자금력 여유도 없는 임정이, 설사 절박하게 필요한 사정이 있어 집행한 조치를 두고, 그리 넉넉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보다 신중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이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결론이, "백범은 포악하고 사람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월권 성향의 독재자"일까요?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보면 그렇게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논거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이봉창 의사의 의거입니다. 비록 히로히토를 죽이는 일에는 실패했으나, 당시 아무도 감히 상상도 못하던 거사를 감행했기에, 내외적으로 끼친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우리가 봐도, "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1) 이 일은 싷제로 백범이 주도한 것인지 다소 의문스럽다
2) 이 의사는 일제에 잡힌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행동을 "어리석다"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3) 이 의사는 백범의 본명도 신분도 몰랐으며, "그리 학식이 높지 않고 뛰어난 인격자도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 속은 것 같아 분하다"고 진술한 기록이 남아 있다.
4) 이 의사가 의거에 실패한 이유는 폭탄이 불량품이었던 까닭이며, 이는 백범의 무능력을 보여 준다.
5) 이 의거는 사실 공산주의자 들의 지원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정도의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2) 3)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죠. 백범의 말에도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제의 공식 기록은 글자 그대로 믿는다는 건 과연 어떨지요. 더군다나 이 의사는 고문과 취조로 극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텐데, 그 중에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연 다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저자는 이상하게도, 고문 가능성은 거의 배제하고 있습니다(철저하게 "가정법"으로만 언급합니다). 또, 윤 의사는 의거 전후 시종 일관하여 백범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고, 임정에서 그를 따른 이들 중 해공 신익희라든가 장준하 같은 엘리트가 많았던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쪽만 보면 왜곡된 결론이 나올 수밖에요.

4)와 5)는 저자의 자가당착입니다. 만약 공산주의자들의 기여가 그만큼 컸다면, 불량품 폭탄 건은 백범의 무능이 아니라 공산주의자 탓입니다(책에 폭탄의 출처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조차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 또한 설사 백범의 준비가 부실했다고 해도, 그가 가진 자금과 능력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 아니었겠습니까? 돈이 있어야 폭탄 실험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윤의사 홍구 공원 의거에서는 엄청난 위력으로 요인이 대거 죽었다는 사실이, "두 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백범의 능력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백범의 학식이 높지 않다는 건 당대인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북 연석 회에서 "나는 배운 바도 없고,... "로 시작하는 그 어눌한 연설을 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교육방송 다큐에서 자주 보여 주고, 아마 유튜브에도 찾아 보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인들은 백범을 존경했고, 백범은 자신의 학력 부족을 굳이 숨기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이 그 학력의 깊이에  있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백범이 자신의 생을 통해 보여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우리가 그에게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무식한 인간이 자기 목소리만 빽빽 높이고, 말이 막히면 오히려 남을 두고 "저 자는 자기 주장만 한다"며 얼토당토않은 모함을 하는 게 못 배운 근성의 인간들입니다. 이런 게 문제지, 백범 같은 인격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의 저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썼든 간에, 참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을 그러나 하고 있습니다. 왜냐. 백범은 있는 그대로 위대한 분이지, 다른 윤색이나 가공이 필요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식에 그간 거품이 있었다면, 그건 걷어내어져야 합니다. 왜냐면 백범은 그런 게 전혀 필요 없이도 그 자체로 위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백범일지>에 허위나 오류가 있다고 해도, 저자의 주장대로 이광수가 제 한 몸 살아 남으려 과잉 충성을 하느라 저지른 잘못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우익 진영에서 백범의 행적이 다 소거되면, 독립 운동의 치적이라고 내세울 건 거의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좌익의 업적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뿌리부터 무너지는 것 아닐까요? 백범이 쓰러지면 그 결과는 이처럼 중차대한 파장을 낳죠. 이 책을 두고 백범기념사업회에서 "그 의도가 불순하다"고 평가한 건, 혹시 이런 점을 지적하려는 것 아니었을까 저는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여튼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좋은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너무 핳 말이 많고, 책 내용 토씨하나에까지 제 개인적 감상을 적을 수 있지만, 2권 리뷰로 미루겠습니다. 2권도 다 읽었기 때문에, 이 1권에 대한 리뷰 안에 총체적 평가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2권은 1권과는 좀 성격이 다릅니다. 해방공간사를 저자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백범 뿐 아니라 다른 역사까지 자세히 고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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