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세를 읽는 승부사 조조 - 우세와 열세를 아는 자가 이긴다 삼국지 리더십 3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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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술(詐術) 없는 정정당당한 방법,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업적을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기간에 망한 진(秦)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건설한 유방 역시, 순탄치 않았던 통일 과정에서 체면 깎이는 일을 수도 없이 당했으며, 건업(建業) 후에도 이른바 토사구팽으로 상징되는 공신 대숙청을 별 망설임 없이 감행했습니다. 이치와 명분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50여년이 흐른 후 주원장 역시, "시기호살"이란 표현으로 잘 알려진 특유의 의심증과 과도한 견제 심리의 발동으로, 십만 단위에 이르는 인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 둘에 대해, 당대나 그 이후나 민중들은 애정과 존경을 보내는 편이었습니다. 대체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1) 둘 다 농민 출신이다. 2) 그 이전 체제 아래에서의 혼란이나 수탈이 극심하여 왕조에 대한 불신이 심했다.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보나, 자기가 부리는 인재에 대한 활용 능력, 권한 위임의 과감성으로 보나, 위 무제 조조는, 위에 거론된 유, 주 양인을 능가하고도 남는 파천황의 대 영걸(英傑)이자 전무후무의 경영자였습니다. 중국 오천 년 역사상 그만한 인물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아니 세계사를 통틀어 놓고 봐도 그만한 천재가 있었을까 하는 감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에는 두어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귀족에 비해서는 평판이 다소 떨어지긴 하겠으나, 상당한 권세를 누렸던 집안 배경을 지니고 출발했다(친가 양가 모두)는 점에서, 순수 농민 출신 영웅에 비해 친화도가 떨어짐. 2) 그가 자신의 것으로 (사실상) 대체한 직전 왕조 한실(漢室)이, 아직은 백성에 의해 버림 받은 정도의 위신이 아니었다(즉, 멀쩡한 왕조를 뒤엎었다는 역적의 이미지). 의심이 많았다든지, 정적이나 총애를 잃은 신하에 대해 무자비한 처결을 했다든지 하는 건 어느 창업 군주나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조맹덕이 특별히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만 더 덧붙인다면, 3) 그가 창업(형식적으로야 선양을 받은 당사자는 아들 조비입니다만)한 왕조가 단명하고, 곧바로 사마씨의 진(晉)에 의해 교체되었다는 사실도 빼 놓을 수 없겠습니다. 그가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것도, 나머지 양국(촉, 오)의 실력이 다른 분열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5대 10국이나 남북조 말, 빈사의 원 치하에서 할거했던 군웅과는 상대가 안 될 만큼 강한 지방 정권들을 채 조복(調伏)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이걸 그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닙니다. 오의 주공근은 "하늘이 나를 내고 왜 또 양(제갈량)을 내었는가!"라고 탄식했다지만, 맹덕으로서는 자신 외에 유비와 손씨 삼부자를 또 내려 보낸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1)과 2)를 가만히 살펴 보면, 둘 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철저히 외생적(exogenous)인 변수들입니다. 3) 역시 창업자가 어떻게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고, 제아무리 천재라 한들 후손의 DNA를 생전에 조작해 놓고 죽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보면, 조맹덕은 자신의 힘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에 유리하게 바꾸어 놓고 게임을 진행했다는 뜻도 됩니다.

하지만 상황을 언제나, 제 힘만 부려서 일일이 바꿔 놓는다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방식도 됩니다. 바로 초한 쟁패기의 항우가 그러했습니다. 항우가 바위 위의 파리를 잡으려고 주먹을 내리쳐서, 파리는 잡지 못하고 바위만 부수었다는 이야기는, 사실(史實)이 아니라 일종의 우화입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이런 항우와는 달리 유방은 매우 실리적인 성격이었으며, 위신을 내세우지 않고 솔직하게 타인을 대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사기 열전을 인용하여 저자 자오위핑은, (현재는 자기 휘하에 있다고는 하나)잠재적 적수인 한신 앞에서 "그 두 가지 점 다 내가 못하오."라며, 조금의 가식이나 말재주 없이 약점을 인정하는 유방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사실 "조조"를 다룬 책에. "유방"의 예가 나오는 건 좀 의아합니다(물론 저자의 능력 증명이요, 독자로서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접한다는 재미가 있습니다만). 저자로서도 고육책이었던 것이, 조조라는 인간은 경영자로서 군주로서, 별로 미달하는 자질이나 덕목이 없는 형편이었던지라, 제 아랫사람에게 뭘 인정하고 말고 할 사항이 애초에 없었던 겁니다. 대신 저자는, 관도의 대전에서 조조 필생의 적수(과거 내력으로 보면 조조가 감히 대적할 수도 없는 강하고 귀한 지위였지만)인 원소의 약점을 거론합니다. 아랫사람을 두고 겉으로는 인자하고 너그롭게, 좋은 표정을 꾸며 대접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 없이 의심하고, 좋은 간언이나 헌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우와 정확히 닮은 점입니다. 이러니, 좋은 판세를 등에 업고서도 그 이(利)를 살리지 못하고 제풀에 엎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조조는 제 주변에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꿔 놓으려는 감투 정신의 소유자요, 또 그런 구상을 실전에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미련스럽게 모든 변수에 대해 수정을 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능력이 뛰어났기에, 마음만 먹으면 못할 바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한 일에 진을 빼고, 정작 힘을 발휘해야 할 때 가서 힘을 못 쓰고 성과를 못 내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노장의 가르침처럼, 무위(無爲)함만도 못한 것입니다. 저자 자오위핑은 그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조조의 진정한 위대함은 각종 수완과 책략에 능하고 두뇌가 빼어났으며 사람의 마음을 잘 읽었다는 자질 뿐 아니라, 판을 잘 읽고 타인의 힘을 제 유리할 대로 이용할 줄 알았다는, 자원 활용의 경제성 원칙에 충실했던 그 영악함이었습니다.

그가 서부를 안무하고 나서, 눈을 돌려 동쪽을 보니 여포, 원소, 유비라는 걸물들이 제각기 자기 세력 구축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조조는 섣불리 천하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아마 이 3웅(雄)이 단결하여 조조의 목에 공동의 칼을 겨누었을 겁니다. 조조가 수세에 몰려 몰락하고 난 뒤, 이 셋은 아마도 다시 필사적 각오로 상호 쟁패에 돌입했겠습니다만, 내가 죽고 난 후 어부지리를 취하는 게 다 무엇이겠습니까? 판을 앞당겨 서로 싸워서 세를 쇠잔하게 만드는 게 최상의 방법이고, 그 수에 말려 들지 않으면 각개 격파를 시도해야 합니다. 조조는 이런 구상으로 원소를 안심하게 하고, 유비는 먼저 여포와 반목하게 한 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당시 가장 가공할 적이었던 후한 최고의 무장 여포의 새력을 궤멸시킵니다.

관도에서 원소에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는 일은, 조조로서도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강대한 병력, 넉넉한 군량(전쟁에서 보급이란 얼마나 중요한 요소입니까),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해 온 그 오랜 세월에 비례한 세간 평판의 깊이 면에서, 조조가 원소를 대적함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무모한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판세를 정확히 읽고, 그 허점만을 정확히 타격"함으로써, 불리한 형세를 뒤엎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풍은 이런 계책을 올렸습니다. "조조가 용병에 능하니 우리는 지구전으로 맞서 손실 없이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는 일시적 승리가 아니라 조조가 다시는 발호하지 못하게 하는 발본색원의 방안입니다." 라고 하자, 원소는 마치 자신의 능력이 조조에 못 미친다는 암시처럼 듣고는 그를 투옥했습니다. 허유가 "조조가 저리 부족한 병력으로 무리한 진형을 짜고 있으니, 이 틈을 타 허도를 기습하면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것이며, 조조는 이 과정에서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라고 원소에 결정적인 한 마디 충언을 했습니다. 사실 전풍의 A안과 허유의 B안은 서로 모순되는 것입니다. A안이 신중하고 수세 중심의 선택이라면, B안은 이와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병법에서 최고로 치는 寄策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원소는, 둘 다를 잘 추려 수용하는 운용의 묘까지는 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둘 중의 하나는 그냥 골라 잡아 마땅한 상황에서도, 둘 다를 묵살하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리더가 제 주견이 없을 뿐 아니라, 뛰어난 아랫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열등 컴플렉스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의 망상 세계에서 머물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처음의 자기 판단이 옳았기만을 끝까지 집착하며 빌고 있는, 여지없는 패배자의 모습을 노출한 거죠. 유리한 판세도, 제 마음 하나 편하고자 왜곡하고 비트는 습성은, 가진 판돈을 불리한 패에 걸고 다 날리는 파멸의 정코스로 사람을 몰게 되어 있습니다.

조조는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허유가 귀순의 뜻을 밝힐 때, 자신 없는 타입이라면 "이게 혹시 반간계의 일종 아닐까?"하며 우왕좌왕하거나 반대의 패착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조조는 허유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의사 결정은 신속함이 최대의 미덕인데, 조조는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단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 보고 좋아한다는 건 바로 이를 두고 이름입니다. 맞는 말은 누가 하는 말이건 무조건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게 win이란 걸 체질로 아는 것입니다. 조조가 판세를 읽었다 함은, 타인의 힘 중 유리한 건 애써 뺏으려 할 게 아니라 그대로 타인의 수중에 둔 채 내것으로 활용하고, 타인의 허술한 구석은 틈을 두지 않고 바로 찔러서 무력화하는 데 당대 누구보다 능했다는 뜻입니다.

판세를 잘 읽었다는 건, 외부 형편이나 적의 형세를 두고만 이르는 게 아닙니다. 나 자신의 형편, 내가 부리는 아랫사람들의 객관적 상황 파악에도 능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은 <연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사(진수의 삼국지)나 다른 문헌을 두루 참고하여 재미있게 각색했다는 사실이 돋보이는데요(이 점은 자오위핑의 전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은 <연의>에서 거의 비중 없는 인물로 다뤄지지만, 정사의 행적을 보면 초조의 창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인재였습니다. 이전 역시 상관의 기색과 심기를 잘 살피고 능숙한 처신을 보였지만, 조조 역시 그런 이전의 본의를 잘 읽고 극진한 대접을 베풀어, 출중한 인재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게 조장했습니다. 아랫사람이라고 해도 배신, 불만의 여지는 언제나 상존하게 마련인데, 조조의 뛰어난 점은 인재의 심중을 언제나 헤아려 선제적으로 최상의 대우를 베풀고 이를 미연에 방지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야말로 또다른 "판세읽기"의 미덕입니다.

연의에 나오지 않는 조조의 행적으로서, 그가 20대 초반 일시 좌절을 맛보고 낙향했을 때도, 반드시 자신의 패착이 어디 있었는지 반성하고 복기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그는 이 기간에 천운의 반려자인 변황후와 연을 맺는데, 어쩌면 가장 소중한 성과와 자원 확보를 이룬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 나와 있듯 변황후는 그 걸출했던 아들 조비와 조식을 낳아 준 동반자였습니다. 자오위핑은 이처럼,  <연의>의 후일담이라도 들려 주듯 재미있는 이야기를 곳곳에 섞어 넣어, 주제의 설득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도 있지만, 일개 소설에 불과한 <연의>에 비해 권위도 더 높은 것들입니다. 역사와 허구를 교묘히 오가면서, 캐릭터로서의 조조와 역사적 위인으로서의 조조를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오늘의 처세 그 핵심을 묘파하는 저자의 능력이 또 한번 빛나는 두툼하고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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